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이동진 평론가는 영화는 술이고 책은 물과 같다고 했다. 최근 몇 달 영화와 책을 가까이하며 느낀 것이 있다면, 영화는 찰나의 강렬한 이끌림으로 관객을 매료시키고 책은 깊은 여운으로 독자를 잡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척박한 현실에서 갈증을 채워줄 무언가를 하고 싶은 날이면, 영화보다는 책을 찾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독서에 대한 의미도, 방법도 많이 달라짐을 느낀다. 학창 시절 단순 내신 채우기용으로만 취급했던 책들을 아직 방 한 켠에 고이 보관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것은 대부분 어린 시절 완독 후 느낀 감상과 성인이 되어 재독 후 느낀 감상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다시 읽는 그 몇 년의 간극 사이 나는 무엇을 잃고 또 무엇을 얻었는가. 답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있었다.
≪동물농장≫은 어른의 사회를 아이의 상상력으로 풀어낸 명작이다. 앞서 재독의 의미에 대해 몇 줄 적어보았지만, 그 글이 무색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이번에 처음 읽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이 책을 조금 더 상상력이 풍부했을 학창 시절에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 섞인 한숨을. 그것은 ≪동물농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주체가 인간이 아닌 동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굳은 뇌로는 돼지가 두 발로 서서 채찍질을 한다던가, 글자를 읽고 풍차 도면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하기란 제법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중간에 섣불리 책을 덮지 않게 되는 이유는 이 책에서 느껴지는 묘한 현실성 때문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언제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은 꿈을 꾼다. ≪동물농장≫의 동물들 역시 인간에게 종속되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인생의 주체가 되길 원하며 반란을 일으키고 새로운 농장의 우두머리 격으로 (가장 지능이 좋은) 돼지를 내세워 농장을 꾸려나가게 된다. 그러나 성공적이고 민주적으로 느껴졌던 반란의 초창기가 지나고 새로운 권력자(돼지)를 향한 편향적인 부의 분배와 복종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이어지자 몇몇 동물들은 의아함과 불공평함을 느끼게 된다.
아마 이것은 끊을 수 없는 연쇄로, 잠들기 전이 가장 행복하고 꿈을 꿀 때가 가장 행복한 것처럼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협심하는 순간만이 모두가 공평하게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우두머리가 돼지가 아니었더라도 (혹은 돼지를 몰아내고 그다음으로 똑똑한 동물이 우두머리가 되었더라도) 권력이란 한 점으로 쏠리기 마련이니까.
전체적인 문체는 담백하며 서적의 두께는 얇아서 읽는 시간은 비교적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근 몇 주 동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며 도무지 나가지 않는 진도에 허우적대다, 이 책을 끝내니 새로운 책 한 권을 마쳤다는 뿌듯함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그와는 별개로 인간 사회를 십분 반영한 스토리를 보며 느껴지는 못마땅함과 씁쓸함은 작가가 준 생각할 거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