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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인순 Jan 17. 2019

‘그것은 정말 애국이었을까’ 태극기를 드는 사람들

책 속의 사람들

그것은 정말 애국이었을까

“5일, 새해 첫 집회에 서울역과 서청대가 태극기로 물들었습니다. 애국 국민 여러분, 이 정권은 촛불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찬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투쟁하는 것은 정의입니다. 2018년에 우리가 진실과 정의의 투쟁을 했다면, 2019년은 진실과 정의가 승리하는 해를 만들어야 합니다. 새해 첫날 동해의 밝은 해는 찬란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만큼 어둠이 깊다는 것입니다. 찬란한 붉은 해가 곧 어둠을 몰아낼 것입니다. 반드시 그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정해졌습니다.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하여,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하여 힘차게 투쟁합시다.”    

 

새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1월 5일, 서울역에서는 101차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서 조원진 의원은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만이 정의이고 애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집회를 마친 그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는 구치소로 세배를 드리러 갔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이들의 황당한 행동이나 주장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그들은 이런 국민을 향해 ’언론에 속은 자’라고 단정했다. 그들의 주장을 떠나서 그동안 이들 집회의 진정성과 순수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의심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미 2년 가까이 이어온 이 집회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그들의 순수성은 인정되어야 한다. 물론 그 순수성이 어떤 내용과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2019년 1월 5일 열렸던 101차 태극기 집회

순수성, 다시 말해 진보와 보수가 각각 가지고 있는 순수성은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념의 가장 확고한 근간이다. 순수성은 자신만의 논리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강화하고 일방적 주장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이런 섬뜩한 순수성을 볼 때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념 외에 어떤 것도 섞이는 것을 거부하는 순수한 인간은 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또한, 진보와 보수가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고, 상대편 정책의 타당성을 진정성 있게 검토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보기 힘든 일일 것이라는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의 저자 클레어 코너는 미국의 한 극우 가정에서 자랐고, 보수주의자로 성장했지만, 인생의 어느 길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보수의 가치를 던져버렸다. 이 책, ’그것은 정말 애국이었을까‘ 에는 그녀가 던져버린 미국 극우의 역사적 잔재와 보수의 낡은 경험들이 여러 가지 묶음으로 담담히 기술되어 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인생을 한순간에 변화시킨 극적인 사건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극우 가정에서 성장하고, 결혼을 통해 두 아이를 가진 여성, 생명권 옹호주의자로서 낙태반대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한 보수주의자가 살아온 잔잔한 여정만이 있다.     


그 잔잔한 여정 속에서 진정한 애국과 정의에 대한 복잡한 문제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것은 잔잔한 그녀의 일생과는 달리 매우 극적이고 과격하다. 한 미국 여성의 인생 속에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교훈은 경험이 신념을 넘어설 수 있을 만큼 절실할 때에야 비로소 스스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실존과 정체성만이 절대적 신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 클레어 코너에게 있어서 실존은 출산과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며, 그 두 아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그녀의 정체성이었다. 동성애자의 엄마.     


제일 먼저 그녀가 굳게 잡고 있었던 보수의 손을 놓은 것은 낙태라는 사회적 문제에 참여하면서였다. 저자는 자신과 같이 일했던 소위 ’생명권 옹호론자‘들의 민낯을 확인하게 된다. 그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낙태를 반대하는 보수 정치인들은 생명권을 정말로 중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우파의 의제를 내세우고 확대하기 위해 낙태라는 아젠다를 이용해 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던 낙태 여성들은 결코 악하거나 멍청하거나 게을러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은 대부분 겁에 질려있었고, 생존의 문제가 그만큼 절실했던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저자 클레어 코너는 자신의 발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명권 옹호론자들은 그들이 악의 축인 양 비난하던 가족계획 프로그램이 낙태 말고도 여러 성취를 이루어 냈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암 진단, 피임, 성 감염증 치료를 위해 가족계획 프로그램에 의존하고 있었다.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가족계획 예산 중 낙태에 쓰이는 것은 4% 미만이었으나, 생명권 옹호론자들은 그 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 책은 미국의 극우 단체인 존 버치 협회가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부활의 시동을 거는 광경으로부터 시작된다. 바로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고 6개월 뒤 새로운 우파 포퓰리즘 운동이 내걸었던 강령이다.     


1. 이민자들은 적이다. 국경을 보호하고 모든 불법 체류자들을 강제 추방하자.

2. 동성애는 사악하다. 기도로 어린이와 10대 청소년의 동성애를 물리치자.

3. 실업자들은 일할 의지가 없으며, 빈곤층을 일부러 빈곤한 상태에 머무른다. 최저임금을 삭감하고, 실업수당을 없애면 누구나 직업을 구할 것이다. 

4. 노동조합은 게으르고 무능력한 공무원들을 보호함으로써 경제 불황을 초래했다.

5. 부자들은 ’고용창출자‘이며, 그들의 부는 보호받아야 한다,

6. 사회보장제도는 지속 불가능한 제도이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 제한을 가하고, 기업과 ’고용창출자‘들의 세율을 낮춰야 한다.

7. 낙태는 살인이며, 법으로 금지되어야 한다. 강간과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이라도 예외로 둘 수 없다. 설령 임산부의 생명이 위험할지라도 예외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8. 2008년의 경제 불황은 기업에 대한 높은 세금 부과, 지나친 규제, 그리고 빈곤층의 주제넘은 대출에서 기인했다.

9. 정부는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므로 경기부양책은 무용하다. 일자리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세금을 줄이는 것이다. 

10. 정부는 개인이 총기를 보유하거나 소지할 권리를 제한할 수 없다. 총기가 법으로 금지된다면 무법자들의 손에만 총이 쥐어질 것이다. 

11. 미국은 신이 선택한 국가인데도 미국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우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진짜‘ 미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대통령은 미국을 증오하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이며 무슬림 인종차별주의자다. 


이 슬로건은 왠지 낫설지가 않다. 한국의 보수 집회에서도 지난 년말 100차 태극기 집회에서도 반역자 문재인을 처단하라는 플래카드가 사람들에 매달려 거리를 행진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공포는 이런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슬로건중 많은 부분들이 현재 트럼프 대통령 체제하에서 받아들여지고, 수용에 따른 정책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그런 상황이 들이 닥칠지 모른다.     


저자는 1963년 11월 극우주의자들에 의한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을 회상하며, 당시 아버지가 했던 말을 기억해 낸다. “슬퍼할 것 없다. 케네디는 반역자였어. 빨갱이들이 동족을 죽인거야.”. 저자는 이런 극우적 생각의 뿌리로 1949년 동유럽의 공산화, 1950년대 중반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 마오쩌둥의 승리,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 극우의 뿌리는 반공사상이라는 것이다.      


극단적 보수주의자 부모 밑에서 자란 저자는 1951년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미국에서 세 명의 영웅을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벤저민 프랭클린, 조지 워싱턴, 그리고 조셉 매카시라고 대답했을 거라고 고백한다. 특히 당시 매카시는 미국 극우 세력의 우상이었으며, 그가 명백한 잘못으로 인해 몰락한 후에도 저자의 부모가 속했던 극우 단체에게 매카시는 여전히 영웅이었다고 저자는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진보적 예술계에 대한 공격은 미국 보수 세력의 주요한 활동이었다고 밝힌 저자는 어린 시절 ’블랙 뷰티‘라는 영화를 둘러싼 일화를 소개한다. 그녀는 진보적 내용을 담은 이 영화를 아무런 생각없이 보러 가려다가 부모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당시 미국의 보수 진영에서도 예술계는 소위 빨갱이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대표적인 세계로 각인되어 있었다.      


소위 매디슨 에비뉴라고 불렸던 방송국과 광고업체들이 밀집된 지역, 저자는 이 지역이 미국의 보수들에게는 그야말로 진보의 성지와도 같이 여겨졌다고 말한다. 자신의 부모를 비롯한 극우 진영에서는 이러한 진보적 예술, 방송을 축출하기 위한 공격과 효과적인 공겨을 위한 블랙 리스트들이 존재했다고 털어놓은 저자는 이러한 당시의 분위기를 풀리처상 수상자 핼버스탬의 이야기를 통해 정리한다. “비열한 시대였다. 온 나라가 마녀사냥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느날 스페인 여행을 다녀 온 클레어 코너의 부모는 그녀에게 공산주의자들에 맞서 스페인을 구해낸 프랑코 장군에 대한 무용담을 들려 주었다, 스페인 내전시 공산주의자들이 프랑코 장군의 아들을 납치했고, 죽이겠다고 협박했으나 프랑코 장군은 결코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녀가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상시적으로 부모로부터 검열을 당했으며, 결국 이러한 검열 행동은 미국 교과서에 대한 극우단체들의 투쟁할동으로 이어졌고,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클레어 코너에 따르면, 자신의 부모가 가입해 있던 미국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극우 단체인 존 버치 협회와 이를 창설한 로버트 웰치는 늘 소련에 의한 미국의 공산화라는 공포를 조장했고, 가짜 뉴스르 만들어 냈으며, 심지어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에 나서는 미국 정부를 비난하는 한편, 양국 정상들의 상호 방문을 저지하려는 활동을 했다. 노조 활동과 파업을 공산주의자들의 책략으로 몰아세웠고, 진보 정치인들을 공격했으며, 선거에서는 자금을 포함한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에 대한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한국전에도 참전했던 에드위 워커 장군이 존 버치 협회에서 발간한 책자를 자신의 부대에 배포한 사건과, 존 버치 협회 내에서 비밀리에 발간된 책자, 즉 여러명의 미국 대통령을 미국에 대한 반역자라고 규정한 책자가 제작된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결국 이러한 비 상식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극우 단체는 심각한 여론의 비난과 대다수 국민의 반발을 불러오는 위기를 자처하기도 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고, 마틴 루터 목사는 암살당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켰고, 1960년대 미국은 히피와 마약으로 대변되는 혼란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으며, 극우 인사들은 ’바른 생활’로 버티고 있었다. 저자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가졌으며 생명권 옹호주의자로서 낙태반대 운동에 헌신하고 있었다.     


1960년대 초, 베트남에 폭탄을 떨어뜨리자고 주장했던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이것은 미국의 극우 세력에 있어서는 역사적인 승리였다. 레이건의 배후에는 올드라이트, 뉴라이트, 딕시크랫, 기독교 우파, 미국주의자 등 수많은 극우 단체들이 있었다. 이런 보수의 승리 속에서 클래어 코너는 오히려 보수적 가치에 대한 순수성을 점점 잃어가고, 결국 자신의 부모와도 결별하게 된다. 저자는 레이건 시대를 이렇게 회고한다.      


“백악관에 입성한 선한 기독교도 레이건은 우리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빈곤층을 위한 정부 지원이라면 덮어놓고 싫어했다. 부모님과 로널드 레이건은 자선가와 자선사업의 마법으로 빈자와 병자가 자취를 감출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었다. 그 유토피아는 픽션에 불과한 게 뻔했으나 그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라고 회상한다.          


미사일과 핵무기를 앞세워 첨예하게 대립하던 미국과 소련 사이에 U-2가 격추사건이 일어났고, 한미방위조약 13주년을 기념하는 의원단을 태운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의 영공을 침범하다가 격추되기도 하였다. 레이건이 임기를 마치고, 민주당 정권을 거쳐서 부시가 집권하던 시절, 결국 911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존 버치 협회의 핵심 인물이자 딸과 정치적 입장으로 결별했던 보수주의자인 그녀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는 911테러를 포함한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소련이라는 공산주의자들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국이 당하는 모든 고통은 동성애, 낙태, 피임, 변태 행각과 같은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라는 결론을 내렸다. 극우적 이념에 반하는 모든 것의 뒤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있었다.      


치매에 걸려 자신의 딸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던 그녀의 어머니의 머릿속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것은 오래전 자신의 남편과 갔었던 스페인의 기억이었다. 모든 국민이 가톨릭 신자였던 신의 나라, 스페인 내전에서 아이를 포로로 잡고 위협했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들에게 무릎을 꿇지 프랑코 장군의 이야기, 결국 그 아이가 죽었고, 마치 이삭을 공희로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닮은 그들의 모델, 그녀의 어머니가 기억하는 스페인은 보수주의자들의 영원한 낙원이었다.      


클레어 코너에게는 차마 자신의 어머니에게 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다. 그것은 손주 두 명이 모두 동성애자라는 사실이었다. 소돔과 고모라, 이교도에게 몰락한 로마, 911테러를 당한 미국, 그것은 모두 동성애와 같은 죄악 때문이라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당신의 손주 2명이 모두 다 동성애자였다는 말을 차마 털어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날, 그녀는 평생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극우의 그늘에서 드디어 빠져 나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다. 클레어 코너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날 미사필드를 떠나며 나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집어삼킨 이념에도 작별을 고했다. 극우파가 잠에서 깨어나, 사상 최고로 극적인 정치적 부활을 꾀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로 대공항 뺨치는 경제 위기가 벌어지고, 흑인 민주당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하고 공포와 광신이 들끓기 시작하자 그것으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잠들어 있던 버치 협회가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부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보수와 태극기 집회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많은 정치학자는 대한민국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보수세력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민주화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기틀로 하는 보수세력이 그 하나이고,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가 박정희 이념에 몰입된 명분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보수세력이 다른 하나이다. 이들은 사실상 공화주의자들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그들을 대표하는 정당의 이름은 공화당이었다.     


과거 민주화 이전 갈등의 정치 상황을 보혁의 투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하는 상태가 아닌, 어느 한쪽의 구속적 상황에서 보혁갈등이란 정치적 선전에 불과하다. 민주화 이전의 한국 보수주의에는 보수의 이념이 필요 없었다.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혁의 갈등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소위 구-라이트, 즉 민주화 이전의 가치에 함몰된 보수는 여전히 정치철학과 이념이 없다. 오직 그들에게는 박근혜라는 이름으로 변한 박정희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한국 정치의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뉴라이트 운동은 과거 10년간의 보수정당 집권과 타락한 지도자들로 인해 그 힘을 잃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지도자가 없다. 연세대 사회학과의 김호기 교수는 한국 보수의 위기를 보수진영을 이끌 확실한 리더의 부재와 보수의 철학적 빈곤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 박형준 동아대 교수도 한국의 보수정당이 보수 이념을 잘못 정의해왔다고 지적하면서 “반(反)공산주의가 오늘의 대한민국 번영을 이루는 토대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라며 “한국 보수가 퇴색되고 과거 회귀적인 성향을 답습하면서 국가주의와 관료주의에 물들어 있었다”라고 맹비판하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의 보수주의를 논하는 자리에는 늘 등장하는 것이 바로 보수주의 이념과 철학의 부재다. 그리고 늘 한국의 보수진영에 쏟아지는 질문들이 있다. 첫째 반공주의 이외에 어떤 정치적 이념을 따르고 있는가 하는 것이며, 둘째 정의에 대한 의견이 정립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른 행동이 결코 정의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린 역사 속에서 보수는 어떤 정의관을 세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보수는 하지 않는다. 한국의 태극기 집회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듯이 그들의 정의는 무지막지한 박정희주의이다.     


기독교

다시 한번 순수성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의 극우주의 협회가 되었던, 한국의 태극기 집회가 되었던 오랜 시간 그들을 이끌었던 매우 중요한 동력 중 하나는 분명히 기독교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20세기 초 미국으로부터 한국으로 건너왔고, 현재는 한국 기독교계를 장악하고 있는 근본주의 기독교이다. 따라서 태극기 집회에는 신이 축복한 나라 미국의 국기가 등장하고 예수가 태어난 나라 이스라엘의 국기가 등장한다. 어떤 측면에서 그들의 생각은 매우 순수하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정말 애국이었을까‘라는 도전적 제목의 책을 쓴 클레어 코너가 믿었고, 그녀의 부모가 평생을 떠나지 않았던 기독교. 그 기독교 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 한스 큉은 이렇게 묻고 있다.     


1. 인간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웠다고 바리새인을 비판했던 예수가 오늘날의 ’인위적인‘피임을 모두 중죄라고 선언할 것인가?

2. 특별히 죄인들을 초대했던 예수가 재혼한 사람들은 절대로 초대하지 않을 것인가?

3. 늘 여자들이 수행하였고, 바울을 제외하고는 예수의 모든 사도가 결혼 생활을 하였음에도 모든 성직자의 결혼을 금지하고 여성의 성직 임명을 예수는 반대할 것인가?

3. 일반 대중들을 깊은 애정을 갖고 가르쳤던 예수가 평신도로부터 성직 지위를 박탈하여 천 년 이상 뿌리를 내린 사목 제도를 붕괴시킬 것인가?

4. 간음을 범한 여자를 돌보았던 예수가 혼전 성교, 동성애와 낙태 문제와 같이 조심스럽고 엄밀한 결정을 요구하는 민감한 문제에 대하여 가혹하게 보수적인 결정을 내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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