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이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교육은 타인이 나에게 해줄 수 있지만 교양은 오직 혼자 힘으로 쌓을 수밖에 없다.
페터 비에리는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교양 있는 사람'으로 바라볼 때, 그에 대한 단서는 깊이 있는 지식과 세련된 말투, 겸손과 겸양, 품위 있는 태도 등에서 비롯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모습이 진정한 의미의 교양을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페터 비에리가 말했듯 외양으로부터 오는 궤변을 알아보고 그에 대한 나의 태도, 내가 취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인생을 살아갈수록 필요한 작업이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 깨인 사상, 역사의식, 표현, 자아 인식, 주체적 결정, 도덕적 감수성과 시적 경험이라는 여덟 가지의 길로 '교양'을 구분하고 있다.
교양은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호기심을 지탱하는 건 '그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과 '어째서 그런지 이해하는 것' 이 두 개의 기둥이다. 모든 걸 다 알고 있거나 이해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는 지식과 정보 아래 언제나 하수일 수밖에 없다.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대지 않기 위해선 알아야 할 것과 이해해야 할 것들의 대략적인 지도를 그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식은 희생자가 되는 것을 막아준다. -p14
알아야 다름을 이해하고 다름을 인식해야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지식의 희생자, 무지의 희생자, 언론의 희생자, 사고(思考)의 희생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가짜를 가려내고 정확한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리얼리티 예능을 볼 때 편집을 통해서도 가려지지 않는 설정의 조작을 목격할 때가 있다. '리얼리티'를 내세워 보여주지만 결국 카메라 수십 대, 사람 수십 명이 있는 공간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물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기도 하다. 그러나 그로부터 생성되는 문제는 우리가 그것에 지극히 공감하고, 흔들린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니 즐거운 거짓을 바라고 자극적이어도 좋으니 구미에 맞는 폭력을 정당화한다. 정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같은 다큐멘터리 역시 시선 위에 편집자가 있다.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사랑받던 연예인들의 몰락이 시청자인 우리에게도 허탈감으로 남는 이유다.
수없이 많은 정보와 타인의 생각에 수용되는 삶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표현되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 그에 대해 말하고 그리는 것 역시 멋진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동했던 문장과 행동에 따라 나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치 시대 친위 대장의 신분으로 끔찍한 죽음의 고리를 엮었던 하인리히 힘러조차 이런 말을 했다.
"휴머니즘은 인본주의적 사상을 담은 책을 그저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자, 다시 말해 책을 읽고 난 뒤가 읽기 전과 다른 자만을 지켜줍니다."
이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상대방에게 어떤 상대이고 싶은지, 부모에겐 어떤 자식이, 자식에겐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이전에 내가 내 안에 어떤 사람으로 깃들고 싶은지를 묻는 것.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이 중요함을 넘어서 필수적임을 역설한다.
총 87쪽짜리 짧은 책이었지만 문장마다 이런저런 생각에 걸려 넘어졌다. 족족 옳은 소리를 듣고 있자니, 하루에도 몇 번씩 나와의 싸움에서 지고 마는 나는 교양인이 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자포자기에 대비해 저자는 "자아상이 가지는 미완성성과 부실함을 여유 있는 자세로 받아들일 줄 알며 그것을 자유로움의 한 모습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다독인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말과 글 안에 스며들듯, 나는 또 다른 시선이 되어 세상에 배어 나가기를 바란다. 씌워진 고상함이 아닌 투박한 진정으로.
p23. 사람, 죽음, 도덕, 행복에 관한 문제에 대해 자기 것이 아닌 남이 만든 기준에 맞춰 사는 한, 사람은 자신의 생에 완전한 책임을 진다고 말할 수 없다.
p49. 언어를 통해 우리는 자기가 하는 말에 근거를 댈 수 있는 존재, 다시 말해 이성적 존재, 사고하는 존재가 됩니다.
p76. 허구의 역설 :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겨우 등장인물 뒤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숨겨야만 할 것 같은, 자신과 자신이 겪은 일들에서 분리되어야 한다는 느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만들어낸 인물들 속으로 깊게 들어갈수록 자신과 더 밀착되는 느낌이 듭니다. 창조적 상상력이 자신과의 친밀함을 만들어주기에, 문학적 표현은 매우 강렬한 현재화된 경험을 만들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