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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링크 Jun 13. 2017

틀린문제의 심리학 15. 감정에 휩쓸린다면

영어 

단어 넣기 문제에서 분명 많이 본 단어인데 시간에 쫒기다 보니 초조해져서 뜻이 생각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보기의 구성상 아닐 것 같은 것을 제외하는 방법으로 생각해 보았다. 두번씩 나온 것 중에 확실히 아닌 것을 제외한다. 그럼 두 개가 남는데 이 중 하나는 왠지 해석이 이상했다. 그리고 남은 하나를 썼는데 틀렸다. 그런데, 답을 보는 순간 뭔가에 홀린 것처럼 단어의 뜻이 떠올랐다.

국어

문법 문제에서 분명히 문제에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고 밑줄까지 쳐 있었는데, 문제를 풀 때는 적절한 것 고르기라고 생각해서 틀렸다. 문법 문제가 나오면 머리에 잘 안들어오는 데다, 시험도중에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다 온 후로 더 심해졌었다. 안그래도 문제 분량이 장난 아닌데 시간을 까먹었다 싶어서 엄청 불안하고 긴장했던 것이다.


위의 경우는 통제불능이거나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해서 부정적 감정에 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문제를 푸는 것은 지식만의 몫은 아니다. 지식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컴퓨터에 자료를 찾기 쉽게 저장했더라도 바이러스를 먹거나 전원이 나가면 쓸 수 없는 것과 같다.아는 문제를 틀리는 이유로 11회에서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반복과 확인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었다. 이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불안, 초조, 긴장,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 감정에 휩쓸리는 것이다.


부정적 감정의 예로 불안을 들어보겠다. 불안은 주의력을 마비시켜 판단, 기억, 지각 등 인지 기능을 전방위로 무력화시킨다. 공부에 대한 불안 중 가장 흔한 것이 수학불안이다. 한 연구에서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불안이 지극히 기초적인 인지능력까지도 손상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연구자는 피험자에게 모니터에 나타난 사각형의 개수를 말하도록 요청하였다. 사각형은 1개부터 9개까지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개수를 말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한 결과, 4개까지는 수학불안에 따른 차이가 없었는데 5개부터는 수학불안이 높은 집단에서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4개까지는 세지 않고도 어떤 것의 개수를 파악할 수 있지만, 5개 이상부터는 세어야 알 수 있다고 한다. 개수를 센다는 것은 수학과 관련된 가장 기초적인  인지 기능인 셈이다. 이 연구 결과는 불안이 인지능력의 바닥부터 갉아먹는 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부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버려’ 또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라고 하면 대부분 ‘나도 그러고 싶지만 점수가 부정적인데 어쩌라고!’ 하고 반문할 것이다. 이 논리로는 부정적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먼저 긍정적 결과가 나와야 한다. 부정적 감정의 비극이 여기에 있다. '선 결과 후 감정'의 순서에서는 긍정적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부정적 감정이 전방위로 구멍을 뚫어 버리기 때문에 새로 채우는 능력 뿐 아니라 기존에 있던 능력까지도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부정적 감정이 생각이나 행동을 가로 막고 있는 때는 생각보다 많다. 뭔가를 해야 하는 데 시작조차 안하고 있을 때, 하려고 자리잡고 앉았지만 끝도 없이 잠만 쏟아질 때, 하고는 있는데 생각만큼 진전이 안 될 때. 이런 경우 의지가 약하거나 머리가 나빠서라기 보다는 해독하지 않은 감정이 발목을 잡기 때문일 수 있다. 누군가의 기분 나쁜 말 때문에 화가 나서, 계속 되는 안 좋은 결과에 낙담해서, 잘못한 말이나 행동에 후회가 돼서,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맥 빠져서, 무언가가 걱정돼서 등. 이런 때는 정신을 마비시키는 부정적인 감정을 끄집어 내서 정화시키고 가야 한다.


또한, 부정적 감정에 사로 잡혀 있으면 다른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으면 그 사람의 호의에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 사람의 약한 측면에 힘이 되어 줄 생각을 못한다. 그래서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값진 친구를 지쳐 떠나 버리게 만든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 있으면 그 사람이 진심으로 나를 위해 하는 말도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상황이 망가진 후에 뼈저리게 후회한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에 사로 잡혀 있으면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상처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그래서 소중한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적절히 처리 못한 부정적 감정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부정적 감정은 무시하면 예상하지 못한 때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튀어 나온다. 압도되면 하염없이 활개를 친다. 부정적 감정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에 맞서야한다. 맞설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명상이나 호흡을 통해 부정적 감정이 없는 상태를 실제로 조성해 보거나, 부정적 감정의 긍정적인 기능을 찾아보거나, 글쓰기를 통해 부정적 감정을 해체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다.



*Maloney, E. A., Risko, E.F., Ansari, D., & Fugelsang, J. (2010). Mathematics anxiety affects counting but not subitizing during visual enumeration. Cognition, 114(2), 293-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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