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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Jun 21. 2020

변덕쟁이와 엄마

집밥이 일상인 삼식이의 회고

나는 변덕쟁이다.


카레에 들어당근은 상상만 해도 구역질 날 정도지만 잡채나 골뱅이 무침에 들어간 건 잘 먹는다. 당근만큼 싫어하는 게 콩인데 뻥튀기 아저씨가 팔던 콩 뻥튀기는 좋아한다. 이름표 달린 가방과 노란 체육복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입을 다물지 못했던 유치원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퇴를 했다(그래서 남들 다 있는 유치원 졸업 사진이 없다). 진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던 중고등학생 땐 친구들과 매일같이 놀러 다녔고, 이따금 "여기선 내가 얻을 게 없다"며 자퇴를 운운해 부모님 속을 끓였다. 안경을 써보고 싶은 호기심에 시력 검사표에서 감점을 자초했으나 생각 외로 너무 안 어울려 (시력을) 원상 복귀한 적도 있었다. 폴더폰 시절부터 폰트와 테마에 집착했고, 우주폰이 공책 열 권을 더 낸 지금까지도 그날의 무드에 따라 테마와 폰트를 바꾸며 혼자 흐뭇해한다.

내 변덕은 초등학교 4학년 점심시간에서도 드러났다. 너무 맛없는 학교 급식이 불만이었다. 겨우 11년을 산 나조차도 이 맛에 그 돈을 줘야 한다는 게 아까웠다. 식판 파란불 자리에 올려진 키위를 친구에게 가져가라고 말하던 어느 날, 급식을 안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병원에서 '알레르기 진단서'를 떼다 제출하는 것이었다. 나는 키위 알레르기가 있다. 먹으면 외견상으로는 두드러기가 없지만 목구멍이 간지럽고 성대가 부어 숨쉬기가 힘들다. 여섯 살, 꿈처럼 남아있던 키위에 대한 기억을 두고 시험 삼아 손톱만 한 키위 조각을 먹었다가 동네 사거리 병원까지 기어가야 했다. 아주 가끔 나오는 메뉴였지만 급식 중단의 이유를 키위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저는 잠재적 알러지러입니다"

급식을 멈추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는 도시락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최신'이어서 좋은 건 전자제품뿐, 전생에 뭘 하며 살았던 건지 유독 빈티지, 레트로에 마음을 뺏기곤 했다. 말해 무엇한 엄마 음식 솜씨와 철컹거리는 양은 도시락을 향한 로망을 품고 '탈(脫) 급식' 세계에 발을 디뎠다. 보자기에 싸여 궁금증을 자극하는 '오늘의 메뉴'와 매일같이 손 편지를 적어 도시락에 숨겨 둔 '엄마의 쪽지'를 읽는 재미로 며칠을 보냈다. 변덕쟁이의 흥미는 늘 그렇듯 오래가지 못했다.

로망이 상상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4D를 마주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이른 아침 갓 지은 밥은 엄마의 뜨거운 정성을 몰라주고 찬밥 신세로 전락했고, 기가 막히게 식욕을 자극하던 엄마표 김치는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분명 제자리를 찾아 조신하게 있었을 반찬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해 널브러져 있었다. 클라이맥스는 라면 봉지에 들어있던 김과 소아과 물약 통에 담긴 간장이었다. 부피를 줄이고 흐르지 않게 하려는 엄마의 깊은 뜻을 열한 살의 난 이해하지 못했다. 문제는 엄마에게 불만을 털어놓을 수도 없다는 거였다. 우리 집에서 '반찬 투정'은 금기였기에 밥에 들어있던 콩도 매번 몰래 삼키던 나였다(언젠가 몸속에서 잭과 콩나무가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 적도 있었다). 오늘은 어디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마음을 졸이며 책가방 속 반찬 냄새를 채근했다. '창피하다'고 느껴진 순간 엄마의 애정 어린 도시락은 숨겨둔 자식이 되었다. 음식을 남겨 엄마를 속상하게 하고 싶진 않았기에 라면 봉지가 든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불시에 김을 꺼내 입속으로 구겨 넣었다. 몇 번의 급식비를 넘겼을까, 호기로운 나의 도시락사(史)는 자연스레 끝이 났다. 시간이 훌쩍 흐른 지금은 콩이나 당근을 억지로 삼키지 않고 당당히 편식 중이다. 당시의 복잡미묘했던 기억은 빼놓을 수 없는 추억으로 유쾌하게 회자되고 있다.

며칠 전 35년째 고단한 몸을 이끌고 교단으로 향하는 아빠에게 줄 도시락을 쌌다. 아빠의 도시락을 책임졌던 엄마의 친정행(行)이 발단이었다. 십수 년 전 발가락 수술로 입원했던 아빠 병문안 날 고사리 손으로 싸갔던 오므라이스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칼같이 현관을 나서는 아빠에게 무사히 도시락을 전달하기 위해 아예 밤을 새우는 주특기를 발휘했다. 메뉴는 흰밥에 김치 참치 볶음, 마늘종 장아찌, 팽이버섯 계란말이, 그리고 스팸. 왠지 정석(?)에 가까운 듯한 조합이라 만들고도 뿌듯했다. 그렇게 단 하루를 위한 도시락을 싸는 동안 문득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벤트성 도시락을 만든 나는 아빠로부터 고맙단 인사가 자동 예약된 상태지만, 엄마의 매일은 피곤함을 붙들고 메뉴, 도마와 씨름해야 했던 일상의 나날이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익은 김치와 고기를, 아빠는 겉절이와 생선구이를 선호한다. 동생과 아빠는 매운 음식을 못 먹고 나는 매우 즐긴다. 집에 파김치가 있으면 갓김치를 찾고, 양파장아찌가 있으면 마늘장아찌를 찾는. 가스불에서 야무지 리듬을 타는 된장찌개만으로도 훌륭한 저녁일 것을, 나는 매번 치킨 얘기로 산통을 깬다. 끼니를 준비하는 엄마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는 딸. 이미 육아와 살림을 시작하고도 남았을 이 시기에 나는 여전히 삼식이로 살고 있다. 엄마는 하루를 여는 아침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야행성으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이 습관화됐던 난 비몽사몽으로 엄마에게 맞섰다. 엄마는 아침과 밥을 기꺼이 공짜로 팔려는 '영업사원' 역, 나는 아침밥과 잠을 맞바꾸려는 '철없는 고객' 역을 맡아 인과가 뻔한 일일드라마를 찍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엔 우리 엄마도 교단에 있었다. 엄마의 출근 준비는 립스틱을 바르는 것보다 빨간 체크무늬 미키마우스 도시락통 지퍼를 닫는 게 우선이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배웅하는 손을 놓고 어린이집 버스에 오를 여유가 없었던 나와 엄마는 이른 새벽 어린이집 철문을 두드리며 상주하는 선생님을 깨우는 게 일과였다. 집안일과 육아, 교직 생활을 완벽하게 해냈던 엄마는 나와 5년 터울의 동생이 태어난 후 교단을 내려왔다. 내가 하려는 것들을 위해 그저 나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꿈꾸는 동안 엄마의 시선은 언제나 거울이 아닌 가정으로 향했다. 늘 우리의 건강을 걱정했고 끼니를 준비했다. 밥을 먹고 난 뒤에도 엄마의 손은 나의 눈보다 빠르게 설거지 거리에 가 있었다.


배달 음식에는 한없이 관대했으나 엄마의 집밥은 내 몸에 붙은 살처럼 당연하게 여기던 퍽퍽한 마음. 변덕쟁이와 사는 엄마의 삶은 죽 끓이고 약 달이듯 한결같은 인내의 반복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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