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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Aug 05. 2019

적자생존

적지 않은 글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좋은 습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갖고 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직관적인 생각으로 인해 생각과 행동을 결합시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깨달았던 순간, 조금씩이나마 실천했다면 이룰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원론적인 후회로 돌아가면 결국 신세한탄만 하게 된다. 더 가관은 그런 후회들로 스트레스받은 나를 스스로 위로하겠다며 맥주 한 잔, 얼큰한 라면 한 그릇 해치우는 걸 힐링으로 생각했다는 것. 그리고 난 후에는 삶에 대한 열정이 아닌 숙취로 인한 갈증과 체력적 소모로 어제의 나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마는 것이다. 나는 무수히 많은 날 동안 내 고민과 계획, 희망과 후회들을 비워진 맥주캔 속에 뭉뚱그려 분리수거해버린 셈이다.


나 홀로, 몰래 개과천선해보겠다는 비밀스러운 다짐은 어기게 된 후에는 부끄러움을 느낄새 조차 없이 소멸해버린다. 다이어트하겠다고 공표하면 오늘과 내일 맛있는 걸 먹을 기회를 놓칠까 봐 못하고, 매일 글쓰기를 하겠다거나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공표하면 결석 없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악질적이고 쓸데없는 완벽주의로 못하는 날들이 태반이었다. 


체인지 그라운드 유튜브 영상에서 찰스 두히그의 '습관의 힘'이 추천 도서로 언급되는 걸 많이 봤다. 오렌지색 책 커버가 어디선가 많이 본듯해 혹시 나도 갖고 있는지 책장을 뒤져봤다. 도서관에서 빌려만 읽고 사진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훑어본 책장엔 '습관의 힘'만 없었을 뿐이지 '습관', '~하는 힘', '~하는 법'에 대한 책은 아주 수-권 발견되었다. 3-4년 전쯤 무언가에 홀린 듯 자기계발서에 꽂혀 있을 당시 양산한 소비의 결과물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어떤 습관을 갖게 됐던가? 커피를 더 많이 마시고, 술을 더 자주 마시게 됐으며 재택근무로 인해 집을 더 좋아하게 된 습관(이건 습성인가)이 생긴 것 같다. 아! 전시를 보고 나면 집에 와서 들춰보지도 않는데 무조건 도록을 사는 습관도 있다. 


정말 잠깐의 생각으로 몇 가지 적어본 건데도 좋은 습관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좋은 일, 잘한 일이 없겠냐마는 결과적으로 내가 이뤘고 실천했던 긍정의 일들을 습관화(시스템화)하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어떤 주제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열망은 머릿속 다음으로 핸드폰 메모장 안에 가장 많다. 열정이 불타오를 때마다 핸드폰에 계획 겸 일기 식으로 적어보는데 장대하기가 그지없다. 내가 쏟아내는 것, 계획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 한번 적고 다시 들여다보지 않은 것 모두 내 핸드폰은 말없이 다 받아주고 있다.


지금의 핸드폰을 쓴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개통할 당시 '이걸 쓰는 동안 어떤 것들을 이루게 될까?', '미팅이나 새로운 일을 하러 가는데 이 핸드폰이 같이 가게 될까?'와 같은 아주 감상적인 생각들을 자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나 의미 있는, 신기한 일들을 실제로 경험했다. R=VD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하지 않던가. 별다른 기록 없이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시야의 방향을 그쪽으로 두니 이루긴 이루더라.


하지만 기록하지 않은 건 가장 큰 리스크였다. 무기록의 삶은 변화의 나날을 체감할 수도, 추억할 수도 없었다. 적자생존이 따로 없다. 적지 않는 글자는 살아남지 못했다. 


2년 6개월 전 처음 운전면허를 땄을 당시 엄마가 운전연습했던 날짜를 기록해보라고 했다. 그러면 처음으로부터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 어디까지 멀리 다녀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귀찮음에 적지 않았고 지금은 등에 땀 차도록 뇌리에 강력했던 생초보 시절만 기억할 뿐이다. 발전의 과정을 남기지 않으니 일순간 기적을 이룬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쓰다 보니 말이 길어졌지만 이 글의 요지는 기록의 습관화를 실천하겠다는 공표다. 기록의 습관화 아래에는 운동, 언어(외국어) 공부, 글쓰기와 같이 정말로 내가 원하던 것들을 실천하는 과정도 들어갈 거다. 매일 하루의 단상을 브런치에 올릴 것이고 간헐적으로 적곤 체크 하나 하지 못했던 데일리 리포트를 제대로 써볼 생각이다. 읽고보고서와 한편보고서도 일주일에 한 편 이상씩 꾸준하게 업로드할 거다. 할 말이 없을 때를 대비해(?) 몇 년 전 사놓았던 '글쓰기 좋은 질문 642' 핸디북도 처음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찰나 같던 열정병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더 이상은 답도 없고 쓸데도 없는 기우(杞憂)들로 나 스스로를 막아서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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