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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Jul 15. 2020

잘 맞는 코드에도 사랑이 꽂히지 않을 수 있다

'선다방'을 보고 난 어느 밤

잘 맞는 코드에도 사랑이 꽂히지 않을 수 있다. TV 드라마 속 꿈만 같은 캐릭터들, 생전 알리 없던 일반인들의 소개팅까지.. 전지적 시점으로 두 남녀를 보고 있다.


드라마틱한 전개 앞에선 현실의 어려움 따위는 모두 접고 하나의 사랑에 올인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도 일반인 남녀의 소개팅 장면을 보고 있을 때면 '그래 저러니까 어려운 거지'라며 현실감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이내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물음표 하나가 둥둥 떠오른다.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풋내기같이 연애랄 것도 없던 조그만 경험에도 알만한 감정은 죄다 알아낸 듯 여겨졌다. 친구들의 연애담을 들을 때면 부러움이 맥주처럼 차오르다 우울한 거품이 되어 르곤 했다. 열해도 좋으니 뜨겁길 바랐다.


병을 흔든 것도, 따른 것도 나였다. 답은 언제나 그랬듯 내게 있었다. 모든 상황들을 상자 속에 넣고 밀어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기에 알맞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아서. 그 미완에서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내가 나에게도 쏟지 못하는 사랑을 누가 나에게 줄까 하는 부족한 마음도 있었다. A에서 B도 가지 않았는데 벌써 Z까지 혼자 뜀박질을 하고 있던 거였다. 욕심도, 자신도 없던 나는 그냥 지금이 편했다.


그럴듯한 사람이 되어, 그럴듯한 사람을 만나, 그럴듯한 사랑을 하게 되는 건 말 그대로 그럴듯한 허상일 뿐일까.
첫인상이 별로면 철벽을 치게 된다던 여자는 걸음보다 빠른 시선으로 남자 앞에 서자마자 무장해제되었고, 긴장한 채 두 주먹을 연신 부딪히던 남자는 미소를 띠었다. 공통 취미와 직업을 갖고 있던 두 남녀는 "설렘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남자의 말에 애매한 온도가 되어버렸고, 재밌는 남자가 좋다던 여자는 지나친 재미에 호감을 잃어버렸다.


이게 이건지 저게 저건지 알 수 없는 게 남녀의 마음. 잘 가다가 작은 방지턱을 넘지 못하고 멈춰 서기도 하고, 답답하게 막히는 듯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뻥 뚫린 도로 위를 달리기도 한다. 지금의 나는 그런 그들을 지켜보며 내가 취하고자 하는 감정만을 편식하고 있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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