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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살 Oct 06. 2020

안녕2




어찌 아름다운 만남만 있을까

끝을 보기 위한 시작임을 예단할 순 없지만
결국 우리는 이별하기 위해 만나는지도 모른다.








점토를 굴려 만물을 만드는 일이었다. 막연히 꿈꾸던 곳에 실제로 발을 닿게 된 A는 기꺼이 을을 자처했다. 자신의 온기그들과 함께 놓인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부풀었고 운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정성을 다해 만든 조형물을 그들에게 건네고 나면 한없는 기다림이 남았다. 간택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것 같았다. 그럴싸하게 격식을 갖췄던 시작과 달리 방치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애초에 약속했던  날짜는 지켜지지 않았다. 기웃거렸고 계속해 물었다. 떠먹여야만 겨우 입을 벌리는 아이처럼 수동적인 태도에도 초심의 애정을 잊지 않았다. 함께 나들이를 가자고 했던 그들은 나중에 저들끼리 찍은 사진만을 조용히 걸어놓을 뿐이었다. A는 자신이 그들에게 건 귀 작은 코끼리, 투명한 사람, 물렁한 돌 등을 떠올렸다. 그들 소굴 어딘가에 처박혀 헝클어지진 않았을지 걱정했다.

이제와 보니 한없이 허술한 종이 쪼가리를 괜히 만지작거리며 만물을 만드는 일에 다른 조건이 있었는지 기억을 헤짚었다. 마땅한 처사를 외면한 채 입과 문을 닫아 건 그들은 A의 소극적인 문제 제기에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돈만 던졌다. 늘 그랬듯 사과는 없었다. A는 확실히 깨달았다. 딱한 사정을 꺼낸 것도, 먼저 도움을 필요로 한 것도 그들이었지만 안달복달하며 환상에 빠져든 건 오로지 A뿐이었다는 것을. 또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어떠한' 만물이든 좋다고 얘기했지만 늘색 아래 놓일 빨간 사과, 노란 개나리, 푸릇한 소나무원한 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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