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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Jul 29. 2020

[한편보고서 7] 우리의 계절은, 2018

보내고 나서야 알았지

행복하게 분주한 사람들이 가득한 공항.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그들 이야기의 시작이다.


따뜻한 아침식사

아침마다 할머니와 마주 앉아 미펀(중국식 쌀국수)을 먹던 샤오밍. 그러던 어느 날 미펀 집 부부가 갑자기 떠나버렸다. 하루아침에 자연스러운 오전의 일과를 잃은 샤오밍은 몇 년 후 학교 근처 미펀집을 새 단골로 삼았다. 어릴 적 그 맛만 못하지만 미펀을 먹으며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소녀를 볼 수 있는 건 샤오밍의 유일한 낙. 잡을 수 없는 세월에 마저도 떠나보낸 샤오밍은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몸은 다 컸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고향의 미펀집에 머물러있는 샤오밍. 샤오밍의 할머니는 당신의 옆을 지키고 선 손자에게 더 이상 함께 미펀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지극히 간소한 마지막 말을 남기고 눈을 감으셨다.


우리가 '추억의 음식'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그 맛보다 내 감정에 편승된 경우가 많다. 그저 그런 빵도 슬플 때 먹으면 잊지 못할 눈물 젖은 빵이 되고, 초등학교 앞에 있던 분식집의 떡볶이나 라면의 맛을 시중의 음식점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펀과 소녀. 소소하지만 소중했던 것들을 점점 뺏기는 삶. 우리의 삶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작은 패션쇼

이린은 정상급의 모델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떨어져 살던 동생 루루와 재결합 후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 화려한 모델로서 살아가지만 마음속 어딘가 늘 공허하다. 바쁜 스케줄 속에 하나뿐인 가족 루루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그럼에도 동생 루루는 언니 이린에 대한 고마움을 늘 갖고 있다. 언젠가부터 이린은 젊고 파릇파릇한 신인이 거슬린다. 늘 선택받아야 하고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모델의 삶. 불안한 마음과 불편한 심기에도 이린은 모자를 쓰고 나가 운동을 해야만 한다. 가족에게 비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솔직하지 못한 마음은 관계에 간극을 만든다.


"아름다움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사라진다" 이린은 끝없이 되뇐다.


말과 달리 몸이 그녀의 욕심을 받아들이지 않아 강제 휴식을 취하게 된 이린. 냉혹한 사회는 눈치게임처럼 자리를 지키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자신의 재능과 그간 얻어온 공든 탑들이 새로운 짱돌에 맞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내실을 탄탄히 다지지 못한 빈 바위는 패기 넘치는 계란에 맞아 부서지기도 한다는 것을 이린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렇지만 피하고 싶다. 남한테 버려지기 전에 내가 먼저 놓아버리는 거다. 쿨한 척하더니 애꿎은 동생만 울리고, 이린도 참 꼬일 대로 꼬여버렸다. 마음에 가시가 돋치니 실수 연발. 자신을 둘러싼 허울을 벗으려고 보니 정말로 알몸 상태가 된 듯 가진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서울 것 없이 척척 이루던 때와 달리 다시 시작하려는 지금, 모든 게 두렵고 무섭다. 실패에 익숙하지 않은 화려함이란 그 자체로 얼마나 위험한지.


상하이의 사랑

리모는 집을 나왔다. 부모님께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도, 수입이 넉넉해서도 아니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벌인 무모한 행각. 참 이상하다. 왜 우리는 자신의 행동이 전혀 논리에 맞지 않고 철없는 행동이란 걸 알면서도 불효를 강행하게 되는 걸까? 이사 후 짐을 정리하던 리모는 '비 온 뒤 맑음'이라고 적힌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한다. 그리곤 테이프를 재생시킬 카세트 플레이어를 찾아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학창 시절, 리모는 샤오유와 절친한 사이였다. 커서도 함께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두 사람. 샤오유가 멀리 떨어진 명문 고등학교(양푸 대학 부속 고등학교)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리모는 서운한 마음을 접고 그 길에 함께하기로 마음먹는다. 문제는 정작 샤오유에겐 비밀로 했다는 것. "떨어지면 창피하니까"라는 그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엇갈리기 딱 좋은 설정이다.


몇 개월 후, 리모의 손엔 합격 통지서가 들려있었고 불합격한 샤오유는 아버지에게 맞아 입원까지 했다. 그럼에도 샤오유는 짐을 챙겨 떠나는 리모에게 기꺼이 기쁜 손을 흔들어주었다. 각자 고등학교를 다니며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어쩐지 예전 같지가 않다. 시간의 틈 사이에 벽이 생긴 듯 어색해다. 둘은 어떤 것에도 솔직하지 못한 어쭙잖은 상태로 다시 헤어지고 말았다. 끝내 샤오유의 음성을 듣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샤오유는 이제야 테이프를 받아 들었다.


나도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마주하고 싶어.

미래의 나에게 변명하면서 후회하기는 싫어.

-상하이의 사랑 中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철없던 시절. 우리는 스스로와 서로에게 알 수 없는 아픔을 주었을 것이다. 인생은 연극이 아니라 상대의 독백을 알 수 없고 내 선택에 대한 결과를 연습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달리 되었더라면'과 같은 가정(if)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게 인생이라 '만약 그랬다면 더 악으로 갔을 것'이라 위로해본다.
끝없이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다잡을 용기 또한 있을 테니 너무 걱정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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