미역국으로 간단하고 맛있는 아침을 먹고 언제나 그렇듯 커피머신의 전원을 켰다. 잠시 고민하다 얼음 대신 뜨거운 물을 끓였다. 아이스가 아닌 뜨끈한 아메리카노를 허용한다는 건 내가 그토록 바라던 계절이 왔다는 증거였다.
하늘과 구름 아래 작은 캠핑용 테이블을 끌어다 놨다. 이전 집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온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책을 폈다. 존 크라카우어의 <야생 속으로>. 여태껏 본 영화 중 최고라 단언할 수 있을 만큼의 울림을 남긴 <인 투 더 와일드>의 책 버전이다. 커피 한 모금을 홀짝이며 글 속으로 들어간다.
핸드폰으로 클래식을 듣다 문득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져오기로 한다. 핸드폰으로만 재생되는 음악은 그 어떤 것이든 모닝콜의 음색에서 멀리 나가지 못한다. 건조한 손에 바를 바세린도 챙겨 다시 의자에 앉았다. 책 한 권읽으려는데 뭐 이리 준비할 게 많은지!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이른 아침은 더 부지런히 울어대는데, 야행성인 나는 그 라이브 공연을 번번이 놓치고 만다. 어쨌든 지금의 지저귐 정도가 좋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개도 간헐적으로, 정겹게 짖는다.
가을의 구름은 빠르고 마을은 고요하다. 나는 책을 읽고 엄마는 울타리에 그림을 그린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순간. 이사 온 날부터 가열찬 여름의 페이지를 덮어두기까지는 태양광이 충전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잡초, 개미, 거미...살려는 것이 아닌 죽이러 온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바람에 환기되고 무르팍에 담요를 올려놓아도 짜증이 일지 않는 계절의 온도. 100일이 훌쩍 지난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