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소화불량과 두통으로 인해 죽이나 과일과 같이 속에 부담 없는 음식으로만 끼니를 때우다 보니 힘이 없다. 힘을 내야 하는데 건강한 음식은 너무 비싸서 오늘도 편의점 죽으로 하루를 버틴다. 삼각김밥의 몇 배의 가격을 가졌기에 죽 조차 부담스러운 음식으로 다가온다. 맛있는 거 먹고 싶지만 돈도 시간도 없고, 나에겐 과분한 일이라고 느껴지기에 이내 생각을 접곤 한다. 나 자신을 초라한 감옥에 가두고 있다. 배부르고 기쁜 날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있을 곳은 배고프고 춥고 졸린 환경인데 뭐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02. 날씨가 많이 풀려 반팔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간간이 보인다. 날씨가 풀리니 색다른 공허함이 찾아온다. 자꾸 과거의 기억들이 나를 찾아와 괴롭힌다. 고등학교 때는 한여름 땀을 흘려가며 공부하곤 했었는데. 그때 참 많이 울었기도 했다. 지금은 울 기력조차 없어서 울지 않지만. 밥을 며칠 굶고 돈을 모아서 병원을 가봐야겠다. 모 사이트에서 우울증 자가진단을 했었는데 매우 위급한 상태라는 결과를 받았다. 혼자 이겨내기엔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이며 불편함을 호소하는 정도란다.
03. 내가 병원을 가지 않은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돈도 시간도 아닌 내 성향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성향 자체가 우울한 성향이다. 성격도 낙천적인 편도 아니고 혼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원래부터 고독을 즐겼냐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겠다. 아마 경쟁으로 가득 찬 학창 시절을 보낸 탓에 이런 성향으로 굳어진 거라 생각한다. 경쟁을 하고 상처를 받을수록 스스로를 고독하게 가두었다. 물론 고독이라는 과정 속에서 많이 성장한 것도 내가 누구인지 발견한 것도 맞다. 하지만 결국 우울의 늪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04. 사라지고 싶다. 누군가 나를 찾아줬으면 해서가 아니라 내가 견디기에 너무 많은 짐들이 주어졌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사라지고 싶다. 내가 있음으로써 그들은 더욱 불행해질 것이다. 그들을 위해 평소 감정을 잘 숨기고 살았었는데 이제 숨통이 막힌다. 언제까지 가면을 써야 하며 가식적으로 대해야 할지, 이 끝없는 레이스에서 얼마나 더 고통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05. 잠자리에 들기도, 밥을 먹기도 그리고 누군가를 만날 의욕도 없다. 그냥 꾸준히 하는 건 담배 피우는 거밖에 없다. 무기력하고 힘도 없고 멍하니 앉아있기만 한다. 슬픔을 견디는 게 갈수록 힘들어진다. 이제 나는 견딜 힘이 없다. 그냥 차라리 나를 삼켜줬으면 좋겠다. 삼켜서 나를 소화시켜 다른 형태로 만들어버렸으면 좋겠다. 원래 잠이 많은 편인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을 잤던 거 같다. 하지만 잠에 들기가 싫어 피곤하면 카페인을 마신다. 억지로 불면증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