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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문제의 심리학 2. 어림짐작에 발등 찍는다면

by 싸이링크

영어 :

글의 요지를 고르는 문제다. 지문에 요리에 관한 얘기가 자주 나왔기 때문에 요리에 대한 보기를 골랐는데, 나중에 보니 요리는 소재였고, 주제는 학습이었다.

수학 :

문제에 나온 사각형이 정사각형이라고 생각했다. 그 바람에 변의 길이를 잘못 구했더니 보기에 답이 없어 아무거나 찍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정사각형이었다면 문제에서 제시한 조건 중 일부는 제시할 필요가 없었다.그리고 조건을 전부 사용해서 풀었다면 정사각형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상황에서 단서를 꼼꼼히 찾지 않고 언뜻 떠오르는 기억이나 생각에 따라 문제의 전체를 판단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겉보기에 익숙한 대로 판단하는 경향은 오답 이유를 생각할 때에도 나타난다. 그 문제를 풀면서 무엇을 어떻게 잘못 생각했는지 파고 들지 않고, 손쉽게 떠오르는 것들을 이유라고 생각해 버린다. 국어는 ‘문제를 꼼꼼히 안 읽어서’, 영어는 ‘단어가 약해서’, 수학은 ‘시간이 부족해서’ 등. 그 동안 많은 문제를 풀어 오면서 이런 이유로 틀린 때가 있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틀린 문제들을 하나씩 따져보면 의외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작거나,다른 이유로 틀렸을 수도 있다. 국어의 경우 문제를 제대로 읽긴 했지만 공부할 때 다양한 예시들을 챙겨 보지 않은 탓에 응용을 못 했을 수 있다. 영어의 경우 단어를 몰라서 틀린 것보다는 구문을 파악하지 못해서 틀린 것이 훨씬 많을 수 있다. 수학의 경우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은 결과이고, 그렇게 된 이유가 공식을 충분히 외우지 않아 계산할 때 불필요하게 헤맸기 때문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 휴리스틱 (Heuristic)이 있다. 이는 논리적 추론이나 사실보다는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는, 즉 생각의 지름길을 따르고자 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와 반대인 것이 알고리즘인데, 알고리즘은 일정한 순서 또는 규칙에 따라 생각을 풀어가는 것을 말한다. 휴리스틱은 한편으로는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쉽게 떠오르는 다른것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낳기 쉽지만,또 한편으로는 일부 정보를 무시함으로써 의사 결정을 보다 빨리할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휴리스틱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다음 두 가지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첫째,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사례에 기초하여 판단하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또는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이다. 쉽게 떠오르는 이유는 자주 접해서, 최근에 겪어서, 또는 강한 인상을 받아서 일 수 있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 친구들의 연애 중 또는 어디 놀러간 것에 대한 게시물들을 자주 보면 자기만 재미없게 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은 모든 친구들이 페이스북을 하는 것도 아니고 페이스북에 재미없거나 힘든 일은 행복한 일보다 훨씬 덜 올리는데 말이다. 또 특정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나 게임광이 쇼킹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접한 후에는,그들 전체가 위험하게 느껴진다. 실제로는 일반인의 범죄율에 비해 그들의 범죄율이 뚜렷하게 높지 않은데 말이다.


쉽게 떠오르는 것에 따라 판단한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한 재미있는 연구들이 있다. 우선 자기 주장이 강했던 자신의 행동을 한 집단에는 6개, 다른 집단에는 12개 나열하게 한다. 그리고나서 자신이 얼마나 자기 주장이 강한지를 평가하도록 하면, 전자의 경우 더 주장이 강한 것으로 평가한다.6개를 떠올리는 것이 12개를 떠올리는 것보다 숫자는 적지만 더 ‘쉽기’ 때문이다. 즉, 자기 주장이 강한 행동을 쉽게 떠 올릴 수 있는 걸 보니 나는 자기 주장이 강하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마찬가지로 대학생들에게 어떤 수업의 개선점을 한 집단에는 2개, 다른 집단에는 10개 나열하도록 했을 때는 후자가 그 수업을 더 좋게 평가한다. 개선점을 떠 올리기 어려우니 개선할 게 별로 없다 즉, 괜찮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둘째로는 기존에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한 특성이나 두드러진 특성에 기초하여 판단하는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ness Heuristic) 또는 대표성 편향(Representativeness Bias)이 있다. 가용성 휴리스틱과 마찬가지로 이는 극히 일부의 특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전체의 모습이나 확률을 무시하게 되어 오류를 발생시킨다.


한 연구에서는 전체의 분포를 고려하지 않고 전형적인 인상에만 기초하여 판단하는 예를 보여주었다**. 연구자들은 어떤 대학의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이 학교의 심리학과 학생과 통계학과 학생 중에서 무작위로 A라는 학생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A는 체계적이고 정확하며 실용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이 학생의 전공은 무엇일 것 같습니까?


이에 대해 약 80%가 통계학과라고 대답했다. 이 학교의 심리학과와 통계학과의 정원 비율은 약 7:3이고 학생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확률적으로는 심리학과 학생일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A의 성격이 통계학에서 연상되는 전형적인 특성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을 한 것이다.


앞의 영어 문제는 가용성 휴리스틱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여러 보기 중 지문에서 자주 등장했던 단어나 어구를 사용한 보기의 경우 지문과의 연관성을 떠올리기 쉬웠던 것이다. 수학 문제는 대표성 휴리스틱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도형의 모양이 정사각형의 전형적인 특성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진로 결정에도 휴리스틱이 작용한다. 부모님이나 친척 등 주변에 교사가 많아 진로를 교사로 정한다면 가용성 휴리스틱이 작용한 것이다.드라마에서 프로파일러가 멋있게 나와서 이를 선택하거나, 최근에 들었던 강연에서 정신과 의사들이 영 지루하게 말하는 바람에 정신과 의사란 재미없는 직업일 것이라 단정한다면 이는 대표성 휴리스틱이 작용한 것이다. 폭넓게 본다면 교사 외에 자신에게 좀 더 잘 맞는 직업이 있을 수 있고, 드라마와는 달리 프로파일러에게 지루한 점이 있을 수도 있으며 유쾌한 정신과 의사가 있을 수도 있다.


친구 관계에서도 휴리스틱을 찾아볼 수 있다. 상대방이 서운하게 대한다고 느껴서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 가용성 휴리스틱 때문일 수 있다. 사실은 서로 비슷하게 서운하게 했거나 오히려 내가 상대에게 서운하게 한 것이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상대가 나를 서운하게 한 행동은 쉽게 떠오르는데 비해 내가 상대를 서운하게 한 행동은 쉽게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한편, 다방면에서 성적이 좋은 어떤 아이에 대해 ‘재는 공부만 하는 아이라 나랑은 안 맞아’라고 판단한다면 이는 대표성 휴리스틱이 작용한 것이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도 다양한 취미가 있을 수 있고, 성적과 관계없이 친구를 원할 수 있고, 다양한 고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공부에만 관심이 있어서 자기보다 성적이 안 좋은 애들은 무시하고 공부를 더 잘하는 것 외에는 고민이 없는’ 전형적인 모습을 떠올리고는 나와 안 맞는다고 단정짓는 것이다.


지금까지 휴리스틱의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휴리스틱은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다. 복잡한 상황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판단하는 데는 휴리스틱이 유용하다. 매사를 꼼꼼히 따져가며 판단하려면 앞에서 다루었던 불확실성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게 된다. 특히 빠른 시간 안에 질병을 판단해야 하는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은 휴리스틱을 자주 사용한다.이들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를 어느 정도 가늠할수 있는 상태에서 휴리스틱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다시말해, 쉽게 떠올랐거나 대표적이라 여기는 특성이 다른 특성 대비 중요하다고 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휴리스틱을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휴리스틱을 사용하는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휴리스틱 자체만으로 옳거나 잘못이라고 판단하기 전에 휴리스틱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즉,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그저 쉽게 떠오르는 생각으로 또는 어렴풋한 인상으로 어림짐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짚어보아야 한다.


* Fox, C. R. (2006). The availability heuristic in the classroom: How soliciting more criticism can boost your course ratings. Judgment and Decision Making, 1(1), 86-90.

** Pennycook, G., Fugelsang, J. A., & Koehler, D. J.(2012). Are we good at detecting conflict during reasoning?. Cognition, 124(1), 1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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