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전에 계산 실수라고 생각했던 문제를 또 틀렸다. 다시 보니 계산 실수가 아니라 공식을 적용하는 방법을 정확하게 몰랐던 거였다.
국어:
한 지문에 딸린 문제가 여러 개였는데, 앞에 것 몇 개를 연거푸 못 풀었다. 당황해서 나머지 문제를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마지막 문제는지문과 관계 없이 맞출 수 있는 거였다.
위의 경우는 틀림을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보고 좌절했거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시험을 보는 중에 못 푸는 문제들이 하나 둘 생기면 ‘큰 일이다. 이것도 못 풀었으니 이번 시험 망했네. 좋은 대학 가기는 글렀네’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줄을 놓게 된다. 또 문제를 풀 때는 항상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틀리면 ‘이걸 틀리다니 난 바보야’하고 자책하기 바쁘다. 틀렸다는 것만으로도 괴로워서 틀린 이유를 찬찬히 뜯어보지 않는다. 바보임을 되새김질하는 것 또한 충분히 괴로우니까. 틀린다는 것을 안 좋게 ‘끝났다’고 생각해서 괴로운 건데, 사실 괴로운 것으로 ‘끝냈을 때’ 안 좋은 것이다.
크고 작은 역경과 실패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튀어 오르는 힘을 회복 탄력성, 심리적 탄력성 또는 탄력성 (resilience)이라고 한다.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해도 포기하지 않고, 극복 방안을 찾기 위해 깊이 성찰한다. 혼자 힘으로 안된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다.또한, 좌절감이나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탄력성이 낮은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한다. 성공은 좋은 것, 칭찬 받아 마땅한 것이고 실패는 창피한 것, 비난 받아 마땅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들은 무언가를 할 때 즐거움 보다 의무감을 강하게 느껴 일을 미루기 쉽고, 실패로부터 배울 점을 찾기보다는 실패가 준 상처에 매달린다. 일상에서 겪는 일 중 하나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에 흠집을 내어 자책에 매몰된다. 또한 완벽하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길 꺼리며, 한 번 무언가에 실패하면 거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시도하지 않으려 한다.
탄력성은 성적, 학교 생활 적응, 심리적 문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대학들은 학생들이 작은 역경이나 실패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심각한 문제로 본다.사회에서는 점점 이전에 없던 도전들이 늘어나는데 비해 학교와 부모는 학생들을 점점 수동적으로 키우기 때문에 탄력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문제로 본다. 그래서 학생들의 탄력성을 개발하기 위해 하버드 대학을 주축으로 하여 컨소시엄을 구성하였다*. 각 학교별로 고유한 이름을 붙여 진행되는 탄력성 증진프로젝트들은 실패를 누구나 겪는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재학생, 교직원, 졸업생의 다양한 실패 경험 이야기, 탄력성에 대한 읽기 자료, 워크샵, 간담회, 토론, 코칭, 멘토링 등을 제공한다.
이 외에 대학별 특색 활동들이 있는데, 한 가지 예로 펜실베니아 대학 PennFace 프로젝트의 거부의 벽(Wall of Rejection) 을 들어 보겠다. 이는 커다란 화이트 보드에 각자가 거부당한 경험을 쓴 형광색 카드를 자신의 사진과 함께 붙여서 전시하는 것인데, 스마트 폰 버전도 있다**. 여기에는 SNS에 쓴 게시물에 좋아요가 안달리는 것부터 원하는 학교에서 떨어진 것까지 다양한 사안들이 포함된다.
그 다음에 생각해 볼 것은 왜 틀렸는지에 대한 이유 파악이다. 자신 또는 타인의 행동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귀인(attribution)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원인을 파악할 때 객관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나 편의에 따르는 경향이 있다.이로 인해 귀인은 왜곡되기 쉽다.대표적인 예로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그 사람의 성격이 못돼 먹었기 때문이고 자신이 잘못했을 때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 '행위자-관찰자 편향', 일이 잘 되면 내가 잘 해서이고 일이 잘못되면 통제 불가능한 외부 상황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적 편향'이 있다. 학업에서도 귀인 편향이 나타난다. 우수한 학생들은 안 좋은 결과에 대해 주로 통제 가능한 것을 원인으로 보는 반면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주로 통제 불가능한 것을 원인으로 돌린다.
오답 이유 분석이 중요하다는 점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고, 그 수준을 보면 다음에 또 틀릴지 여부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다음에도 또 틀릴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3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오답 이유가 두루뭉술하거나 외부 탓이라고 보기 때문에 통제불가능하다. 둘째, 오답 이유가 변하지 않는다. 셋째, 오답 이유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일치하지 않는다. 다음에 맞을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이와 반대이다.
‘문제를 잘못 읽는다’는 것을 예로 들어보겠다. 다음에 또 틀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저번 시험에서도 문제를잘못 읽어서 틀렸는데 이번에도 그랬다.앞으로는 문제를 잘 읽어야지’ 정도로 정리한다. 그리고는 이것을 까맣게 잊은 채 암기에 몰두한다. 다음에 맞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저번에는 문제를 끝까지 안 읽어서 틀렸는데, 이번에는 불일치를 일치라고 생각해서 틀렸다. 앞으로는 문제를 읽을 때 일치/불일치에 표시하고, 보기마다 O, X와 그 이유를 표시해야지’라고 보다 상세하게 정리한다. 그리고 오답 이유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정리한 것을 항상 곁에 두고 확인한다.
이러한 점은 누군가에게 사과할 때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사과할 때 효력을 발휘하는 요소는 다음 6가지이다.
후회 표현 – 잘못에 대해 미안함을 표현
이유 설명 – 잘못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
책임 인정 – 무엇을 잘못했으며, 그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
깨달음 선언 - 전과는 생각이 달라졌음을 다짐
회복 제안 – 상대의 상처 회복을 위한 조치
용서 구함 – 잘못을 용서해 주기를 요청
그런데 , 한 연구에 따르면 이 중 책임 인정과 회복 제안이 가장 효과적이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약하다. 책임 인정과 회복 제안은 또다시 같은 잘못을 하지 않도록 상대방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만, 용서를 구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통제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3가지를 섞어서 사과할 때는 “용서해 줘”는 빼고 “~, ~, 너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이렇게 할께”라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미안해, 용서해줘. ~”라고 말하는 것은 쓸모가 적다***.
이것을 성적에 대한 태도에 대입해 볼 수도 있다. 후회 표현은 ‘성적이 안 좋아서 속상해’, 이유 설명은 ‘~ 때문에 성적이 안나왔어’, 책임 인정은 ‘성적이 안 나온 건 내가 할 수 있는 걸 충분히 안 했기 때문이야’, 깨달음 선언은 ‘이제 내가 공부하면서 뭘 잘못했는 지 알았어’, 회복 제안은 ‘다음엔 이렇게 해야지’, 용서는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라는 생각으로 볼 수 있다. 다음에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번엔 성적이 안 좋아서 속상하지만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만으로는 부족하고, 통제가능한 점을 찾아서 구체적인 방안을 세울 필요가 있다.
틀림이나 실패에 무력해지는 것은 그것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미 끝난 평가로 보기 때문이다.이러한 생각은 좌절과 자책감을 퍼부어 실패로부터 배울 수 있는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그러나 실패는 누구나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무수히 겪게 될 일상적인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실패했는지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실패로부터 어떻게 일어설 것인가이다. 이번의 틀림을 지금까지 노력한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음 번 ‘성공을 위한 출발점’으로 생각하자.
이를 위해서는 우선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누구나 실패 또는 예상 밖의 틀림을 겪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후, 틀림의 핵심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다음 번 성공을 위해 그것을 어떻게 바로 잡을지를 찾아보아야 한다.
*https://resilienceconsortium.bsc.harvard.edu
** http://www.thedp.com/article/2017/02/wall-of-rejection-now-in-annenberg
***Lewicki, R. J., Polin, B.,& Lount, R. B. (2016). An exploration of the structure of effective apologies. Negotiation and Conflict Management Research, 9(2), 177-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