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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Feb 21. 2019

[한편보고서 1] 먼 훗날 우리(后来的我们 후래적아문)

속절없이 흔들리는 청춘들의 사랑

샤오샤오(저우둥위)와 린젠칭(징보란)은 춘절을 위해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다. 이후 친구가 되고, 서로의 감정을 인정하지 않은 채 절친이라는 관계로 만남을 지속한다.
베이징의 냉혹한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떠나가버리는 친구들.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꿈을 저버리지 않는, 그래서 가장 가난하고 뭣도 없던 초라한 시기에 두 사람은 사랑을 시작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남녀의 감정을 떠나 내가 너의, 네가 나의 현재이자 미래라 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살았고 일했으며 울고 웃었다.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던 이들에게도 새로운 춘절과 또 다른 그믐은 찾아왔다. 심사가 뒤틀린 청춘에게 위기가 덧붙여졌다. 집을 비우라는 집주인의 말에 젠칭과 샤오샤오는 조그마한 트럭에 짐짝처럼 비좁게 걸터앉았다. 이들 사랑의 상징이었던 낡은 소파를 틈이 없어 두고가는 순간, 그들 사랑의 유효기간도 머지 않아보였다. 급기야 반지하에서 살게 된 샤오샤오는 땅에 핀 꽃을 올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젠칭의 아버지는 춘절이 되기만 하면 찐빵을 만들며 젠칭과 샤오샤오를 기다렸다. 청춘들이 해를 넘어 건투하는 동안 아버지는 늙어갔다. TV리모컨이 말을 안듣는다던 젠칭 아버지의 말은 당신 마음의 소리였을거다. 전지적 관객의 입장으론 뻔한 일이지만 나 또한 부모님의 마음의 소리를 읽지 못할 때가 많겠지. 누군가 나를 들여다 본다면 안타까워하고 있을 수도.

지독한 청춘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무의미한 하루도, 야심찬 계획도 결국 똑같은 일상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걸 청춘이라 부르는 걸까.

젠칭 아버지가 샤오샤오에게 가득 담아주었던 장이 어느덧 바닥을 보이자 그들의 사랑도 넘어져버렸다. 젠칭의 뒤늦은 뜀박질은 다시 한 번 그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젠칭은 닫히는 문 사이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게 그들의 타이밍이었다.


어떠한 가정(if)도 결국 꿈이고 허상일 뿐이다. 사랑은 한 사람의 의지와 욕구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까. 내가 원하는 완벽한 사랑의 모습이 상대에겐 욕심이고 기만일 수 있다는 것. 젠칭은 그걸 알지 못했다. 모든게 원하는대로 됐지만 서로만은 갖지 못한 두 사람.


누군가 떠난 빈자리는 더욱 서늘할 뿐이다. 망가지는 것만이 지나간 사랑과 다가온 이별에 대한 애도이고 같은 세계에 살면서 절대 마주치지 않는다. 애초에 분리된 삶인듯 공기 한 점 남지 않고 살아간다. 이게 이별이다.

진쳉은 자신이 만든 게임의 흔적들을 보며 샤오샤오를 더욱 그리워했다. 샤오샤오가 떠나가자, 젠칭은 입신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러자 정말 '영화처럼' 원하는대로 성공하고 그 좁은 베이징에서 테라스까지 딸린 넓은 집도 갖게됐다. 젠칭은 그 집에서 아버지를 모시며 샤오샤오와 함께 할 행복한 미래를 꿈꿨지만 어쩐지 그들은 더욱 멀어져버렸다.


상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정확히는 내가 생각한 '그것'을 원할거라 속단하는 것 말이다.)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예쁨 받기 위해, 친구보다 더 잘나서 자랑거리가 되기 위한 술수와 같을 뿐이다.

사랑은 감정선이 맞아야한다. 시력이 같아야 하고 밀도가 높아야한다. 산책이 필요한 사람에게 오픈카는 필요 없다.


변해가는 상대를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과 눈빛도 변해가고, 그들은 계속 엇갈리기만 한다. 지독하게 흔들렸지만 결국 뻔한 삶을 살고 있는 흑백의 인간이 되었다.


이 영화의 최고의 장면은 이들의 사랑과 이별, 재회도 아니다. 옅어지는 시력 안에 담아둔 샤오샤오의 모습만을 간직하고 떠난 젠칭 아버지의 편지다.

인연이란게 끝까지 잘되면 좋겠지만 서로를 실망시키지 않는 게 쉽지 않지
좀 더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깨닫게 될거란다
부모에겐 자식이 누구와 함께하든 성공하든 말든 그런건 중요치 않아
자식이 제 바람대로 살면 그걸로 족하다
한번은 기차역에서 내가 네 손을 잡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다른 사람이더구나
그때 깨달았다
너희 둘이 함께하지 못해도 넌 여전히 우리 가족이란다


나는 펑펑 울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그때의 내가 선명한 색(色)을 가졌던 것 같고 지금의 내 모습이 흑백 같을 때가 있다. 반대로 훗날이 흑백이라면 지금이 색인거겠지. 빛에 반사된 색을 보는 것 말고 내 마음이, 생각이, 정신이 흑백이진 않은가 생각해봐야 한다. 분명한 건, 한없이 흔들리는 지금이 나를 더욱 선명하게 할거라는 것.

먼 훗날 우리, 바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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