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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인순 Feb 16. 2019

'섬' 실존을 찾아서

책 속의 사람들

“몸을 입은 자의 경이로움을 보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을 설명하는 사람도 드물다. 또 설명하는 사람도 드물다. 또 설명을 하려 해도 듣는 사람이 드물며, 들었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르주나여, 모든 존재의 육체 속에 거하는 몸을 입은 자는 영원하다. 결코, 죽일 수 없다. 그러니 죽거나 사라지더라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 전사로서의 그대의 다르마를 생각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 전사에게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장 그르니에(이후 장그래로 호칭하겠다.) ‘섬’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서두에 바가바드기타의 구문을 도입하는 것은 분명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저항이고, 더 나아가면 삐딱함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이유는 20세기 초 유럽의 실존주의를 거론하면서 불교와 그 기원으로서의 힌두교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곡 ‘붓다’나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에게서도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저항’이란 무엇인가? 저항이란 단어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장그래의 ‘섬’이 아니라 이 책을 번역한 김화영의 서문이다. 저자의 글을 너무나도 아름답고 적절하게 옮겨놓은 김화영은 저자의 침묵만은 옮겨놓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아무나 글을 쓰고,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주워 온 지식으로 길고 긴 논리를 편다. 천직의 고행을 거치지 않고도 많은 목소리가, 무거운 말들이 도처에 가득하고, 숱하고 낯선 이름들이 글과 사색의 평등을 외치며 진열된다.” 


김화영이 말한 ‘아무나’나 ‘천직의 고행’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고립된 ‘섬’의 이미지는 장그래나 카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책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은 하나의 행위이다. 그리고 바가바드기타에서 말하는 ‘다르마’는 김화영의 ‘천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것은 카뮈가 이 책을 발견한 순간 썼던,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의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마지막 단어이기도 하다.     


“신앙, 연민, 사랑과 같은 것도 과연 실재하는 현실임에 틀림없다.”라는 문장으로 첫 장을 여는 장그래는 ‘실재하는 현실’, 즉 ‘실존’의 범위를 확실하게 정해 놓는다. 이것이 그의 ‘섬’이고, 그의 ‘케르겔렌 군도’이다. 그곳에는 배가 다니지 않고, 주변에는 암초가 숨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황폐하고 살아있는 것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제부터 장그래는 이곳에 꽃을 피워야 한다. 꽃의 향기가 담을 넘을지는 모른 채.     


장그래는 그의 첫 번째 ‘섬’, 즉 ‘집 꼭대기에 완전히 격리되어 마치 여객선 선실처럼 조그마한 천장이 달린 방“에 목걸이를 단 고양이 물루와 함께 살고 있다. 목걸이는 장그래 자신이 달아준 것이다. 목걸이가 주는 이미지와는 상관없이, 물루의 식욕이 일으키는 만큼의 몸놀림, 행위의 전부로서의 몸놀림, 그리고 그를 온전히 담아내는 이미지를 통해 장그래는 ’ 완벽한 실존’을 발견한다.      


”나는 마침내 나 스스로 사랑한다고 자처했던 이 존재들, 그리고 나 자신과 따로 떼어놓을 길 없었던 나를 보고 넋을 잃고 있다. 당혹스러운 필연성이 나의 조건으로부터 멀리멀리 나를 데려간다. 인간들은 남이 자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루가 자신이 고양이인 것에 만족해하듯이 인간들은 자신이 인간인 것에 만족해한다. 그러나 물루의 생각은 옳지만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왜냐하면, 물루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지만 인간들의 입장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물루가 땅속으로 들어가고 그 위에 낙엽이 덮인 후, 장그래는 서둘러 자신의 ’ 섬(옥탑방)’으로 돌아갔다. 이사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절대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일체의 인간적인 것으로부터 벗어 날 필요가 부여되었고, 실행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그의 계시, 그의 열쇠, 그의 깨달음은 허물어져 내렸다.      


도시를 사랑하는 것, 동물을 사랑하는 것, 친구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어떤 여자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쓸 수 있는 단어는 오직 한 가지, ’ 사랑’이라는 단어뿐이라는 장그래의 말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생각났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는 1910년대의 비트겐슈타인과 ”그래도 우리는 말해야 한다 “는 1920년대의 비트겐슈타인의 사이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이 있었다. 우리의 사랑과 고독 그리고 비극, 그것은 서부전선, 길고 긴 참호 안을 날아가던 나비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과 같다. 결국, 더 이상 환상에 속지 않겠다는 다짐을 안고 장그래는 첫 번째 섬을 떠난다.      


장 그르니에

장그래가 두 번째로 도착한 ’ 섬‘은 베니스였다. 베니스에 도착한 그는 암스테르담의 데카르트와 같은 ’ 비밀스러움‘과 오랜 여행으로 인한 빈 주머니, 즉 ’ 가난‘에 천착했다. 그가 도착한 곳에서 그는 아무런 희망 없이 노동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가 인식했든 그렇지 못했든 결국 알지 못함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강렬한 감정 치고 깊이 감추어진 감정이 아닌 것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지중해 연안 민족들과 회교도들과 그리스-로마의 고대 사람들은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을 확연히 구별하여 그들에게 양자는 서로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사생활의 사소한 사건이라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주위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고 심지어는 원망까지 한다. 흔히들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떠들어대는 하나의 감정이 있으니 그게 바로 질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입만 열면 늘 동지애, 자유, 솔직함 등의 이야기만 한다. 이야말로 덕과 쾌락을 도외시하는 기이한 발상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오직 가난만이 마음 약한 사람들을 서로 가까워지게 하고 튼튼하게 해 줄 수 있다. 가난으로 인한 장애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잠시나마 일체의 것들로부터 격리될 수 있다. “ 


두 번째 섬에서 장그래는 일체의 연대를 비판한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사회적 현상마저도 꽃을 피울 수 있는 격리의 기회로 여긴다. 그래서 마르크시즘의 안이한 효과보다는 비밀과 가난 속으로 은신할 때, 비로소 ’ 겸허함을 통해 영감을 얻어야 한다 ‘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그가 피운 꽃의 향기는 담장을 넘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장그래가 도착한 세 번째 ’ 섬‘은 여행이다. 그에게 있어서 여행은 희귀한 감각들의 체험을 넘어 일종의 신비다. 여기서 그는 ’ 깨달음‘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가 말하는 깨달음은 첫 번째 섬에 도착하기 전 말했던 깨달음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세 번째 섬에서는 목표에 도달하고 나면 올라왔던 사다리를 차 버리고 그곳에 홀로 존재하는 자신을 인식하며, 바다 위로 배를 타고 여행할 때의 멀미를 잊어버린다고 말한 깨달음이었고, 첫 번째 섬에서의 깨달음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순간을 동터 오르는 여명기로 표현했다. 어쩌면 장그래는 ’ 깨달음’과 ’ 깨침‘을 혼돈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년기나 청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물들이기도 한다.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점진적일 수도 있다. “ 


이 글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점진적이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점진적일 수도 있다.”라는 유보적인 표현은 다소 비겁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어적 표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인생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정열의 소용돌이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영혼 속에는 엄청난 침묵이 찾아든다. “      

이 말은 다분히 ’ 몰록의 세계’를 떠올린다. ‘몰록’이란 ’갑자기‘난 뜻의 불교 용어다. 불교에서 ’갑자기‘난 단어는 시간의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내적인 개념이다. 내적 경험이기에 남은 몰라도 되는 개념이자, 경험하는 자신만이 잘 아는 그런 경험이다.      


선방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진짜 깨침은 아무도 못 알아본다.”라는 말이다. 정말로 깨치면 자기 자신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책의 번역자 김화영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뒤에 오는 적막함, 혹은 환청, 돌연한 향기, 그리고 어둠, 혹은 무, 그 속을 천천히 거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 산문집을 번역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언어로 써진 말만이 아니라 그 말들이 더욱 감동적으로 만드는 침묵을 어떻게 옮기면 좋단 말인가? “      


그러나 이러한 번역자의 고백은 그야말로 사족이고 현학이다. 장그래의 침묵은 ’ 깨달음‘이 아니라 ’ 깨침‘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번역할 수 없는 언어이다. “내가 알고 있는 시간에, 내가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그 장소에서, 획득될 수 있는 것을 단숨에 획득했다.”라고 말하는 그의 침묵은 그가 말한 ’ 세월의 퇴적‘과도 모순된 것이니 이를 번역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바다 위를 떠가는 꽃들아,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보이는 꽃들아, 해초들아, 시체들이, 잠든 갈매기들아, 배의 이물에 갈라지는 그대들아, 아, 내 행운의 섬들아! 아침의 예기치 않은 놀라움들아, 저녁의 희망 들아 – 나는 그대들을 이따금씩 다시 보게 되려는가? 오직 그대들만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그대들 속에서만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티 없는 거울아, 빛없는 하늘아, 대상 없는 사랑아……. “     


장그래의 깨침, 장그래의 경험은 그렇게 그의 세 번째 섬, 침묵의 섬을 떠난다. 그리고는 결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네 번째 섬, 그 섬은 쿡 선장의 책 속에 나오는 섬이자, 바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한 백정의 섬이다.     


”나는 피크 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대목을 열었다. 그 섬은 해골과 뼈들이 널려 있는 거대한 관과 다를 바 없었다. “      


현실 속에서는 아직 희미한 의식이 남아 있는 백정이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고, 누구도 상관없는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죽음의 문제란 죽기 전까지의 삶의 문제이다. 출근 버스를 기다리는 건조한 땅 위에 늘어진 그림자를 본다. 아침 시간, 동일한 시간이지만 그림자의 길이는 짧아졌다. 길어졌다 한다.     


시간은 반복되고 그림자는 회전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하는 세월 동안 죽음의 섬으로 향하는 인생의 여정은 한시도 멈추질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이제 책을 놓고 무엇을 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악, 영화, 그림, 봉사활동, 사회활동, 그 어느 것도 상상 속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없다.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다시 장그래에게 돌아간다.      


”내세를 믿는다는 것이 그리도 위안이 된다고들 하지만! 그러나 나로서는 그 죽음이라는 맹목적이고 숨 막히는 사실에 대하여 고집스러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 나는 긍정을 하는 그것도 부정하는 것도 아니었고 다만 내 감옥의 드높은 벽을 따라만 가고 있었다. (...) 아무것도 없는 우리 사이에 대화가 가능했던 것은 죽는다는 저 공통적이고 일상적인 시련 때문이었다. “     


장그래가 찾아 나선 네 번째 섬은 ’ 상상의 섬‘ 인도다. 그는 인도는 코르세이유와 바레스가 스페인을 보았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를 상상의 눈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실제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장그래의 말에서 일종의 오만이 느껴진다. 그는 인도를 이해한다는 말로 인도를 모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그래는 힌두교도들이 서구인들에게 대답할 때, 그들의 입장이 너무나도 터무니없다고 말하며, 잘난 유럽인들이 늘 그렇듯, 인도인, 즉 1920년 제1회 전국대회를 열어 노동조합을 지지했던 인도 국민의회 의장 라즈파트 라이의 말을 들어 그 터무니없음을 주장한다. 라즈파트  라이에 따르면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중세의 유물이고, 없어져야 할 제도였다.      


그러나 카스트를 의미하는 초기의 힌두어는 ’ 색깔’을 의미하는 ’ 바르나(varma)’다. 이 말이 인도를 침략한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카스타로 번역되었다. 카스타라라는 말의 어원은 ‘순수한(pure)’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카스투스다. 그러니 최소한 카스트 제도에 있어서 인도는 하나의 섬은 아니다. 기원전에는 이란인, 중세에는 서구인들이 왔었다.      


카스트 제도는 어쩌면 사람을 색깔로 구분하는 인종 차별의 원형 인지도 모른다. 기원전에는 인도의 정신이자 승려 계급인 브라만들이 제물을 바칠 때 도와주는 단순한 도우미에 불가했다. 그리고 카스트 제도의 꼭대기에는 침상에서 죽는 것을 죄로 여기는 전사 계급인 크샤트리아가 있었다.      


자이나교는 크샤트리아의 지도적인 위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불교는 브라만을 ‘신분이 천하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인도에서의 풍습은 변해왔다. 문제는 인종 차별에 대한 서구의 전통과 사상은 본질에서 변했는가? 장그래는 이에 대한 대답을 먼저 해야 한다..     


나아가 인도 문학에 대해서도 장그래는 무의미한 신화적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는 ”베다 시대 이후,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로 시작되는 알렉산드리아 시대밖에 경험하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5세기나 되는 오랜 세월 동안 목숨을 다해 오고 있는 것만 같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자면 인도의 베다 시대는 기원전 2000~1000년이고, 영웅시대는 1000~500년이다. 마하바리타와 라마야나는 영웅시대의 문학이다. 이 시대는 인도의 직업이 세분되면서 카스트 제도가 강화되던 시대로 유럽에 견준다면 중세와 같은 시대이다.     


유럽인들과도 피를 나눈 하얀 얼굴의 아리안들은 인도에서 어떻게 살아왔을까? 처음에는 전쟁과 약탈을 통해 살았고, 후에는 중세 유럽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 즉 도시를 기반으로 목축과 농업과 산업을 통해 살아왔다. 사상으로 보나 문명으로 보나 인도의 기원전은 유럽의 중세와 닮아 있었다.     


”인도를 구별 짓는 표시는 바로 이것이다. 인도는 비록 정복을 당할지라도 일체의 영향으로부터 항상 벗어났다. 인도는 오직 한 가지뿐인 야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신을 세계로부터 소외시킨다는 야심이다. “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힌두인들은 금을 최초로 채굴한 사람들이었고,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에서 사용한 금 중 상당량은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옷감용 목화 재배를 처음으로 시작하였고, 1260년 중국은 안경알을 인도에서 수입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후, 네덜란드에 정착한 스피노자는 안경알을 가공하는 직업으로 먹고살았다.      


인도를 섬으로 만든 것은 기원전 날쌘 말에 바퀴 달린 수레를 끌고 들어왔던 아리안 민족이었고, 대항해 시대에 강력한 대포가 달린 날쌘 전투선을 몰고 왔던 네덜란드이었으며, 현대의 강력한 영국 제국주의였다.      

자신의 집 옥탑방에서 인도에까지 이른 장그래는 이제 잃어버린 세월을 찾아서 보로메의 섬들에 다가간다.     


”그럼 무엇을? 에 – 또,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는 보로메 섬들이 될 것 같다. 그리도 가냘프게 그리도 인간적으로 보호해 주는 마른 돌담 하나만으로도 나를 격리시켜 주기에 족할 것이고, 어느 농가의 문턱에 선 두 그루의 시프레 나무만으로도 나를 반겨 맞아주기에 족할 것이니…. 한 번의 악수, 어떤 총명의 표시, 어떤 눈길…. 이런 것들이 바로 – 이토록 가까운, 이토록 잔혹하게 가까운 – 나의 보로메 섬 들일 것이다. “     


섬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섬은 없다. 완벽한 섬은 없다는 뜻이다. 이제 장 그르니에의 ‘섬’을 덮으면서 그의 이름을 장그래로 부른 어설픈 농담의 이유를 설명해야겠다. 우리는 모두 영원한 미생이다. 완전히 이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어지기 위해 노력한다. 바둑판 위의 돌은 섬으로 존재할 수 없는 실존이다.      


바둑판 위의 돌을 보면 섬이 생각난다. 하나씩 놓아가는 돌의 유일한 목적은 서로 이어지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 아무나‘하고 연결되어야 한다. 아무나 쓴 글, 주어온 지식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장 그르니에를 따라 섬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장그래를 세상으로 불러내야 한다.               


모든 행위가 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말고 행위하도록 하라자 나가서 싸워라그대의 욕망을 버리고 싸워라! “(바가바드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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