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좌표평면 위의 도형 문제. 우선은 도형 관점에서 보았다. 도형의 성질에 착안하여 식1을 도출하였다. 그런 후 식의 관점에서 식2와 식3을 도출하였다. 그 다음부터 오리무중. 한동안 씨름했지만 풀리지 않아 ‘이런 문제를 많이 풀어봤어야만 풀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포기했다. 나중에 보니 식3은 필요없었다. 식2 이후에 다시 도형의 관점에서 보았다면 간단히 풀 수 있는 거였다.
국어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골라야 하는 데 보기 전부가 맞는 것 같았다. 상황에 적용하는 문제라 지문을 계속 읽어봐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는 나올 때마다 대부분 틀렸던 터라 이번에도 안 되겠다 싶어 포기했다. 나중에 보니 전체 스토리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밑줄 친 부분만 보는 바람에 잘못 판단했던 것이다.
이것은 현재 상태에서 방법을 계속 고민하기 보다는, 과거의 결과를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한정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전에 이런 문제를 풀어 보지 않았다, 이런 문제는 나올 때마다 틀렸다, 지금까지 성적이 한결 같이 안 좋았다... 이 모든 것들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로부터 ‘또 틀릴거야’ 라던가 ‘이번에도 성적이 안 좋을거야’ 라고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몇 번 시도해 보고 과거 경험으로부터 이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모은 후 더 이상 나아가기를 포기한다.
위의 수학문제나 국어 문제는 앞에서 다루었던 것 중 가정 돌아보기나 맥락 살피기에 노력을 했다면 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한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만 작동한다. 그것은 ‘나에겐 풀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풀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생각은 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려는노력을 원천차단해 버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 편향(confirmatory bias 또는 myside bias)을 가지고 있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편향 동화(biased assimilation)가 있다. 이는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를 일치하지 않는 정보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한 연구에서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폭력적인 게임이 공격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편향 동화를 알아보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비슷한 정도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연구 결과 요약문을 제시한다. 폭력적 게임이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연구는 장기간의 영향력을 다루지 않았고, 공격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는 실제 행동을 다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연구가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에 대한 평가는 자신의 원래 의견에 따라 달랐다.처음부터 갖고 있던 생각과 일치하는 결론을 제시한 연구가 더 믿을만하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이 결과에 비추어서, ‘지금까지의 성적으로 보면 나는 공부에 재능이 없어’라는 믿음을 버리고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나는 공부를 잘할 수 있어’라고 믿기로 해보자.그리고 나면 ‘성적이 안 좋았는데 이러저러하게 노력해서 SKY대 갔다’는 얘기에 대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믿지 않을 때는 내 주변에서 성적이 안 좋았지만 SKY대 갔다는 사람을 떠올려본다. 그런데 해당 사례가 없으면? “에이, 나와는 상관없는 소리”하고 던져 버린다. 그러나 믿기로 하면 ‘이러저러하게’에 관심이 쏠린다. 그 동안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 SKY대에 갈만한 친구들이 그와 비슷하게 하는 것 같다... 이 점을 떠올리면 ‘나도 그렇게 하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지능이나 성격과 같은 특성이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관점을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 또는 실체 이론(Entity Theory)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변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을 성장 마인드셋 (Growth Mindset) 또는 증진 이론(Incremental Theory)이라고 한다.
고1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성장 마인트셋을 개발하는 온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프로그램 종료 후에 고1 1학기 기말 성적과 중3때 성적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 중위권과 하위권 학생들의 성적이 뚜렷하게 향상되었다. 상위권 학생들은 올라갈 점수가 별로 없으므로 뚜렷한 점수 향상은 없었다. 대신 이들은 도전을 선호하는 성향이 증가하였다. 이 결과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행동이나 성적과 같은 실제 결과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때 주의할 것이 있다. 믿음 그 자체가 결과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잘못된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법은 그대로인 채 ‘할 수 있다’고 주문만 건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잘못된 방법으로는 아무리 해도 나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나는 할 수 있다’의 정확한 의미는 ‘나는 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서 익힐 수 있다’이다.
변화가능성과 관련한 또 한가지 중요한 영역이 성격이다. 성격이 고정되었다고 생각하는 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에 따라 대인 관계의 대응 양상이 달라진다.
한 연구에서는 최소 3개월 이상 연애 중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성격에 대한 믿음이 갈등 대처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았다***. 그 결과 성격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주로 그 문제에 대해 터놓고 얘기해서 해결 방법을 찾고자 했다.하지만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주로 그러려니 하고 참는 편이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성격에 대한 믿음이 이별을 대하는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았다****.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이별을 통해 자신을 부정한다. 즉, 자기가 못나서 이별을 겪었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못나게 볼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창피함, 당황스러움, 분노, 슬픔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더 강하게 오래 느낀다. 자신이 못나서 이별을 겪은 것이니 앞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과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해서 다른 사람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또한, 성격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이별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만,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처음부터 전 애인을 만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고 생각하여 그 사람과 관련된 일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 한다.
능력이나 성격에 대한 ‘여기까지가 나야’라는 믿음은 오랜 기간에 걸쳐 충분한 증거를 쌓아 만들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확실하다고 여겨진다.그러나 이는 ‘여기까지’를 벗어나는 증거들을 묵살했기 때문일 수 있다. 결과가 믿음을 만들기도 하지만 믿음이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무시했기 때문일 수 있다.할 수 없다는 믿음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노력을 안 하게 만들고 이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그러니 ‘여기까지’의 의미를 ‘앞으로도 여기까지’가 아니라 ‘지금은 여기까지’로 바꿔 생각해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성장이나 변화 가능성을 지지하는 증거와 방법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 Greitemeyer, T. (2014). I am right, you are wrong: How biased assimilation increases the perceived gap between believers and skeptics of violent video game effects. PloS one, 9(4), e93440.
** Yeager, D. S., Romero,C., Paunesku, D., Hulleman, C. S., Schneider, B., Hinojosa, C.,... Dweck, C. S.(2016). Using design thinking to improve psychological interventions: The case of the growth mindset during the transition to high school. Journal of Educational Psychology, 108,374 –391.
*** Kammrath, L. K., &Dweck, C. (2006). Voicing conflict: Preferred conflict strategies among incremental and entity theorists.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2(11), 1497-1508.
**** Howe, L. C., & Dweck,C. S. (2016). Changes in self-definition impede recovery from rejection.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42(1), 5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