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모르는 딸을 향한 엄마의 호통 같은 바람이 속속 불어치는 하루였다. 엄격한 공기에 이따금 내리치는 회초리처럼, 깊이 뿌리내린 소나무의 목을 잡아 빼며, 생기를 잃고 부서지려는 나뭇잎과 심연으로 뛰어든 알맹이를 기다리는 아이스크림 껍데기가 신경증을 겪고 있는 야외용 철제 의자와 함께 나부꼈다.
뜨거운 볕과 무서운 얼음들이 번갈아 에워싸는 동안에도 유리는 멀쩡했다. 유리를 파괴한 것은 바람이었다. 바람이 큰 유리를 먼저 덮쳤다. 자신의 분투를 무심하게 대하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을 내비치던 중이었다. 큰 유리는 부서지며 작은 유리를 지켰다. 더 크니까, 더 길게 투영하며 살았으니까. 밤의 속살을 훔쳐보듯 반짝이는 유리 파편을 발견한 건 저녁 여덟 시 무렵이었다. 작은 유리는 큰 유리가 남긴 크고 작은 조각들을 지켜보며, 떨고 있었다.
지난해 초여름부터 유리들은 작은 마당의 한편에, 사람들은 그곳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놓여왔다. 사계절을 거뜬히 존재한 사물의 끝은 세찬 장맛비도, 느지감치 방향을 튼 태풍도 아니었다. 난데없이 얼어붙은 바람 잘 날 없는 하루, 그뿐이었다.
깨질 것이 깨질 곳에 있음에도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깨어질 일이 없을 거라 여겼던 탓이다. 당장은 무용함에도 깨지기 전엔, 버릴 수도 없었다. 유리들을 머리에 이고 있던 긴 좌탁과 작은 탁자는 자신의 일부가 탈락되어 한뎃잠을 잔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잇고 끊는 건 모두 사람의 의지고 몫이니까.
사람에게 죽음이 있듯 유리에게도 깨짐이 있다. 그리고 둘은 모두 깨질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촘촘히 짜여 있다. 막상 깨지고 나면 선택의 여지는 없다. 깨짐을 인정하고 파괴의 자취를 주워 담는 것, 그리고 산재한 날카로움으로부터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