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한병철은 당장 하는 일을 멈추고 사색하라고 말한다. 산사의 풍경 소리가 달리는 바람을 잡듯, 떨어지는 낙수가 시간을 응시하듯 그렇게 시간을 관조하라고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 속에 통제되지 않은 채 작동되는 시간의 가속도를 감지하고, 지나쳐 버린 것과 와야 할 것들이 살아 숨 쉬는 있는 진정한 자신만의 시간을 발견하라고 조언한다.
2013년에 출판된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를 다시 읽게 된 계기는 2014년에 한 그의 인터뷰를 우연히 접하면서이다. “미안하지만, 이건 사실이야. (Tut mir leid, aber das sind Tatsachen)”란 제목이 달린 이 인터뷰에서 한병철은 금속 공학자에서 철학자가 된 이유, 독일의 형편없는 음식, 그러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흐의 음악 등등 소소한 일상과 함께 현대 사회의 위기를 이야기했다. 차분한 개인의 일상과 분노케 하는 정치. 그러나 그는 모든 것에 화가 나 있었다.
“최근 자유는 강제의 반대 형상입니다. 자기가 처한 줄 모르고 처해진 강제를 자유로 느끼면, 이건 자유의 종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위기에 처한 것이죠. 자유의 위기는 우리가 강제를 자유로 인지하고 있다는 데 있어요. 거기에는 저항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저더러 무엇을 하라고 강제한다면, 저는 이 외부로부터의 강제에 대해 저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더러 무엇을 하라고 강제하는 상대가 없다면, 저항은 가능하지 않죠. 때문에 제가 제 책에 표제로 달아 놓은 말이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줘!’라는 예술가 제니 홀처의 유명한 문장입니다.”
한병철의 현대 사회에 대한 우려 속에서 강조되는 자유와 위기는 니체의 ‘최후의 인간’과 최후의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를 연상시킨다. 그가 말한 저항은 좀비와 같은 무감각의 영생을 벗어던지는 진정한 자유에 대한 각성이 들어있다. 그것이 시간의 향기로 이어진다. 태양이 사라져야 비로소 시작되는 좀비의 시간에 대한 극단적 우려, 한병철은 다시 말한다.
“체제가 자유를 공격하면, 저는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열하게도 체제는 오늘날 자유를 공격하지 않고, 자유를 도구화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80년대에 인구조사가 있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시위하러 나갔습니다. 어떤 관청에서는 심지어 폭탄까지 터졌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 의사에 반해 정보를 빼앗아 가려는 국가라는 적이 있었기 때문에 거리로 나갔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개인 정보를 넘겨주고 있어요. 그런데 왜 저항이 없느냐고요? 그 당시와는 반대로 오늘날 우리는 자유롭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자유를 공격받고 제한받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 때문에 거리로 나갔던 것이죠. 오늘날 우리는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우리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합니다.”
쟁취한 것이 아닌, 모든 주어진 것에 대한 저항을 촉구하는 한병철은 이 책에서 ‘가장 근원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시간’과 그것을 극복하게 해 준 과학과 문명에 대한 반성적 인지를, 그리고 그 문명의 가속화로부터의 자유의 획득을 말한다. 때문에, 그가 인터뷰에서 한 소소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는 메르케 수상에 대한 인문학적 비판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다.
한병철
날아다니다 알 수 없는 강물 위에 떨어져 버린 낙엽 같은 시간
시간에 주체적으로 개입한 인간,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발명된 자동차와 모바일 기기와 공학적 시스템들, 이를 통해 점점 더 가속화되는 시간, 그 가운데 여전히 강제된 인간 노동, 절대화된 활동, 보이지 않는 명령에 익숙한 존재, 자취를 감춘 머무름의 미학, 사라져 버린 사색하는 삶. 이 책에서 한병철은 이러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사색적 삶’에 대한 이미지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향기 나는 시간의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한병철은 고대와 현대를 넘나 든다.
그는 역사 속에 살았던 철학자들의 시간에 대한 개념을 쪼개고 생각과 의지의 틈을 찾아 긴 여행을 한다. 여행의 이정표에는 아우구스티누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아렌트,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한병철은 시간에 대한 세 가지 지도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신화적 시간으로 모든 것이 제자리를 가지고 있고, 확고하게 짜인 질서 속에서 고유의 의미를 지닌 시간의 지도다. 이 지도 위에는 확고하게 고정된 관계를 맺은 사건과 의미가 연쇄되어 있다.
두 번째는 역사적 시간이다. 이는 모든 것이 움직일 수 없는 질서 속에 붙박여 있지 않은 시간의 지도다. 지도 위에서 시간은 되돌아감 없이 앞으로만 전진하며, 끊임없이 미래를 따라잡는다. 여기서 역사적 시간은 변화이고 과정이며 전개이다. 현재는 늘 미래를 향해 가속된다.
세 번째는 종말론적 시간이다. 종말론적 시간은 진보를 약속하는 역사적 시간 형식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최후의 시간으로부터 역산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심판의 날이며, 니체가 말하는 ‘최후의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이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하는 역사의 종언이다.
한병철이 시간의 지도를 꺼내 든 이유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시간과 사색의 의미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지도를 들고, 그는 시대와 철학의 바위들 사이에 놓인 좁고 구불구불한 틈을 찾아 여행을 인도한다.
바위틈에서 본 계몽주의 이전 인간은 시간에 던져진 존재였다. 중세의 시간관념은 피투성(被投性)과 소여성(所與性)으로 대변된다. 계몽주의는 탈소여화와 탈자연화를 이끌었으며, 비로소 인간은 더 이상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만들 수 있는 존재로서 미래와의 신뢰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혁명을 약속한 계몽주의적 인간이 탈근대적 인간으로 변모하면서 시간은 중심을 잃었다. 이 시간은 머무름을 허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통제 불능해졌다. 시간은 단지 특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한에서만 유의미해진 것이다.
한병철에 따르면 신화적 시간은 그림이고, 역사적 시간은 일정한 목표를 향해 내달리는 선이다. 현대에 와서 이 선에서 서사적 긴장과 목적론적 긴장이 사라졌다. 서사와 목적이 사라진 시간은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점들로 흩어져 버렸고 시간은 향기를 잃었다.
“신화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에는 모두 서사적 긴장이 있다. 사건들의 특수한 연결이 시간을 형성한다. 이야기는 시간에 향기를 불어넣는다. 반면, 점-시간은 향기가 없는 시간이다.”
중력이 해체된 땅에서 분리된 인간. 향기가 사라진 시간. 서사가 삭제된 사건들의 연속, 의미의 중력이 사라진 덕분에 땅에서 이탈하고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사물들, 한병철에게 이러한 것들은 현대의 시간이자 소멸한 공전 궤도이다.
한편, 인간에게 의미를 제공하던 공전 궤도의 소멸은 가속화의 반대 현상, 즉 사물의 정지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 정지는 교통과 정보와 의사소통이 너무 적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고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체 현상은 가속화의 효과가 아니다. 다름 아니라 선택 작용을 하는 궤도의 소멸이 사건과 정보의 대량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중력의 사라짐, 선택 궤도의 소멸, 그에 따른 정보의 대량화, 탈시간화는 모든 서사적 긴장을 소멸시켰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의 시간은 단순한 사건들의 연대기로 해체되어 버려, 마치 플롯이 제거된 영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순하게 나열된 소설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대인은 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죽이고 있다.
“중력의 부재로 인해 사물들은 슬쩍 지나갈 뿐이다. 아무것도 무게를 지니지 않는다. 아무것도 결정적이지 않다. 아무것도 최종적이지 않다. 어떤 결정적 단락도 생겨나지 않는다. 더 이상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할 수 없다면, 모든 것이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등가의 연결 가능성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즉 더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어떤 일이 완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완결은 구조화된 유기적 시간을 전제한다. 반면 무한의 열린 과정 속에서는 그 무엇도 완결되지 못한다. 미완성이 상상적 상태가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 그 자유로움과 무책임성을 설명하기 위해 한병철은 바우만의 이야기를 인용한다. “궁극적인 자유는 화면의 연출 아래 놓이며, 표면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체험되니 그 이름은 재핑(zapping, 리모컨으로 여러 채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이다.”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은 한병철이 자유롭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구속되어 있지 않거나 의무에 묶여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주는 것은 해방이나 이탈이 아니라 편입과 소속이라고 믿고 있다. 한병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롭다, 평화, 친구와 같은 표현의 인도 게르만어 어원인 ‘fri’는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자유롭다는 것은 본래 ‘친구나 연인에게 속해 있는’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바로 사랑과 우정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묶여 있지 않음으로 해서가 아니라 묶여 있음으로 해서 자유로워진다. 자유는 가장 전형적인 관계적 어휘다. “
결국, 한병철이 우려하는 것은 따라야 할 시간 규정이 사라진 결과, 자유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 상실 상태가 초래된 시대, 중력이 없어지면서 우리의 몸이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균형의 상실까지 발생하게 된 현상, ‘어슬렁거리는 좀비’와 같은 상태다.
이런 좀비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은 경험을 축적한다고 해도, 즉 체험의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적인 시간의 양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삶을 단축한다. 인생의 의미는 결코 양적인 논리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삼켜버린 노동
한병철이 이야기하는 시간의 향기는 한가로운 시간과 사색하는 삶을 가리킨다. 그는 ‘향기로운 시간’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고자 시간에 대해 논쟁했던 시대별 대표선수들을 등장시킨다. 고대의 대표선수는 ”한가로움 속에서 기쁨을 주는 것은 짐을 벗어버린 나태함이 아니다 “라고 말했던 아우구스티누스다.
”기쁨은 진리의 탐구나 발굴에서 온다.”라고 말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의 대표선수다. 시간과 기도로 이루어진 균형 잡힌 일상을 통해 사색이 지배하는 삶을 권고했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색적 삶이 활동적 삶보다 확실히 낫다.”라고 말했다. 한병철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에 동의하며, 비록 중세가 ”기도하고 노동하라 “는 금언에 의해 고양된 시대였지만, 여전히 활동적 삶이 사색적 삶의 전적인 영향과 구속하에 놓여있던 사회였다고 주장한다.
중세 후기의 선수는 단연코 금욕주의로 무장한 종교개혁자들이다. 사색적 삶에 대한 금언이 무너지기 시작한 중세 후반,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노동이 신학적 의미의 맥락 속에 편입되었으며, 루터나 캘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직업으로서의 일을 인간을 향한 신의 부름과 연결했으나, 한편으론 여전히 기도라는 충분한 사색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경건주의자 친센도르프에 이르게 되면 결국 노동은 구원이 된다.
이렇게 시작한 프로테스탄트의 세계에는 노동의 신화가 굳건한 자리를 잡게 되는데, 이때가 되면 ”그저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노동의 지배적 개념이 된다. 한병철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와 노동 구원론(?) 속에 자본주의 정신이 예표 되어 있다고 주장한 막스 베버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이러한 금욕주의는 심리적 효과 면에서 재화 획득을 전통 윤리의 부정적 시선에서 해방시켰다. 그것은 이윤 추구의 욕망을 합법화했을 뿐만 아니라 (...) 그것을 신이 원하는 것으로까지 간주함으로써 거기에 채워져 있던 족쇄를 파괴해버린 것이다. “
한편, 한병철에 따르면 자유의 변증법이라고 불리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역시 의식이 일의 명령에 지배당하고 있는 한, 어떤 자유로운 사회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주인과 노예가 싸우고 있는 동안 모두가 일의 노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르크스의 주체 역시도 그 출신 성분상 언제나 노동의 주체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기에 설사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활동을 할 능력은 없다. 이 주체는 결국 일 바깥에서는 기껏해야 소비의 주체일 뿐이고, 사색적 삶에 접근하지 못한다. 결국, 노동이 지배하는 한 시간의 자유는 획득될 수 없는 것이 된다.
프로테스탄트와 혁명의 시대를 지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현대 사회의 노동 지배에 대해 한병철은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밝힌다.
”오늘날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독재에서 살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자영업자입니다. 마르크스의 시대 자본주의는 전혀 다른 노동 구조를 갖고 있었죠. 경제는 공장 소유주들과 공장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어떤 공장 노동자도 자영업자는 아니었습니다. 타인에 의한 착취가 일어났었죠. 오늘날에는 자기 착취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자아를 실현한다는 환상 속에서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는 겁니다.”
사색적 삶은 무위자연 하는 명상적 삶이 아니다.
노동이 시간을 지배하는 세계에서 한병철은 비타 악티바(vita active)로부터 비타 콘템플라티바(vita contemplativa)로의 이행, 즉 활동적 삶에서 사색하는 삶으로의 이행을 권고한다. 그러면서 사색적 삶이란 결코 무위자연 하는 삶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유는 에니르기아, 즉 작업 활동, 작업 중에 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사색적인 삶을 명시적으로 활동적 삶이라고 불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를 들어, 한병철은 인간이 자기 안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운동이나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한다.
특히 한병철은 아렌트에 대해 비판적인데, 그의 시각에서 보자면 아렌트는 사색이 모든 운동과 활동을 정지시키고 모든 형식의 활동적 삶을 소란으로 보이게 만드는 수동적 평정의 상태라고 잘 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운동과 활동을 멈추고 완전한 평정을 이룰 때야 비로소 인간이 사색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아렌트의 주장에 대해 사색적 삶이 오직 자기 안에 머물기에 평정의 형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동성이 활동적인 삶의 대립자가 아니라 오히려 활동적 삶의 이면이라는 점을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결국, 한병철이 이야기하는 사색적인 삶은 니체의 ‘최후의 인간’이 사는 삶이 아니다. 그는 에너지의 레벨을 바닥까지 내려서 편안하지만 무기력하고, 평온하지만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 삶을 ‘사색하는 삶’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데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함으로써 이를 설명한다.
“활동적인 사람들에게는 보통 고차적인 활동이 없다. 개인적 활동이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관리로서, 상인으로서, 학자로서, 즉 일정한 부류에 속한 존재로서 활동할 뿐, 결코 개별적이고 유일한 특정 인간으로서 활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게으르다.”
사색적 삶을 설명하면서, 한병철은 하이데거의 두 가지 관점을 비교한다. 첫 번째는 비판적 관점으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고찰은 ’ 엄청나게 현실에 개입하는 ‘ 노동이며, 사색적 삶은 실상 사색적 삶이 아닌 이성의 노동이라고 꼬집는다.
“하이데거는 사색적 삶에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사색적 삶은 하이데거에게 단지 세속의 활동적 삶과 대비되는 수도원의 명상적 삶을 의미할 뿐이다. 하이데거는 사색을 그 속에 들어있는 합리적 요소, 즉 구분하는 분석적 관찰이라는 의미로 환원한 다음, 이를 고찰과 연결한다.”
두 번째 관점은 긍정적인 관점으로 하이데거의 후기 철학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진정한 ’ 사색적 길’과 동일한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에크하르트의 영향을 받는 하이데거가 ’ 학문과 숙고’에서 “숙고의 가난은 무용한 것의 광휘 속에 빛나는 보물에 대한 약속. 결코, 실망하게 하지 않을 부에 대한 약속이다.”라고 한 말에 방점을 둔 관점이다.
한병철은 모든 사색적 요소가 추방되어버린 삶은 치명적인 과잉활동으로 귀결되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위 속에서 질식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종속된 일과 노동에서 벗어나 사색을 통해 시간의 가속화를 멈추고, 중력을 이겨내며, 흩날리는 시간의 향기를 맡음으로써 우리가 비로소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주장이다.
비로소 우리는 한병철이 안내한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헤겔과 아렌트, 그리고 하이데거를 거치면서 정제된 ’한가로운 시간’과 ’ 사색하는 삶‘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고 그 속에서 선한 목적과 그만큼 과격한 논리 구성을 발견하게 된다.
한가로움의 민주화
철학자 한병철이 신자유주의 세계에 던져주는 경고와 권유는 가볍지 않다. 일이 욕망에 의해서 추동되고, 노동이 구속 상태에서 진행되는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구원의 빛, 그것은 가속화가 멈춘, 중력이 사라진, 가볍고 자유롭게 흩날리는 시간의 향기를 통해 비친다는 생각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한병철은 가볍게 날아다니는 시간을 연결해주는 의미와 이야기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는데, 이는 Zeit 紙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한병철은 일어나는 일들 사이에서, 현재 일어나는 일과 예전에 일어난 일 사이에서, 또는 갑자기 비슷한 점들을 인지하는 경험을 마주하며, 그 관계들을 살핀다.
“가쁜 숨을 헐떡이는 사람에게는 정신도 없다. 노동의 민주화에 이어 한가로움의 민주화가 도래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의 민주화가 만인의 노예화로 전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니체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교정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한병철의 말하는 사색하는 인간은 그가 집요하리만큼 그 뿌리를 탐구했듯이 단지 일하지 않는 인간, 노력하지 않는 인간, 유유자적하는 인간, 현재를 향유하는 인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인간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사색은 자연대로 살아가는 시간, 의식하지 않는 시간, 역사가 종언을 선고한 시간, 정지하거나 가속하는 시간, 서사가 사라져 버린 시간, 의미가 삭제된 시간, 그래서 야만이 된 시간을 도전적으로 관조하는 시간을 가지는 인간이다. 그가 말하는 평온은 몰락하지 않는 평온이 아니라 영원 회귀한 평온이다. 거기서 노동이 멈추는 것이다.
‘최후의 인간(종말인)’과 신자유주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위버멘쉬’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간을 ‘최후의 인간(終末人)’이라고 명명했는데, 니체가 말하는 최후의 인간은 이웃사랑이나 형제애 그리고 동정이나 관용이 절실히 필요한 인간이며, 무엇보다도 자기 보존에 매달리는 인간이다.
또한, 최후의 인간은 노동을 자기실현을 위한 도구로 삼으며, 노동을 고통이 아닌 즐거운 일로 여기지만 그것이 자기 보존이라는 목적을 위협하지 않도록 전전긍긍한다. 최후의 인간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평등을 덕목으로 여기지만 자기 삶 속에서 사소하고도 개인적이며 위험 부담 없는 쾌락을 추구하기도 한다.
한병철이 비판하는 현대인들은 이런 최후의 인간을 닮았다. 그리고 최후의 인간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사색을 제안했다. 사색이야말로 허무적 상태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한병철의 사색은 전통적 가치의 몰락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으로 회귀하는 사유를 가지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다.
한병철의 이러한 ‘사색하는 삶’을 정치적 영역으로 확대하면,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무책임한 정치가가 보인다. 그들은 최후의 인간을 닮았다. ‘Zeit Wissen’誌와 인터뷰에서 한병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에는 정치 또한 그 어떤 높은 투입도 피합니다. 좋아함의 정치가 생기는 거죠. 좋아함의 정치를 예시하는 정치인이 누가 있을까요? 아마 앙겔라 메르켈 총리겠죠. 그래서 그녀가 그리도 사랑받는 겁니다. 확고한 신념도 없고, 비전도 없어 보입니다. 그녀는 길을 쳐다보고, 기분에 따라 자기 생각을 바꿉니다. 후쿠시마의 원전 재해 후에 갑자기 원자력발전 반대자가 되었지요. 그녀를 두고 뱀장어처럼 매끄럽다고 할 수도 있겠죠. 오늘날 우리는 정말이지 매끄러운 정치를 보고 있는 겁니다. 매끄러운 피부, 매끄러운 예술과 매끄러운 정치 사이에는 흥미로운 관련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강조적 의미에서 정치적인 행동은 비전과 높은 투입을 필요로 합니다. 정치적 행동은 상처를 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매끄러운 정치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앙겔라 메르켈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정치인들은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이들은 그저 체제의 말 잘 듣는 조력자 들일뿐이지요. 이들은 체제가 멈춰서는 그곳에서 수리를 합니다. 그것도 다른 대안이 없다는 좋은 소리를 들어가면서 말이죠. 그러나 정치는 대안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독재와 다를 것이 없어요.”(출처, 베를린 리포트)
최후의 인간과 최후의 인간이 살아가는 정치적 세계를 다룬 학자가 바로 프란시스 후쿠야마이다. 1990년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책을 출판하며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진화의 종점’이나 ‘인류 최후의 정부 형태’가 될지도 모르며,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역사의 종말"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지탱하는 바탕에는 미국과 서방세계에 맞서던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공산주의 세계 체계가 몰락해가는 역사의 전화기에 후쿠야마는 '보편적인 역사'라는 개념을 등장시키는데, 이는 모든 인간 사회는 역사적 기원이나 문화적 유산과 관계없이 점점 균일화되어 간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었다.
후쿠야마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대등욕망’이 지배하는 사회이며, 이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서로의 생명권과 재산권을 상호 인정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는데, 모두가 평등한 세계에는 위대한 예술이나 학문이 탄생할 수 없으며, 당연히 역사적 발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이 부분에서 니체의 이론을 빌어 노예 사회와 시민 사회를 비교한다. 즉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궁극적으로 노예 사회를 지향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이때 필요한 것이 ‘우월욕망’인데, 이를 통해 사회는 발전의 동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월욕망이 있는 본질적 한계로 인해 이를 사회에 무한정 적용할 경우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근본적인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후쿠야마는 따라서 ‘대등욕망’과 ‘우월욕망’을 적절히 양립시키고 조화시켜나가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에 역사적 과제라고 주장했다. 이는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에서 말한 ‘최후의 인간’과 ‘위버멘시’ 간의 긴장 관계와 닮아있다. 우월해지길 원하는 대중은 평등을 주장한다.
”여기서 차라투스트라의 서언이라고 부르는 처음 이야기가 끝났다. 이 대목에서 기뻐하는 군중의 함성이 그의 말을 막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최후의 인간을 달라. 오, 자라투스트라여!’ 하고 군중은 외쳤다. ‘우리들을 최후의 인간이 되게 해 달라! 그렇다면 위버맨쉬를 그대에게 선사하리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러한 보편적인 역사의 가정을 통해 사회 발전의 마지막 단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살아가는 전형적인 시민이 바로 "최후의 인간"이라 정의했다. 이는 니체가 지적했던 자신의 행복에 만족하고, 하찮은 욕망을 뛰어넘을 수 없는, 자신에게 아무런 수치심도 느끼지 않는, 요컨대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를 최후의 인간상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후쿠야마 교수는 ‘최후의 인간’의 대척점에 서 있는 인간을 ‘최초의 인간’이라 불렀는데, 이는 다분히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다른 버전이다. 그가 말한 최초의 인간은 대지의 의지와 권력의 욕망을 인정받기 위해 목숨을 던지는 인간, 욕망에 충실한 인간, 우월해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의미 번역해 놓은 것이다.
후쿠야마 교수가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을 쓴 지 25년이 지난 2015년, 박노자 교수는 자신이 있는 오슬로대를 방문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만약 만났다면 25년 전 한 후쿠야마 본인의 주장을 2015년의 시점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1999년 이후, 후쿠야마 교수는 자신의 신자유주의 옹호 입장을 상당 부분 수정했다. 특히 ‘대붕괴 신질서’라는 책을 통해 역사가 끝나기는커녕 일정한 주기로 붕괴와 재건을 되풀이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자유주의 체제가 불러온 카오스의 세계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노자 교수는 후쿠야마 교수를 상기하며 쓴 칼럼의 마지막에 박근혜 정부가 통치하는 한국을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를 복구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투쟁과 혼란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맞았다. 그리고 역사를 전진시키기 위한 노력에는 언제나 혼란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역시나 노력하는 자는 좌절할 수밖에 없고, 춤추는 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카오스가 필요한 것 같다.
“역사의 종말” 선언, 그 후 25년 지난 세계의 현실
(박노자, ‘Redian’)
며칠 전에 프랜시스 후쿠야마 씨가 오슬로대를 다녀갔습니다. 제가 제 수업하느라고 그의 특강에 못 갔는데, 만약 갔다면 그 질문을 꼭 던지고 싶었을 것입니다. 25년 전의 본인의 주장을 이제 와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입니다.
25년 전, 미국이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를 이끌자 후쿠야마는 천하가 “자유민주주의”로 평정됐다고, 영원불멸의 미 중심의 “자유세계”의 개선에 축가를 바친 일이 있었습니다. “역사의 종말”, 25년이 지난 오늘날의 시점에서 우리는 이 주장과 관련하여 실사구시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점을 지적해볼 수 있습니다
1. 천편일률적 “민주주의”라는 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1980-90년대에 지구촌 곳곳에서 민주화 과정이 진행된 것이야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나라/지역이 세계체제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서 거기에서 태어나게 되는 “민주주의”의 모습도 천차만별입니다. 역사가 끝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에게 세계체제 속의 상황의 위치들의 다양성을 더 재미있게 보여주는 거죠.
a. 동구가 1989~91년에 형식적 민주화를 거쳐 결국 약 15년 내로 독일-북구권 자본의 경제식민지로 재편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재편을 이끈 것은 동구의 보수적이며 우파적인 중산계층들이었지만, 구주 동맹 편입에 따른 서구 이민 자율화가 주는 “추가 소득을 얻을 기회”라는 유혹이 넘어간 상당수 육체노동자도 거기에다 동의했습니다. 결국 동구에서는 “민주화”란 국가 주권 일부의 구주 동맹에의 “반납”(?)과 구주 동맹의 “특권적 주변부”로의 전환을 의미했습니다. 그런 전환은 당연히 격차를 더 벌어지게 하여 어쩌면 사회 불만을 더 키울 수도 있었겠지만 “현실사회주의” 유산인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아직도 각종 격차들을 상대화하여 역설적으로 “보수적 민주화”를 가능케 합니다.
b. 남미 같으면 아무리 미국/캐나다의 경제식민지가 돼도 그 미국/캐나다로부터 노동이민 자유의 특권을 얻을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이게 동구와의 차이죠. 또 하나의 차이는 동구보다 중산계층들이 얇으며 또 격차를 상대화시킬 만한 무상 사회적 인프라가 부재하는 등 “극단의 빈곤”은 훨씬 더 가시적이다는 거죠. 그런 지역에서는 1980~90년대의 민주화는 당연히 좌경화를 의미했습니다. 브라질처럼 온건이든 베네수엘라처럼 급진이든 좌우간 동구가 오론쪽으로 간만큼 중남미는 왼쪽으로 갔습니다. 브라질이나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우루과이에서는 아예 지하 게릴라 투쟁 경력의 소유자들이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오른 것이죠. 동구가 주권의 상당 부분을 구주 동맹에 반납한 반면, 중남미는 그 주권을 미국으로부터 되찾은 셈이죠.
c. 거의 비슷한 시기에 형식적 민주화를 이룬 한국과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중화권에 훨씬 더 근접하게 됐습니다. 대만 같으면 경제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중화권에의 완전한 편입은 시간 문제지만, 한국의 경우 경제적으로 편입돼가며 정치적으로 중-미 사이 줄타기하는 형국입니다. 전체주의적 “안보레짐” 사회의 형식적 민주화와 새로운 정치 참여 기회 등으로 주로 중산계층들이 득을 봤으며 그 상위 부분은 그만큼 철저하게 보수화됐습니다. 반면에 신자유주의화된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분산화 과정이 크게 진행돼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연대적 투쟁의 가능성이 약화됐습니다. 보수적 중상층 본위의 사회에서 결국 과거의 집권세력들 (대만의 국민당 당수 馬英九, 한국의 이명박근혜)이 2008년 이후에 다시 재집권하여 앞으로의 장기적 권력 유지를 도모하려고 합니다. “보수적 민주주의”라고 하면 지나치게 얌전한 것 같고 사실상 “외형만 남으려고 하는 형해화돼가는 민주주의”죠. 한국은 여전히 미군의 군사 보호령이라는 점, 즉 주권이 제한돼 있는 점에서는 동구와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합니다.
2. “자유주의”는 국제적 교통, 노동 수출입, 그리고 정보화 발달의 (상당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후기의 파도 속에서는 어떤 면에서는 증강된 면은 있습니다. 예컨대 중국이나 러시아나 대한민국은 다 권위주의를 지향하는 사회긴 하지만 출입국의 자유나 국제적 정보교환의 자유 내지 인터넷상의 표현 자유 등을 통제/제한시킨다 해도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 중국의 페이스북 비법화 등등) 본격적으로 차단시킬 생각이야 못하죠. 북조선에서도 한국 드라마 DVD들이 유통되고 사실상 중국으로의 단기 노동이민이 합법화돼 있는 상태인데, 그만큼은 자본주의 후기는 인간 노동이라는 상품의 국제적 거래나 각종 정보상품들의 국제적 거래를 필요로 하는 시대입니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욕구에 거슬리는 자유들의 운명입니다. 여기에서는 오히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는 형국이죠. 예컨대 체제에 유리한 국가적 대민 감시는, 인터넷과 휴대폰, 신용카드의 도래로 엄청나게 쉬워졌습니다. 국가는 내가 어제 뭘 했고 무슨 생각하고 누구와 교통 했는지 알고 싶기만 한다면? 제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전자우편, 휴대폰 통화내역, 페북 포스트를 뒤져서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생활 비공개의 자유”는 사실상 폐지됐습니다. 국가 앞에서는 “나”는 완전한 발가벗은 모습입니다.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등도 특히 준주변부/주변부에서 엄청난 난항을 겪습니다. 중국에서는 자율적인 민주노조 자체는 불법이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형식적으로는 합법이라 해도 실제로는 노동운동가를 기다리는 것은 집시법이나 업무방해, 퇴거불응으로의 고발 남발과 살인적 가압류와 손배, 4-5년이나 그 이상 걸리는 세계사 최장의 장기투쟁 등등입니다. 목숨 내놓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노동운동 못하는 형국인데 “반쪽 자유”라고 해야겠죠?
결국 이 세상에서는 완전한 민주도 완전한 자유도 없고, 완전한 비민주나 부자유도 없습니다. 다 그 양극 사이의 어느 “중간 지점”이죠. 그리고 일률적인 ‘자유민주주의’도 존재한 적이 없으며, 나라마다 그 자유나 민주의 실질적 모습이 다를 수밖에 없죠. 민주주의 발전은 전진과 후퇴의 양쪽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예컨대 지난 15년 동안 동구나 대한민국에서 같으면 민주주의는 상당히 후퇴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앞으로 이 경향을 바꾸자면 큰 투쟁과 큰 희생이 필요할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