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보고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홍인혜 에세이

by 곰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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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깔끔하다. 그런데도 자세하고 솔직하다. 내가 본받고 싶은 영역 그 어디쯤 있다.


말과 그녀의 이야기 속 모습이 마치 나인 것만 같아 웃음이 났다. 남의 에세이를 보면서 이렇게 웃어본 건 처음이었다. 홍인혜 작가와 일면식도, 그렇다고 영국으로 떠날 계획도 전혀 없지만 마치 내 인생의 미리보기를 대필해준 것만 같았다.


<디지털 여행자> 챕터를 읽으며 홍인혜 작가의 글이 왜 그토록 살아 숨 쉬는지, 생생하다 못해 아는 언니 유튜브를 본 듯한 정도로 와 닿는지 알게 되었다. 여행 중에도 동시통역처럼 글을 남겨왔기 때문이었다. 공개 여부와 전혀 상관없이 행위에 대해 기록하는 것은 어떤 분야든 지당하니까.


저축해둔 돈이 있었기에 타국만리로 떠날 수 있었다던 저자의 말에 뜨끔했다. 참 이상하다. 어릴 땐 '외국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는데 정작 성인이 되고 보니 알량한 아르바이트조차도 퇴사하기가 쉽지 않더라는 것. 여행 한 번 다녀오면 최대 12개월 할부 속에서 매달 조각 여행을 해야 하더라는 것.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범죄나 테러에 괜히 마음이 쫄더라는 것.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는 아이러니의 무한 반복이었다.


이사를 하고 나서 가장 난감했던 건 막대한 짐 정리도, 불편한 교통편도, 인터넷을 연결하기 위해 신청과 해지를 반복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회원가입된 홈페이지의 배송지를 모두 새 주소지로 바꾸는 일이었다. 습관처럼 주문을 하고 보면 이전 주소지여서 택배를 찾으러 간 적도, 식겁해서 주문 취소를 누르는 적도 다반사였다.


낯선 사람에게 뻔한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지겨워 소개팅이나 연애가 시큰둥해지는 것처럼 새삼스러움을 맞닥뜨리고 새 것과 나와의 관계를 정의한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3박 4일의 대만 여행에서도 익은 길에 미련이 남던 나였다. 하물며 나고 자란 대한민국이 아닌 타국에서 생활자가 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물건에 대해, 돈에 대해, 시간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수도 없이 새로운 정립을 세워가는 일, 모든 일에 신규생이 되는 일, 일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안주(安住)로부터의 탈피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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