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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문제의 심리학 4. 엉성하게 설명한다면

by 싸이링크

국어:

인물의 태도에 대해 평가한 후 평가 근거를 서술하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지문에 나타난 구체적인 사례를 들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서술하여 감점되었다.

수학 :

B변의 길이를 구하는 것이 문제였고 이 과정에서 A변의 길이를 구하는 것이 포함되었는 데, 계산에 치중한 나머지 어떤 변의 길이인지를 표시하지 않았다.정신없이 풀다 보니 A변의 길이를 B변의 길이로 착각하여 그대로 답으로 썼다.

위의 경우는 무언가를 설명할 때 읽는 사람이 당연히 이해할 것으로 생각하고 두루뭉술하게 하거나 무언가를 생략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무언가를 설명한다는 것은 내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머리 속에 있는 것, 그것을 내가 말이나 글로 표현한 것, 그것을 상대가 이해한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이 세가지가 거의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은 책에서처럼 정해진 줄을 따라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질러진 방에서처럼 흩어져 있거나 무언가에 가리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과 표현 사이에 빈틈이 생기게 된다. 상대가 나의 말이나 글을 받아 들일 때는 그 빈틈에 자신의 생각을 끼워 넣는다. 따라서 원래 자기가 의도했던 것이 왜곡되지 않으려면 이러한 빈틈을 줄여야 한다.


이러한 빈틈이 생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기를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려는 자기중심성 때문이다.자기중심성으로 인한 편향 중 하나로 투명성 착각(illusion of transparency)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생각, 느낌 등 다양한 내적 상태가 타인에게 마치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보여지듯 있는 그대로 보여질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을 말한다.


투명성 착각이 가장 안타까울 때는 연인, 친구,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이에서 발생할 때다. 가까운 사이에서는 타인과 자신 사이의 유리벽이 더 투명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두루뭉술하게 설명하거나 원가를 빠뜨려도 뜻이 충분히 전달될 것이라고 여기는 때가 많다. 한 연구에서는 가까운 사이와 낯선 사이에서의 투명성 착각을 비교하였다*. 30쌍의 연인과 24쌍의 부부를 모집하여 두 쌍씩 한 그룹(각 그룹당 총 4명)으로 구성했다. 4명이 동그랗게 서로를 등지고 앉도록 하고 이들에게 각각 4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 20개와 그에 따른 해석 보기를 준다.

> 문장 예시

What have you been up to?

> 가능한 해석

1) 늦은 사람에 대한 짜증

2) 잘 지냈는지에 대한 관심

3) 바람을 피지 않았나 하는 의심

4) 상대방이 준비한 깜짝 이벤트를 모르는 척 능청 떠는 것


이 중 1명에게는 여러 의미 중 하나에 표시가 된 것을 주고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게 나머지 3명에게(한 명은 읽어 준 사람의 애인 또는 배우자이고 나머지 2명은 모르는 사람) 읽어주도록 한다. 이를 들은 3명은 제시된 4가지 보기 중 자신들이 들은 문장의 의미라고 생각하는 것을 고르고, 읽은 사람은 들은 사람들 각각에 대해 4가지 중 어느 것에 표시했을 지를 추측해서 표시한다. 그런 후 모두 자신의 판단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하는 지를기술한다. 결과를 보면 재미있다. 정확하게 들은 정도는 연인, 배우자, 낯선 사람 간에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읽어 준 사람은 연인이나 배우자가 낯선 사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한 실제 정확도와는 관계 없이 읽어 준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배우자나 연인이 낯선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정확하게 이해했을 것으로 확신하였다. 이 결과는 가까운 사이의 경우 다른 사람들보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할 것이라고 당연시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서운한지, 어떤 행동이나 말을 어떤 의도에서 했는지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나 많이 속상해. 하지만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네가 부담스러워 할테니 괜찮다고 말할께. 그래도 넌 내 친구니까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많이 속상하다는 걸 알아줬음 좋겠어’라고 생각하면서 말은 달랑 ‘괜찮아’라고 하면 상대방은 내가 진짜 괜찮은 줄 알 것이다. 상대에게 큰 상처를 줘 놓고는 그저 ‘미안해’라고 하면서 상대가 이 말을 ‘내가 그 때 이런 저런 일로 고민이 많아서 네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어. 정말 많이 반성했고 이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네가 얼마나 속상했는 지 알아.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꺼야. 너무 미안해서 고민하다 진짜 어렵게 용기내서 말하는 거야. 그러니 용서해줘.’라고 해석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이다. 마치 시험에서 불충분한 서술이 감점이나 아예 틀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 것처럼 사람 관계에서도 불충분한 설명은 상대에게 불필요한 감정을 느끼게 하거나 관계 자체가 깨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직장에서는 상사나 고객에게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있다. 그런데 자신이 보기에는 명확하지만 상대방은 이해가 안 된다고 하거나 엉뚱하게 이해하기 일쑤다. 이렇게 되면 보고서를 수도 없이 다시 써야 하거나 중요한 거래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지시할 때도 두루뭉술하게 하거나 당연히 이 정도는 알아서 하겠지 싶어 생략하면 엉뚱한 결과물을 받게 된다. 심지어 위의 수학에서의 사례처럼 구체적인 기술이나 설명을 하지 않을 경우 나중에 스스로도 그것이 왜 필요한지,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하라는것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말이나 글을 통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나에게 당연한 것이 상대에게도 당연할 것이라는 가정 때문이다. 이런 가정으로 인한 흔한 실수 중 하나가 바로 두루뭉술하게 또는 일부를 빼 먹고 설명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사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루뭉술하거나 빼 먹은 부분이 어디인지 깨닫지 못하기 일쑤여서 고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내게는 충분한 설명이지만 타인에게는 부족한 설명일 수 있음을 이해하고, 내 설명의 빈틈을 타인의 시각에서 지속적으로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Savitsky, K.,Keysar, B.,Epley, N., Carter, T., & Swanson, A. (2011). The closeness-communication bias: Increased egocentrism among friends versus stranger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7(1), 269-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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