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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한 나비 Sep 15. 2019

내뱉는 그 속에 담긴 무언가.

"엄마는 네가 있어줘서 너무 행복하다. 잘 자라줘서 고마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올해까지만 버티고 다음 해에는 사라질 것을 다짐했었는데,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죽은 것이고 그렇기에 일에 내 몸을 바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건강은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매일 아침을 담배와 커피로 시작해 과업에 치이다 맥주 한 캔과 함께 밤을 새우곤 했었는데.

이제 와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인가. 나는 왜 이토록 어리석었던가.

이미 너무도 망쳐버렸고 망해버린 것만 같은 인생을 되돌리기란 가능한 것일까.


"아빠가 자주 연락 못해서 미안해. 필요한 건 없니? 타지 생활하느라 고생이 많다."


가족이 걱정할까 힘든 생활 꽁꽁 숨기고 하루하루 버텼었는데, 그래서 정신도 몸도 정상이 아닌데 왜 이제 와서 나의 행동들의 부질없음을 느끼는 걸까.

강철과 같은 굳건함으로 잘 버텨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는 약한 바람에 넘어가고 만 나뭇가지에 불과했구나.

치열하게 세상살이 버티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이 '저 자식도 치열하게 사는데 우리도 좀 더 버텨보자'라는 말을 나누며 하루하루의 의지를 다진 것도 모른 채 끝낼 생각만 하고 살았었다니.


삶이란 이토록 불행한 것인가. 세상 고통에 드디어 숨통이 끊어지나 싶었는데 이렇게 또 멋대로 숨을 불어넣다니. 살아있는 시간의 1할이라도 아니면 단 1%라도 행복하다면 그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인가. 그 1할의 시간이 9할의 불행을 견디게 하는 것인가. 아무리 우울하고 고통스러워도 결국 해가 뜬다는 그 사실 하나에 참고 견디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수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혀 놓고 있다. 분명 최종 목표가 눈 앞에 있었었는데.


숨을 내쉬는 것. 매일 하는 행위이지만 매번 다른 느낌이다. 어느 때는 행복하지만 어느 때는 불행하게 한다. 인간의 삶이란 유한한 것이니 내쉬는 숨 조차 유한할 것 일터.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뱉는 숨은 행복할 것인가 불행할 것인가. 최후의 숨만으로 평가하기 힘든 것이라면 내뱉은 숨은 대부분 행복에 가까울 것인가 불행에 가까울 것인가. 불행으로 얼룩진 내가 뱉은 숨들이 이후엔 행복으로 바뀔 순 없는 것일까.


숨통이 조여 온다. 졸음, 배고픔, 스트레스, 인간관계, 업무, 우울감, 피로, 걱정, 막막함. 감정들의 요동을 절제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걸까. 숨을 한번 내쉴 때마다 가슴이 갑갑해져 온다. 숨을 쉬는 의미를 잃고 있다. 누구에게나 스쳐가는 과정인 걸까. 다들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다들 하루하루 버티다 보니 그 나이가 되어있는 것이고 나이란 일종의 훈장과도 같은 것인가. 내가 숨을 거둘 때의 나이가 나의 그릇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인가. 나는 왜 이토록 어리석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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