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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Jun 16. 2020

이어폰을 놓고 왔다.

이어폰을 놓고 왔다.

버스카드만 큰일은 아니어도 깨나 절망스럽다. 차라리 떼놓고 온 게 버스카드라면 망설일 것도 없이 집으로 향하면 되지만 이어폰은 그렇지 않다. 버스 시간을 뒤로 미루는 대신 음악을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이어폰 없이 다니다 보면 평소엔 몰랐던 많은 말을 필요 이상으로 듣게 된다. 소개받았던 남자의 허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누군가의 하소연, 시작점에 선 남녀의 간질간질한 대화, 바쁜 일상 속 틈을 내 묻는 안부•••.

막힌 도로를 퍽퍽하게 달리는 버스의 딸꾹질도 느껴진다. 하차벨을 일찍 눌러 놓고 시치미를 떼는 승객과 다짜고짜 다급함을 어필하는 승객 야속한 기사의 귀먹은 푸념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사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사이렌 비명이 빈 차선을 미끄러진다. 매운 것을 먹었는지 베트남을 다녀왔는지 참을성 없이 크락션을 남발하는 비싼 차도 있다. 자연스럽게 귀에 꽂아 넣던 콩나물이 없으니 이 많은 것들이 들리고 보인다.

아직 갈 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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