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록 젠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살 Oct 08. 2020

싸이월드 : 마지막 로그인




왔다감ㅋ
퍼가요~♡
 방명록은 비밀이야^-^
 일촌을 맺으시겠습니까?





이따금 들어가 본 그곳엔 나와 친구들, 이름만 흐릿한 이들의 흔적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수년 전부터 '모두 사라질 거다' '이제 버틸 힘이 없다' 등의 이야기가 나왔던 싸이월드. 앱과 홈페이지는 남아있지만 접속이 되지 않는다. 폐업 수순을 밟는다는 기사가 마지막인데, '안녕' 말도 못 한 모든 기록과 이대로 작별인 걸까. 무려 싸이월드인데.. 언제고 다시 찾으면 어린 시절 앨범처럼 볼 수 있을 알았건만 해외 플랫폼에 무수히 많은 이들의 추억이 스러질 줄은.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도 없던 시절의 이모저모를 채웠던 건 단연 싸이월드였다. 그 작은 공간 안엔 음악도, 사진도, 일기도, 방명록도 있었다. 사랑하는 자들에겐 핑크빛 꽃내음이 흘러넘쳤고, 이별했거나 짝사랑 중인 이들은 헛헛 마음을 대문짝만하게 걸어곤 했다.


나 또한 싸이월드에 진심인 사람 중 하나였다. 일일 방문자와 스크랩 수가 늘면 기분이 좋았고, 'NEW' 업데이트 표시가 되어 있지 않으면 괜히 불안했다. 학교에 있는 동안 하루 종일 같이 있었던 친구들과는 핸드폰 문자로, 방명록·일촌평, 버디버디, 네이트온으로 옮겨 다니며 이중삼중 수다를 떨었다. 눈을 치켜뜨고 입을 가린 채 셀카를 찍거나 입 코에 스티커를 붙이는 게 유행고, 어떤 애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블러 처리를 하기도 했다.


다람쥐도 아니면서 도토리에 연연하고 BGM 한 번 고를라치면 내 마음 대변할 곡 찾아 헤매었다. '무제'의 감성 글, 영화 캡처 이미지를 게시하며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에게 얼마나 진심인지' 일방적인 텔레파시 놀이도 예사였다. 전국 팔도에 있는 이들과 모두 친구가 되려고 했던 걸까. 진짜 인맥인 것 마냥 수백 명에 달하는 일촌 목록 스크롤을 내리며 뿌듯했더랬다.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일찍이 떠나보낸 뒤엔 절개를 지키듯 매일같이 짤막한 편지를 남긴 적도 있다. 없어지고 말 싸이월드에 적을 바에 맥시멀리즘 내 방 안 어느 수첩에 남겼더라면...무더웠던 8월이라는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는 지금이 부끄럽다. 함께한 인연의 깊이보다 풋내 나는 제 감성에 취했던 그때의 기억. 관종이었던 나.


남들 따라 만들었던 페이스북은 얼마 안 가 닫아두었다. 지금껏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는다. 현실의 말과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건만 0과 1의 세상에서조차 타인의 수와 반응에 민감해지는 느낌이 싫어서다. SNS상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자기만족이란 게 과연 존재하긴 할까? 남을 의식하지 않고서야 핸드폰에만 담아둬도 충분한 일련의 기록을 왜 고르고 골라 랜선으로 끌어올린단 말인가. 일면식도 없던 또래, 선배와 친한 듯, 좋은 듯, 공감하는 듯 'ㅎㅎ'와 이모티콘을 남발하던 그때의 나는 아무래도 싸이월드와 함께 사라진 것만 같다.


몇 년 전 '나만의 매거진에 나 혼자 발행한다'는 마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고,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됐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삶에 글을 들이고 싶은 내게 남는 건 메모장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수를 헤아리는 친절한 글이 아님에도 스쳐가다 화면을 튕기지 않고 읽어주는 사람들이 고맙고, 부지런히 서랍을 채워가는 이들의 한 편 한 편이 좋은 자극이 된다. 소셜 미디어를 하지만 SNS는 안 하는  브런치를 통해 많은 사람을 알고, 여전히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