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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인순 Jan 31. 2019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위험한 아름다움

책 속의 사람들

파시즘이 서곡, 단눈치오

파시즘만큼 매혹적(?)인 정치사상은 없다. 그것은 인종주의, 민족주의, 비합리주의, 반자유주의가 교묘하고도, 때로는 선택적으로, 그리고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한 측면에서 보면 파시즘은 정치사상이기보다는 ‘정치심리학’이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정치 종교’이다. 그만큼 파시즘은 모호하다. 사회주의가 반자유주의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기는 하지만 파시즘은 아니다.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나 사회적인 민족주의 역시도 파시즘과는 구분된다. 어쩌면 파시즘이란 인간의 욕망 깊은 곳에서부터 표출되는 정치 현상일 수 있다.      


루시 휴스핼릿이 쓴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는 900페이지에 가까운 대작이다. 저자는 이 대작을 단눈치오라는 한 인물을 추적하는 데 전적으로 투자했다. 그만큼 파시즘의 내면적 구조는 복잡하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가 ‘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책에서 “법제적 민주화가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무늬라면 파시즘은 물 밑에서 살아 움직이는 한국 사회의 결”이라고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파시즘은 좌파나 우파의 맥락과 구분되는 파시즘 자체의 이데올로기를 그 내면의 흐름으로 가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울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파시즘, 인간희극’이란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그녀 역시도 파시즘의 기원을 무솔리니와 히틀러에게 두면서도, 한편으론 파시즘의 영혼은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파시즘은 울브라이트가 경고한 것보다 훨씬 더 근원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녀 자신도 그 범주에 들어있을지 모른다.      


21세기에 파시즘의 담론이 거듭 제기되는 이유는 오늘날 반공주의, 위계적 폭력, 위력에 의한 성폭력, 젠더 혐오, 학교와 회사, 정부에 존재하는 억압적 구조, 일부 가정에서 여전히 발견할 수 있는 위계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는 명백히 우리 안에 살아있는 파시즘이 증거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단눈치오라는 한 명의 시인을 집요하게 추적한 이유 역시도 여전히 살아있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파시즘의 물줄기를 따라가 보기 위함이다. 결코, 파시스트가 아니었고, 자신도 파시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단눈치오, 그러나 그는 파시즘의 기원이 되었다. 그가 연주한 파시즘의 서곡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분명 오늘날 우리의 내면에 들리는 조용하고도 치명적인 세이런의 목소리일 것이다.           


이 책은 단눈치오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기술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세분된 주제로 분류된 단눈치오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파시즘의 서곡을 연주하는 각개의 물줄기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 물줄기는 개인적인 성격 구조와 욕망에 대한 것이었지만 결국 합쳐져 무소리니나 히틀러에 이르게 된다.      


저자가 기록하는 물줄기들은 숭배, 영광, 사랑의 죽음, 고향, 젊음, 귀족, 아름다움, 엘리트주의, 순교, 질병, 바다, 데카당스, 피, 명성, 초인, 남성성, 웅변, 잔인함, 생명, 드라마, 인생의 장면들, 속도, 만화경, 전쟁의 개들 등, 때로는 밝고, 또 때로는 어두운 것들이지만, 모든 물줄기를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이 녹아있는데, 그것은 바로 심미주의이다.      


“회색 담들의 회반죽 사이로 보이는 자갈돌(...) 바람 한 점 없는 열기, 종달새들의 노래, 시체들이 얼굴을 땅으로 향한 채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다. (...) 창백한 귀들(...) 깊은 구덩이를 파는 삽과 괭이 소리(...) 비극적인 돌담들 사이에 나 있는 쐐기풀(...). 나는 내가 선택받은 영혼일 뿐만 아니라 희귀한 영혼을 지닌 존재라고 굳게 믿었다. 내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든, 나의 감정과 감수성이 가지고 있는 희소성이 그 행동을 격상시키고 특별하게 만든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러한 희소성에 대한 자부심과 호기심 때문에 나는 희생이란 것을 알지 못했고, 자신을 낮출 줄도 몰랐다. 아울러 나의 욕망을 과시하듯 드러내는 걸 포기할 줄 몰랐다. 하지만 이 모든 섬세함을 뒷받침하는 것은 결국 무시무시한 이기주의뿐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의무를 소홀히 하면서도 특혜만을 누렸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전쟁 중, 탈영병 처형을 바라본 단눈치오가 스스로 쓴 메모와 저자 휴스핼릿의 상상이 어우러져 표현된 대목이다. 이 대목은 전쟁의 심미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단눈치오

휴스핼릿이 바라본 단눈치오는 고전과 현대 문학을 두루 섭렵한 인물이었으며, 나름의 폭과 깊이를 지닌 사려 깊은 문화의 아들이었다. 단눈치오는 아름다움과 생명, 사랑, 상상력 등 모든 지고지순한 것을 대변하는 시인이었지만 이탈리아를 불필요한 전쟁으로 몰아넣은 전쟁광이기도 했다. 이는 단눈치오에게 있어서 전쟁은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폭력 자체가 자신을 부각할 수 있는 미학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발터 벤야민이 예술적 심미화의 극단은 전체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한 경고를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다. 도대체 미학과 전체주의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고서야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이 예술을 넘어 인간마저 탐미적 대상으로 볼 때, 그곳에 전체주의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인간을 넘어 역사까지도 심미화 할 때, 결국 그곳에 전쟁의 핏빛 수가 놓아진다. 그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단눈치오는) 19세기 도시의 거리를 가로지르는 양 떼와, 양털이 달빛에 섬뜩하게 은박지처럼 빛나고 있는 장면에 관해서 썼는데, 이는 일상적이되 다른 작가들은 절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그에게 동물은 농촌의 목가를 조금도 떠올리게 하지 못했다. 동물은 도축되기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피조물에 불과했다.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저자 휴스핼릿은 단눈치오가 가지고 있는 미학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리 잡은 파시즘의 그늘을 위와 같이 표현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민감성, 감각적 언어 표현, 그러나 그것이 향하는 죽음의 미학, 이 희귀성이 단눈치오의 정신 구조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미래주의자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는 단눈치오를 향하여 “쾌락을 주는 그의 재능은 가히 악마적이다.”라고 이야기하였는데, 보잘것없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의 매력은 치명적이었음이 틀림없다. 단눈치오는 눈부신 자기 홍보의 달인이었기 때문이다. 홍보에는 속물적 능력이 필요하다.      


열쇠 구멍을 통해 보이는 반딧불이, 녹슨 철제문에 다소곳이 내려앉은 흰 나비에 감동한 단눈치오가 동시에 떠난 사랑에 매정하게 등을 돌리고, 전쟁의 참사에 무심하며, 쓰러져 가는 병사들에게 애국심을 강조한 냉혈인간일 수 있는 이유 역시도 그런 속물적 능력 중 하나다.     


단눈치오에게는 사랑도, 전쟁도 예술 작품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순간 펜을 들 수 있었고, 전쟁을 통해 삶의 진정성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이 모든 희생과 비극은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아름다운 고통에 불과했다. 저자는 노년의 단눈치오가 젊은 시절 가장 사랑했던 딸에 관하여 이야기했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단눈치오)의 네 번째 자식인 딸 레나타가 태어났고, 거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훗날 노년에 접어든 그는, 젊은 시절의 어느 밤에 작은 딸아이를 팔에 안고-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면서도 온몸을 바쳐 아기의 열을 내리게 하는 데 집중하면서-그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감정에 북받쳐 동틀 때까지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단눈치오의 고백을 들으면서도 그의 ‘순수하고 강력한 감정의 북받침’의 의미가 의심스러운 이유는 그의 희귀성 때문이다. 그의 감정은 그 자신이 그랬듯이 믿을 만한 것이 될 수 없으며, 믿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또한 파시즘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파시즘을 미워한다. 그러나 가장 증오하고 미워하는 대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 호색한이자 전쟁광이며, 거짓과 허세로 가득 찼던 단눈치오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파시즘의 서곡과 그의 인생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일시나마 이런 고통을 넘어설 수 있게 한다.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단눈치오, 그는 단지 자신의 인생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시인이었다.      


이런 그의 인생관은 그의 첫 번째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사람은 예술 작품을 만들 듯이 자신의 삶도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는 정치가로서 자신이 가지고 놀 수 있는 권력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알고 있는 것을 너무나 효율적으로 써먹었다.      


“나는 내 행동에 지속적으로 상징적인 힘을 부여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라고 고백한 단눈치오는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오늘날 전문화된 기획사들이 자신의 회사에 소속된 아이돌 그룹이 대중의 사랑을 받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 일들과 같은 것들을 해낸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모든 광고와 홍보의 내면에는 파시즘적 요소가 어느 정도는 들어있다고 보아야 한다. 단지 그 목적과 결과만 다를 뿐이다.     


단눈치오가 50대에 들어섰을 때, 사라예보의 총성이 온 유럽을 뒤흔들었다. 이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했고, 이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독일도 프랑스에 선전 포고했다. 지정학적으로 정치적으로 중간지대였던 이탈리아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단눈치오는 이를 치욕적이고 비겁한 결정이라고 맹비난했다.      


1915년 2월 단눈치오는 ‘라틴문명의 방어’라는 학술 대회에서 현란한 말솜씨와 박학다식한 지식을 이용하여,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라틴문명의 방어를 위해 이탈리아가 영웅적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탈리아는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그의 참전 주장에 청중들은 열광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도, 영웅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것도 아닌, 시대와 영웅이 만나는 상황을 단눈치오만큼 극적으로 설명해 주는 인물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만들어 내었고 파시즘의 어원이 된 파스케스는 로마 집정관의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이었고, 무소리니는 이것을 표절했다.      


그러나 단눈치오는 개의치 않았다. 단눈치오는 자신의 몸과 몸으로부터 창조되는 말과 글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전문학과 아름다운 운율, 사랑과 상상력에 극도로 민감했던 단눈치오의 예술성은 잔인한 살인과 전쟁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했다.     


1920년대에 이르면서 무솔리니에 의해 파시즘의 정치적 모습이 드러난다. 파시즘의 어원을 표절했듯이 무소리니는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고 있는 단눈치오를 파시즘의 정신으로 이용했다. 1938년 단눈치오가 사망한 후, 그는 스스로가 거부하였던 파시즘의 물줄기를 탄생시킨 근원으로 추앙되었다.     


언젠가 TV에서 본, 환희에 찬 얼굴로 히틀러의 연설을 듣고 있던 독일 여성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기억한다. 무솔리니와 함께 거꾸로 매달린 그의 아름다운 연인 클라라의 사진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변태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러한 것들은 심미적이다. 그들이 파시스트에 열광했던 것은 그들 안에 파시즘의 미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미학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내면의 핏빛 근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는 특별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이전, 이미 파시즘의 서곡을 알렸던 한 시인의 걸음과 그 내면을 살펴보면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결코 파시즘이 아닌 파시즘의 미학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사회적 환경 속에서 폭력적으로 발화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현대사 비극의 굴곡마다 눈을 부릅뜨고 있는 파시스트들이 있다. 그들의 욕망이 생산한 비극은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세계사의 편목 앞에 펼쳐진 핏빛 풍경이었다. 그러나 파시즘은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잔혹 동화가 아니다. 그것은 언제라도 역사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      


대중의 시각에서 볼 때,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미친 사람들이고, 파시즘 역시도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진 이념이다. 파시즘이란 이름만으로도 그것이 가진 비정상성과 폭력성은 자체 설명된다. 그러나 파시즘에는 나름의 미학이 있고, 인간 내면의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파시즘이 두려운 이유는 바로 이런 인간 현상의 보편성에 있다. 계몽주의와 낭만의 시대, 그 어떤 역사의 갈래보다도 더욱 지적이고 이성적이었던 유럽에서 왜 대중들은 파시스트들에게 열광했었을까 라는 질문은 그만큼이 중요하다.      


열쇠 구멍을 통해 보이는 반딧불이, 녹슨 철제문에 다소곳이 내려앉은 흰 나비에 감동한 단눈치오가 동시에 떠난 사랑에 매정하게 등을 돌리고, 전쟁의 참사에 무심하며, 쓰러져 가는 병사들에게 애국심을 강조한 냉혈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 휴스핼릿은 단눈치오의 이야기가 아무리 현란하고 파란만장하다고 해도, 그의 이야기를 개인의 놀라운 재능과 인생 드라마의 범위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것은 르네상스와 경이의 19세기 낭만주의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기도 한 사회적 문제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민족주의

윌 듀란트는 그의 유명한 대작, ‘문명 이야기’에서 일본을 지칭하여 ‘꽃의 문명’이라고 했다. 꽃은 일본인의 정서를 가장 잘 반영한 상징물이다. 그러나 일본의 꽃은 알프스에 핀 꽃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것은 매우 심미적이고, 섬뜩한 미학적 가공이 되어 있다. 가미카제는 애국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떨어지는 벚꽃으로 상징되었다. 공중에 산화되는 꽃잎 위에 스치는 칼의 그림자처럼 섬뜩하다.          


2016년 일본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해군의 주력 기종이자, 가미카제 전투기였던 제로센을 복원하여 시험비행을 했다. 시험비행은 뉴질랜드에 살고 있던 제로센의 소유주인 이스즈카 마사히데의 기획 때문에 실시되었다. 그는 제로센의 ‘귀향’을 위해 자금을 모집했고, 이를 토대로 20분간에 걸친 제로센의 시험비행을 성공시켰다. 제로센의 ‘귀향 비행’을 위해 자금을 기부했던 사람들은 그 순간 위대한 일본,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영웅의식, 강한 군국주의로의 회귀, 그런 것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작년(2018년), 아베 4차 내각에 입각했던 ‘시바야마 마시히코’ 신임 문부과학상은 2차 대전 당시 전시 총동원 체제로 일본을 몰아넣기 위해 활용했던 ‘교육칙어’를 옹호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이 ‘교육칙어’에 현재의 일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보편성’이란 단어에서 바로 파시즘의 향기가 느껴진다. 가미카제의 ‘귀향 비행’을 주도하고 지원했던 일본인, 그리고 ‘교육칙어’를 다시 꺼내 든 정치인,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파시즘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     


올해 들어 일본은 해상초계기의 저공비행과 공격 레이더의 문제를 부각하면서 한일 간의 군사적 문제를 의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이것은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간 긴장 완화 국면에서 일본의 군국주의를 향한 움직임이 그 탄력을 잃을 것을 우려한 의도적 도발이라고 평가했다.      


명명백백한 것은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떨어졌다고 해서 일본 군국주의에 내재된 파시즘의 물줄기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패전 후, 그들은 강대국 앞에서 겸손해야 했고, 자신들이 피해를 주었던 주변 국가들에 대해서는 혼내(속내)를 들어내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일본 속에 잠자고 있던 파시즘의 미학, 군국의 심미화가 부활하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빠’ 문화

지난 1월 5일 태극기 집회에 모였던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세배를 올리겠다고 구치소를 찾았다. 반면 촛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 소위 ‘문빠’들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소리만 들으면 상대방에 대해 언어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재명 지사가 검찰에 출두할 때마다 그의 지지자들이 팻말을 들고 검찰 앞으로 몰려들어 구호를 외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런 ‘빠’ 문화 역시도 그 근원에는 파시즘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파시즘의 중심에는 언제나 매혹적인 한 사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파시즘이 애국주의에 근거하듯이, ‘빠’ 문화에는 특정인이나 특정 성향에 대한 지나친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건드리지 마! “, 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어! “라는 심리가 성토의 집단화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과 성토로 형성된 집단은 소위 ‘집단 정체성’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     


집단 정체성은 여혐, 남혐과 같은 사회 현상을 일으키기도 하고, 학연과 지연 등의 근본적 유대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빠’ 문화는 바로 ‘박정희 빠’이다. 박정희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은 심지어 그의 딸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 사람으로 대표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 외의 모든 것들을 공격하면서 혐오의 정치학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빠’ 문화로부터 찾아낼 수 있는 파시즘의 미학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미지’다. 이미지란 가장 강력한 통제의 메시지다. 한 정치인이 파시스트적 성향을 가졌는지 아닌지 알려고 하면 그가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아닌지를 살펴보면 된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올림머리이다. 고귀함으로 가장된 그녀의 올림머리는 자신의 어머니, 즉 박정희의 아내로부터 물려받은 파시즘의 유산이다.      


한국의 극우 집단, 극단적 보수주의 정치 세력에게 가해졌던 파시즘의 혐의가 지금은 좌파, 진보 세력에게도 옮겨가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빠’ 문화가 있다. ‘좌파’는 ‘좌빠’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파시즘의 서곡은 극우의 귀에만 들리는 것이 아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인간의 내면에 기생하는 파시즘의 서곡은 처음에는 조용하고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결국 그것은 거리를 가득 채우는 광기의 소리로 변모할 것이다.


한국의 대형 교회

오늘날 한국의 대형 교회는 그 구조 자체가 파시즘적이다. 한국의 기독교계 내부에서 흔히 반성하며 이야기되듯이, 교회 타락의 원인은 인격적으로 모자란 목사로부터 기인된 문제가 아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닌 이상, 담임 목사 한 명이 강제적 수단 없이 교회 전체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회 구조는 그 생성과 현상의 측면에서 파시즘적 구조와 매우 닮아있다. 우선 대형 교회는 순전했던 개척교회를 지나 성장하면서 서서히 목사나 장로 중심의 권력 구조로 설계된다. 성장의 단계에서 개별 교회는 교단이라는 외부의 더 큰 조직과의 연대를 통해 그 권력이 공인된다. 이렇게 공인된 권력은 내부 결속에 강력한 토대가 되고, 재정과 목회가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독재적 헌법의 제정을 통해 그 토대를 공고히 하게 된다.      


두 번째로 교회는 교인들의 이기심을 최대한 활용한다. 인사권을 가진 목사에게 충성 경쟁을 해야 만족스럽고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게끔 교회의 제도는 운용된다. 때로 이러한 제도에 불만을 가진 교인들이 담임 목사가 없는 자리에서 이런저런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목사의 앞에서는 절대적인 굴복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목사는 점차 교회의 각종 직분과 계급 제도 속에 자신의 권력을 구조화시킨다.     


세 번째로 교회는 실패한 대항 세력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더욱 강화한다. 어느 교회든 개혁 세력이 존재한다. 이러한 개혁 세력은 담임목사나 장로들에 의한 독재적 체제에 반기를 들고 저항한다. 그러나 교회는 압도적인 힘과 기득권을 이용하여 대항 세력을 제압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권위와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네 번째, 교회는 침묵하는 착한 교인을 이용한다. 교회와 목사의 문제를 잘 알고 있지만 가능한 자신의 신념과 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교회와 목사의 편이 된다. 사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왜 너희들만 문제 삼나?”라는 말로 교회는 침묵하는 착한 다수를 자신의 지원 세력으로 변모시킨다. 개별적 교인을 집단적 권력이 복속시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이런 모든 권력 구조의 중심에는 현란한 언변과 화려한 지식으로 대변되는 웅변, 즉 설교가 자리 잡고 있다. 매주 일요일 아침, 교인들은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예배당의 자리를 채운다. 교인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공감을 끌어낼 수 있게 창작된 설교에 목사는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교인들은 그 설교에 이끌려 다음 주에도 또 그다음 주에도 교회에 나온다. 이러한 강대 상의 독점으로 유지되는 한국 대형 교회는 파시즘과 너무나 닮았다.     


작은 독재자들그들이 파시스트인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작은 파시스트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대개는 자신도 작은 파시스트로 자라난다. 직장이란 (특히 한국의 직장은) 회사 구성원들의 생계가 걸려있는 조직이기에 모든 것이 경쟁이라는 구도 속에서 적응되고 해석된다. 혹자는 어떤 군사조직보다도 더 독재성이 강한 조직이 직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보아 온 직장의 작은 독재자들은 나름의 성격 구조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비슷한 성향을 보였다. 우선 단위 조직을 맡은 독재자들은 출세를 위한 자신의 어젠다를 부하들에게 전가한다. 어젠다에 맞추어 부하들을 통제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부하들에 의해 자신의 이미지가 나쁘게 전파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실 파시스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대중이다, 따라서 파시즘은 대중 포퓰리즘적 성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런 작은 독재자들을 파시스트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단계에서는 일종의 독재는 사실 출세라는 단어보다는 오히려 생존이라는 단어가 더욱 적합하기 때문이다.     


작은 독재자들이 임원이 되면, 그들은 한해 한해 상황에 따라 목숨이 결정되는 위기의 연속 선상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최고 경영자와의 소통 채널이 확대되고 권한이 강화되며, 권력의 범위가 확대된다. 사실상 독재의 환경은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역시도 모두 파시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 대한 충성이든, 먹고 살려는 방편이든,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과정에서 필연적인 독재적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것 역시도 파시즘이라고 부르기는 이르다.     


때가 되면 많은 생계형 독재자 중에 진정한 파시스트들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출현을 알리는 것은 그들의 행동 속에 나타나는 독재의 미학이다. 독재자들의 일은 사람을 통제하는 일과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일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는 그들이 그저 작은 독재자인지, 아니면 파시스트인지를 가늠해 준다. 파시스트, 그들의 전쟁은 골프를 통해 구현되기도 하고, 그들의 심미는 포도주의 담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느닷없이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는 파시스트들이 나타나 자신의 어설픈 예술적 식견을 떠들고 다니기도 한다. (혹시 당신의 주변이 이런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라)     


해외 출장이 잦아지고 자신이 다녀 본 지역의 이름과 항공 마일리지에 집착하기도 한다. 어느 날 뜬금없이 감명을 받았다는 책을 선물해 주기도 하고, 조금 지나친 경우에는 독후감을 요구하기도 한다.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지며, 그것이 마치 부하들에게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라 스스로 믿는다. 그러나 사실 그가 말하는 미래란 대체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말이나, 옷이나, 차나, 행동거지에서 고급스러워지고자 하는 속물근성이 노출된다. 권력이 없을 때는 들리지 않던 파시즘의 서곡이 권력이 누적되면서 점점 행진곡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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