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윗한 나비 Jan 03. 2019

우울과 행복의 공존

내 안의 어둠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요구되는 일을 할수록 우울 빈도가 높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우울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 창의적인 일을 잘 해낸다는 것 역시 여러 연구사례가 증명한다. 그렇다면 우울함이라는 것이 꼭 치료해야만 하는 증상인 것일까. 물론 팍팍한 현실살이에 모두가 한숨을 내뱉고 평소 밝던 사람들도 어두워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경우라면 치료가 필요하다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우울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나 어떠한 결과물을 위해 자발적으로 우울함에 빠진 사람들의 경우에는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창의적인 일을 할 때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할 때 주로 어둡고 좁으며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에 최적화된 환경에 노출되고자 한다. 흔히들 Flow라 부르는 몰입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 스스로를 어둡고 외로운 환경에 노출시키곤 한다. 또한 음악은 되도록이면 잔잔하고 침울한 느낌으로 틀어놓는데, 예를 들자면 80년대 느낌의 일렉트릭 뮤직이나 락밴드 radio head의 느낌과 비슷한 사이키델릭 뮤직이다. 이런 환경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기도 하며 때로는 격동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 상태에서는 무한한 상상력과 함께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울함을 우울함으로 이겨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우울함을 우울함으로 위로한다고 볼 수 있다. 우울한 사람이 밝은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좋지만 어쩌면 우울함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을 갖는 것이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장 편한 상태가 어두운 공간에서 어두운 음악을 듣는 것이라면 그런 환경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야말로 진정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이다. 걱정과 온갖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해방된 공간 그것이 바로 어둠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나는 우울한 나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왜 나는 불행한가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우울과 행복은 공존 가능한 존재였다. 행복은 엄밀히 말해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너무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행복의 조건을 세워놓고 그 외의 것은 행복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즉, 넓은 집을 샀을 때나 비싼 외제차를 사야만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행복이라는 것은 무언가에 몰입할 때나 감동받았을 때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어둡고 우울한 환경에서 몰입이 최대로 된다면, 멋진 결과물 앞에 흡족해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이지 않을까.



우울을 응원하며


세상에 밝은 사람만 존재한다면 정말 지루할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우울에서 위로를 받고 우울에서 힘을 얻는다. 감정의 폭이 넓을수록 아름다움의 이해 정도가 세밀해진다고들 하지 않는가. 세밀함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경험의 깊이를 더해주기도 한다. 헤르만 헤세의 우울함에서 나온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민을 던져줌과 동시에 위로를 안겨주었고, 우울한 화가 반 고흐의 그림을 보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감동을 얻는다. 물론 끝이 안 좋은 예술인들도 있기에 '중독'의 위험을 자각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 우울한 성향이라고 판단된다면 이를 병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 장점을 이용하여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내는 것을 추천한다. 예술과 같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직업군에 종사하는 경우는 대체 불가능한 직업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스토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 생각한다. 위대한 통찰력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는 힘에서 비롯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