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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링크 Jul 06. 2017

틀린문제의 심리학 17. 변형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수학: 

좌표평면 위의 도형 문제. 선분의 길이를 알아내야 풀 수 있는데  그림에서 알 수 있는 정보로는  부족해서 풀지 못했다. 나중에 보니 좌표에서 힌트를 얻어 보조선을 그었다면 풀 수 있는 거였다. 

영어 : 

주제로 적절한 것을 찾는 문제. 지문의 표현과 비슷한 보기를 골라서 틀렸다. 나중에 보니  답은 지문과는 전혀 다른 단어들을 사용했지만 의미는 같았다.


위의 경우는 주어진 것이 절대적이라 여기고 그것에 손을 댈 생각을 하지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제나 지문을 마치 왕의 명령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주는 대로 받들기만 할 뿐, 여기에 손을 대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 


십대는 빠듯한 시간 안에 주어진 것을 주어진 대로 정확하게 끝내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이러다 보니 보조선을 긋는다거나 문장의 표현을 바꾸는 것처럼 주어진 것을 변형한다는 생각은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대다수는 주어진 것을 변형하는 방법이 주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변형을 떠올린다.그것도 ‘주어진’ 변형을.


학습은 주어진 것을 수동적으로 머리 속에 보관하지 않고 여기에 능동적인 작업을 했을 때 효과적이다.이를테면, 무언가를 외울 때 반복해서 읽기만 하는 것보다는 그 내용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작업을 했을 때 더 잘 외워지는 데 이를 생성 효과(generation effect)라고 한다. 내용을 만든다는 것은 예를 들면 외울 것의 순서를 뒤섞어 놓고 바른 순서로 재배열 하기,일부 내용을 비워 놓고 이 부분을 채우기, 관련된 단서를 주고 내용 떠올리기 등과 같이 주어진 것을 변형한 후에 이를 다시 주어진 형태로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능동적인 작업의 범위를 암기에서 공부 전반으로 확장하면 자기주도 학습(self-directed learning), 자기조절 학습(self-regulated learning), 생성 학습(generative learning)이 된다. 이들은 공통점이 많아 혼동되어 쓰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자기주도학습 > 자기조절학습 > 생성학습의 관계를 갖는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학습을 계획하고 실행하고 결과를 평가하는 것이 자기주도 학습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자신의 인지, 동기,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자기조절 학습능력이다. 그리고 자기조절 학습에 주로 활용되는 인지 전략이 주어진 지식에 능동적 작업을 하는 생성 학습 전략이다.여기에는 자기 말로 바꾸기, 정보를 변형하기, 재구성하기, 스스로 설명해보기, 다른 정보와 결합하기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한 연구에서는 물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생성학습의 효과를 알아보았다*.이 때 3가지 조건을 두었다. 첫 번째 생성학습 조건에서는 예시들과 원리를 종합하여 배운 것을 학생 스스로의 표현으로 기술하도록 했다.두 번째 생성학습 조건에서는 우선 원리를 예상해서 기입하도록 한다. 그런 다음 예시들과 실제 원리를 읽는다.그리고 예상과 실제의 차이를 고려하여 결과가 그렇게 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기술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통제 조건에서는 예시들을 본 후 화면에 제시된 원리를 그대로 기술하도록 했다. 원리에 대한 학습이 끝난 후에는 간단한 시험을 보았다. 그 결과 2가지 생성학습 조건 간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이들은 모두 통제 조건의 학생들보다 점수가 훨씬 높았다. 이는 학습해야 할 원리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이지만 그것을 나에게 효과적으로 장착하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를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주어진 것에 변형을 가하는 것이 효과적인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거나 공감했음을 표현할 때가 그렇다. 한 연구에서는 상대가 한 말을 바꾸어 표현했을 때 좀 더 공감받았다고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최근에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연구자가 그 갈등에 대해 10개의 질문을 한다. 질문에 답을 할 때 마다 연구자는 방금 대답한 내용을 다른 말로 바꿔 말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받아 적는다. 연구자는 이 두 가지 반응을 교대로 하는데 질문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 있으므로 피험자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순서를 바꾼다. 즉, 절반은 바꿔 말하기 → 받아 적기 → 바꿔 말하기 → 받아 적기…의 순서로 반응하고,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는 그 반대 순서로 반응한다. 그리고 매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당시의 감정이 어떤지를 설문으로 응답하도록 했다.그 결과 피험자는 연구자가 받아 적은 때 보다 바꿔말한 때 더 긍정적인 감정을 느꼈다.


주어진 것의 본질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바꾸는 것의 최고봉은 하고 있는 일을 바꾸는 것이다.Job Crafting은직무 재창조, 직무 의미 창조, 자기주도 직무설계 등으로 번역되는데, 직장인들이 일을 보다 의미있는 방식으로 하고자 하는 행동을 말한다.이는 학생의 자기주도 학습이나 자기조절 학습과 비슷하다. 일이나 공부는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지만 주도하거나(direct),조절하거나(regulate) 심지어 새롭게 만들어 낼(craft)여지도 있는 것이다. 큰 틀에서는 해야 할 공부나 일 자체를 바꿀 수 없지만, 그것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감정, 생각, 주변 사람이나 자원, 환경, 방법 등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 공통적이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과도하게 많은 분량 또는 현재의 능력이나 자원으로는 해 내기 어려운 일을 줄 때,성공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것을 그대로 떠안지 않는다. 자신이 얼만큼 할 수 있는지를 먼저 가늠한 후 상사에게 분량 또는 난이도를 줄이거나 기한 또는 사람을 늘려 달라고 요청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자신이나 일이 망가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학원 숙제가 너무 많거나 어렵다면 선생님에게 분량이나 난이도를 조정해 달라고 요청하던가 학원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몸이나 정신,학원 공부, 학교 공부 중 최소 하나 이상이 망가지게 마련이다. 


공부나 일 외에도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을 별 생각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흔하다.수행과제 보고서 마감 날짜가 가까워 오는데 선생님이 딱히 보고서의 분량이나 양식을 알려주지 않았다.그럼 주어진 것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해서 알려줄 때까지 기다린다. 선생님께 여쭤보면 알려줄테고 그러면 막판에 분량이나 양식을 맟추느라 두 번 작업 안해도 되는데 말이다. 지시나 규정에 불합리한 점이 있어도 그냥 따른다. 미처 어떤 점을 생각하지 못해서 의도치 않게 불합리함이 빚어진 경우도 있기 때문에, 상황을 설명하면 그것을 바꿀 수도 있는 데 말이다. 


이처럼 주어진 것이 부족하거나 부적절해도 나서서 채우고 바꾸려 들지 않는 것은 주어진 것을 완성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은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는 주어진 것을 따라야 할 상사로 보기 때문이다.사실 따라야 할 것은 주어진 것을 통해 이루어야 할 결과 또는 지향점이다. 결과나 지향점을 받들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을 부려야 하는데, 거꾸로 주어진 것을 따르면 결과나 지향점이 이것에 휘둘리게 된다. 


그러니 주어진 것을 주도적으로 다루도록 하자. 이를 위해서는 결과(지향점)는 그대로 두되,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더하거나 빼거나 바꿀 것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Morrison, J. R., Bol, L., Ross, S. M., & Watson, G. S.(2015). Paraphrasing and prediction with self-explanation as generative strategies for learning science principles in a simulation. Educational Technology, Research and Development, 63(6), 861-882.

** Seehausen, M., Kazzer, P., Bajbouj, M., & Prehn, K.(2012). Effects of empathic paraphrasing–extrinsic emotion regulation in social conflict. Frontiers in Psychology, 3,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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