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록 젠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살 Mar 23. 2024

차로 십 분 거리를 한 시간 걷는 것에 대하여

제주 월정리에서 세화해수욕장까지는 버스로 17분 거리다. 그런데 도보로는 1시간 57분을 걸어야 한다. 함덕해수욕장까지는 버스 20분, 걷기 3시간 7분.

막히면 타거나 걷거나 별반 다를 바 없던 도시와 달리 시골은 막힐 걱정은 없지만 걸음의 예산은 훨씬 많이 잡아야 한다. 먼 제주도만 논할 게 아니라 이제는 우리 집이 그렇다. 차로 10분이면 충분한 전철역까지 걸어가려니 지도는 1시간 25분을 예고한다.

모처럼 서울 나갈 일이 있는 하루였다. 작은 산자락에 놓인 집은 하늘과 구름, 산과 나무, 전답과는 참 가깝지만 현대가 필요로 하는 것들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일단 눈앞에 보이는 게 저것(하늘-전답)들 뿐이니 말 다했지. 새로 다듬은 정류장이 있지만 잠시 비를 피해 가는 처마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숫자를 달고 몇 시에, 몇 번 오는지 아무것도 전해진 바가 없다. 사건의 목격자처럼 동네 산책 나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버스 시간을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놓은 게 전부고, 차 한 대로는 마중과 배웅이 필수. 그리하여 우리 가족은 정작 타야 할 기차보다 더 기차처럼 스케줄을 엮곤 한다.

시작은 호기로웠다. 겨울을 가늠하듯 텔레토비처럼 부한 외투와 노트북, 아이패드를 업은 배낭, 옷가지가 담긴 쇼핑백으로 무장한 상태였지만 발걸음은 꽤 가벼웠다. 덥지 않은(가만히 있으면 추운) 날씨도 한몫했고 평일의 농로는 간간이 흙의 흔적과 함께 차가 겨우 몇 대 지나갈 뿐이었다.

더는 번복하기 어려울 만큼 집과 멀어지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편평한 상판, 안락한 의자에 앉아 주행할 땐 모르던 얕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저 나 있는 길이 아니었다. 내 걸음의 각도를 느끼며 걷는 일, 무거운 시소가 된  내가 가방을 들어 올리면 가방도 나를 들어 올렸다.

두고 온 것에 미련을 두듯 힐끔힐끔 뒤를 돌아봤다. 인적을 기대하지 않는 시골 농로에서는 트럭과 경운기, 승용차가 지하철역 무빙워크처럼 순식간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세월에 풍화된 비닐하우스와 실뜨기를 하는 전봇대, 파랗고 빨갛고 누런 집, 외줄 위에 도열하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새의 무리, 유년부터 방향을 잘못 잡은 나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은 산의 명암, 졸지에 시찰에 나선 겸연쩍은 행인까지. 하늘에 비친 것은 이런 풍경이었다.

평소 걸리적거릴 것도 없던 신발끈은 이따금 헝클어지며 잠시 숨 돌릴 시간을 줬다. 군장을 멘 군인이 군화 끈을 고쳐 묶듯 진지하고 결연하게 신발끈을 조였다. 영화 <여고괴담>의 귀신처럼 턱. 턱. 턱 가까워졌던 익숙한 시골길은 비닐하우스를 몇 번 넘어도, 작고 낮은 집들을 몇 채 지나도 쉬이 가까워지지 않았다. 멈춰서도 안 되고 늦을 수도 없었다. 내 한 몸 홀홀히 걷는 게 아니기에 걸음은 더디고 길은 한없이 이어졌다. 열차 하나를 놓치면 수십 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이곳에서, 잠시 어디서 쉬려 해도 도무지 벤치 하나 안 보이는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두 다리를 채근해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었다.

끝나지 않는 러닝머신 레일 같던 길을 돌파하고 나서야 저 멀리 역이 보였다. 워터슬라이드 타듯 미끄러지는 개천의 외침은 결승선을 통과할 내게 주어지는 박수소리 같았다. 나 빼고 모두가 차분한 역사에 들어서 우주복 같던 외투를 벗어던지자 열이 난 티셔츠는 김을 뿜어댔다. 마치 저 혼자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벌과 꽃의 거리, 새와 구름의 거리, 파도와 모래의 거리가 아니고서야 사람이 발을 옮기는 '이곳'과 '저곳'의 거리는 대부분 측정된다. 추억이 있는 곳을 검색하고 '거리뷰'를 누르기만 하면 지금까지도 여전한 그때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예비할 수 있고 계획할 수 있는 게 지금의 세상이다. 그러나 1시간 25분을 예상했던 걸음의 실제 피니시라인은 55분이었다. 예고된 것보다 30분이 빨랐다. 역시 정평이 정도(正道)도 아니고 상식 밖의 일이 상실(喪失)도 아니다.

'그냥 차를 타고 갈 걸 그랬다' 일말의 후회도, 이미 들어섰으니 돌이킬 수 없다는 체념도, 걸어볼 만하다는 자신도, 걸으니 걸을 뿐이라는 무념도, 앞으로 또 걸을 일은 없을 거라는 단념도, 당도한 목적지 앞엔 지나온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심박수는 제자리를 찾아가고 땀은 식었다. 그리고 이날의 고됨을 망각한 나는 또다시 길을 나설 것이다. 물론 몸과 마음의 짐 없이 가볍게!








-에필로그-

운동 부족, 과잉 운동의 심판대는 가혹했다. 볼기짝을 수십 대 얻어맞은 것처럼 무수한 통증. 어기적어기적 꼬박 이틀을 앓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깨어진 유리가 남기고 간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