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으로 전향한 아빠의 변
어릴 때 공부를 제법 하였다. 그땐 어떤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대체로 모든 게 용서가 되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에게 되바라지게 말을 해도 "어이구 어른스럽게 이런 말도 할 줄 아네, 역시!", 주변 사람들 말을 신경 안 쓰는 배려 없는 모습에도 "역시 집중력이 좋아서 남의 말도 잘 못 듣네, 역시!", 심지어 못 생겨도... "공부하느라 외모엔 신경도 안 쓰나 보네,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나는 병이 하나 생겼다. '주인공 병'
자기 계발 책이나, 심리학 책에서 나오는 "자신감을 가지세요! 왜냐하면 인생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당신 자신이니깐요!" 이런 구절이 전혀 공감이 안 갔다. 나는 원래 '주인공'이니깐...
끼리끼리 모인다고, 내 주변에는 비슷한 성향의, '주인공 대접을 받아왔던'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주인공 자리는 하나인데, 모두 주인공을 해야 하니깐... 정말 엄청나게 많은 다툼과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있었던 거 같다. 그러다 기발한 방법을 찾았다. 사실 우리는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 케이팝을 하는 거라고... 아이돌이라고... 역할을 나누어 거기서 주인공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 센터 자리는 하나이니깐.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와서도 성향은 잘 바뀌지 않았다. 어딜 가든 내가 돋보여야 하고, 조금만 뒤쳐지는 것 같아도 속상하고, 주인공이 되기 위해 조금은 '쓸데없는 노력'까지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난다. 평생을 함께하고픈 짝지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마음 한구석에 뭔가 씻기지 않는 껄끄러움이 있었다. 그게 뭔지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결혼식의 주인공 자리를 신부에게 양보한 것이 바로 그 원인이었던 거 같다. 어쩔 수 없는 양보...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그 처럼 철이 없었고, 이기적이고, 어찌 보면 반쪽짜리 삶을 살고 있었다. 가장 불쌍한 것은 '그게 문제다'라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던 나의 상태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불치병 같았던 '주인공 병'은 놀랍게도 한 순간에 치료가 되었다. 신께서 나 같은 어리석은 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치료제를 준비해주셨으니, 그것은 바로 '내 아이'였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조연에서 엑스트라로... 그렇게 10여 년을 지나다 보니 이제 '내 위치 따위'는 의식 조차 되지 않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제 핸드폰 사진첩에는 내 사진은 없다. 온갖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그 풍경을 무시해도 될 만큼 사랑스러운 모습의 '내 가족'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내 이름 석자보다 '내 아이들의 이름이 앞선' 누구누구의 아빠로 불려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행복하다.
그런데... 순간 코끝이 찡해지는 하나의 진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간다.
왜 나는 주인공이었을까?
내가 어릴 때 생각했듯, '공부를 좀 하는 아이'여서? 내가 주인공 병에 걸려서?
아니다. 나는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내가 주인공이었던 이유는, 스스로 '주인공 자리'에서 물러나 자녀를 그 자리에 세우고, 화려하게 꾸며주신 부모님의 '연출' 덕분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계속 스스로 멋진 주인공이고자 하시는 분들보다는 새로운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이런 '멋진 연출가'가 많은 세상이면 좋겠다.
사람들이 60대가 다 된 톰 크루즈가 힘들게 몸을 날려 찍는 하드코어 액션물을 보며 '멋있다'는 생각보다는 '형님 나이 들어 수고한다'란 생각을 한다는 걸 과연 톰 형은 알고 있을까?
끄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