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
불일치 문제를 푸는 데 보기 중 한 문장에 처음 보는 단어가 있어서 그 문장의 의미가 확실하지 않았다. 나머지보기가 모두 일치하면 확실치 않은 보기를 고르고, 나머지 보기에 불일치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고르면 될 터인데, 이상하게도 확실치 않은 보기가 답일 것만 같았다.
수학 :
여러 문자가 포함된 식을 계산할 때, 그 문자의 값들을 모두 구하려고 하다가 시간만 낭비했다. 나중에 보니 그
중 몇 개는 풀이 과정에서 상쇄되어 구할 필요가 없었다.
위의 경우는 모두 ‘모르는것’에 대해 평정심을 잃은 탓이다. 미지의 것은 확실히 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불안해 지는것이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기본적인 두려움이긴 하다. 하지만 선행과 반복과 암기로 이중 삼중 빈틈 없이 공부하는 것에 익숙해서 일까? 요즘의 십대는 특히 더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 보인다. 모르는 단어나 용어가 전체 맥락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을 때에도, 맥락을 통해 추론할 수 있을 때에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 자체로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느낀다. 미지수가 포진해 있지만 풀다 보면 자기들끼리 상쇄될 수 있을 때에도, 미지수들이 덩어리로 값이 드러날 수 있을 때에도, 당장 미지수 하나하나의 값을 밝혀야만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느낀다. 문제 또는 풀이 과정에 모르거나 불명확한 것이 있으면 문제 풀이능력에 치명적인 구멍이 뚫린 것처럼 생각되어 불안해지는 것이다.
불확실하거나 모호한 상황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성을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Tolerance of uncertainty) 또는 모호함에 대한 인내(Tolerance of ambiguity)라고 한다. 불확실성이나 모호함은 불충분한 정보, 모르는 것, 낯선 것,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것 등으로부터 온다.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가 약한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트레스, 걱정, 불안을 많이 느끼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어붙는다. 그런데 VUCA (Volatile, Uncertainty, Complexity, Ambiguity) 시대라 불리는 현대에는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가 과거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VUCA란 상황이 변덕스럽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모호하다는 뜻이다. 1990년대초반 미국 육군 대학원에서 처음 사용된 이래로 지금은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심리학에서는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를 주로 불안이나 걱정을 야기하거나 인지 기능을 왜곡하는 요인으로 보아왔다. 하지만, 비즈니스나 교육분야에서는 이것을 인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로 본다. 사회에 나가면 정보가 충분하지 않거나, 전에 해 본 적이 없거나, 이전에 없던 일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을 하는 방법이나 결과가 불확실한 일들이 많아진다. 이럴 때 대부분은 머뭇거리고 일을 질질 끌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불확실한 것, 미지의 것에 대안 불안과 두려움으로 마비되는 대신에 이미 알고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한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를 리더의 중요 자질 중 하나로 본다 1).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이것을 학교에 적용하여 학교의 경영진과 교사의 자질 중 하나로 제안했고 2),조지 워싱턴 대학에서는 이를 교직원에게 적용하여 모호함에 대한 수용성을 기르는 교육을 제공하기도 한다 3). 한편, 교육에서는 OECD의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인 PISA의 고난이도 문제에서 모호함이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능력을 반영하고 있으며 4),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은 전체 교육과정에 적용할 수 있도록 모호함에 대한 인내를 기르는 교수법을 개발해 왔다 5). 또한 진단부터 치료에 이르기까지 불확실성과 모호함이 많은 의학에서도 교육 과정에 이를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어 왔다 6).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는 진로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연구에서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 수준이 진로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 보았다 7). 그 결과,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가 강한 사람은 진로 결정을 위한 정보가 불확실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정보가 부족하거나 이런 저런 정보가 서로 맞지 않더라도 크게 영향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어차피 완벽한 결정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로 결정에 우유부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십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 문제에 대한 정답 뿐 아니라,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서 초등학교부터 어떤 공부를 얼만큼 해야 하고 심지어는 어떤 책을 읽고,어떤 대회를 나가고,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까지 정해져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불확실성에 너그럽지가 않다. 그래서 진로 결정을 할 때 위 연구에서처럼 완벽한 결정을 추구하고 이런 저런 정보가 서로 맞지 않는 탓에 진로 결정을 회피하기도 한다. 또한 우유부단에 빠지거나 반대로 섣부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자신을 탐색하지 않고 유망학과 또는 주변의 권유와 같이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만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세상물정을 충분히 모르니 외부 상황이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어떤 직업이나 학과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또는 그 동안 뿌듯함을 느꼈거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것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진로를 대입으로만 한정 짓지 않고 평생에 걸쳐 할 일로 넓혀 본다면, 불확실성에 좀 더 관대해 질 수 있다.
마치 위의 영어 문제에서 다른 보기가 적절한지를 판단해서 문제를 풀 수 있듯이, ‘나에게 딱 맞는 학과’는 불확실한 채로 놓아 두더라도 현실적인 면에서의 성적과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을 고려해서 몇 개의 후보 학과를 선택할 수 있다. 또 수학 문제에서 당장은 미지수를 모르는 채로 두더라도 풀다 보면 결국 답을 알아낼 수 있듯이, 일단 ‘나에게 딱 맞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학과를 선택하더라도 대학을 다니면서 ‘나에게 좀 더 맞는’ 직업으로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세상은 점점 더 불확실성이 커져간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대학에서 직장으로 옮겨갈 때마다 불확실성은 업그레이드 된다. 불확실성을 없애거나 피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불확실함을 만났을 때 불안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불확실함을 안고 가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것/모르는 것이 있으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것을 그대로 둔 채 다른 중요한 단서를 찾아 보아야 한다.
1) Shullman, S. L., & White, R. P. (2012). Build Leadership's Tolerance for Ambiguity. Chief Learning Officer (Oct), 30-33.
3) https://wld.hr.gwu.edu/dealing-ambiguity
4) Stephen, M., & Warwick, I. (2015). Educating the More Able Student: What Works and why. SAGE. p145.
5) https://r.umn.edu/about-umr/news/tolerance-ambiguity-aaron-kostko
6) Domen,R. E. (2016). The ethics of ambiguity: rethinking the role and importance of uncertainty in medical education and practice. Academic Pathology, 3, 2374289516654712.
7) Xu, H., & Tracey, T. J. (2014).The role of ambiguity tolerance in career decision making. Journal of Vocational Behavior, 85(1), 1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