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하지만 놓칠 수 없는, 부드러우면서 격정적인 모순의 충돌
관객에게 많은 것을 던져두는 영화는 무책임하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으니 어떤 것도 확실하게 쓸 수 없다.
그러나 재미있다(혹은 재미없다) 따위의 평가로 일축하기엔 영화에 담긴 무게가 제법 무거워, 결국 영화 전반의 스토리를 곰곰이 회고해 보고 감독의 말을 찾아보는 수고로움을 시도하게 된다. 사실은 굳이 영화가 아니어도, 인생에 있어 생경한 경험을 주는 새로운 장르를 만나게 되면 어떤 후기나 감상평,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뒤적거리게 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즐거움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무책임이라는 단어를 선정하는 것은, 이 영화의 결말이 열리다 못해 문짝이 찢어지고 날아가버린 건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일 뿐이다.
≪위플래쉬≫는 종반에 많은 감정을 갈무리하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영화이기 때문에 그 마무리조차 아름답게 포장되지만, 기실 나같이 미장센이니 뭐니 하는 영화의 촬영 기법조차 잘 모르는 범인의 경우 마지막 10분에 담긴 의미를 명확히 설명해 줄 해설서가 필요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보니, 동생이 나는 꽉 닫힌 결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살면서 극이 끝날 때 열린 결말이 좋은지, 닫힌 결말이 좋은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영화로 내 취향이 평가되니 새삼 신기한 일이다. 그렇다. 나는 닫힌 결말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그래서 잘 만든 영화를 굳이 열린 결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트집을 잡아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었나 보다.
사실 취향의 문제인데, ≪위플래쉬≫ 는 잘 만든 영화가 맞고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결말부의 여러 가지 흩어진 감정들과 미래의 상상은 사람에 따라 즐길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막을 내리는 순간을 짐작할 수 있게, 적어도 끝나는 순간 '설마 이렇게 끝?'이라는 감정이 들지 않게끔 최소한의 배려가 있는 영화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그것은 결말 대부분의 요소를 관객의 몫으로 돌렸으되, 영화의 크레디트가 어느 때 올라올지 예측 가능하여 오히려 여운이 깊다.
엔딩에 대한 아쉬움은 여기까지 하고, 그것과 별개로 다른 모든 요소는 정말 재미있었다.
2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흡입력과 몰입감 있는 스토리를 구축해 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영화의 소재는 어쩌면 이제는 흔할 <스승과 제자의 대립>과 <평범해 보이는 아이에게 천재성을 발견한 스승이 그 아이를 일약 천재로 키워내는 스토리>가 바탕이 되지만, 그것에 재즈 음악과 드럼을 녹여내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참신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앞서 영화에 대해서 하나도 모른다고 고백했으니 하는 말인데, 나는 재즈와 드럼에 대해서도 일자무식이다. 그러니 엔드류의 드럼 기술에 대해서는 물론이요, 연주를 순수한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조차도 쉽지 않았다. (귀가 달려있으니 박자와 소리에 대해 구분만 할 뿐, 그것에 대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그저 배우의 표정을 보며 극의 상황과 감정의 고조에 대해 이해할 뿐.
한 가지 신기하다(아이러니 같다)고 생각했던 점은 엔드류와 플레처의 대립은 말 그대로 폭력적이고 아주 감정적인데, 본인의 템포를 종용하는 플레처가 손을 흔드는 순간 마법처럼 아름답고 부드러운 재즈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음악-위플래쉬말이다.
왜 위플래쉬와 카라반일까. 두 곡은 아주 분위기가 다른데.
그 곡의 제목이 아니라 분위기로 상상해 보자면, 위플래쉬는 청중을 잡아끄는 도입부와 매끄럽게 이어지는 멜로디로 말미암아 플레처가 엔드류를 주목하고, 그를 키우는 과정을 담아내기 위한 초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반면 카라반으로 영화가 마무리된 이유는 이 음악이 엔드류의 성장한 실력을 방증할 수 있으면서도 내면의 변화(폭력적이며 격정적이고, 강렬하다)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곡이기 때문일 것 같아 셀렉 된 것 같고.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대부분 비중을 차지하는 위플래쉬가 귀에 더 남고, 가슴에 더 닿았다. 재즈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 또한 자그마한 소득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인의 미숙함을 인정하는 것은 언제나 부끄러운 일이다.
오늘도 이 감상평을 쓰면서 남들보다 못한 시선을 가진 주제에 평가를 내리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같은 장면을 봐도 발견하는 의미의 가짓수가 다르다지만, 나는 대부분의 평가단보다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은 다행히도 문화 예술 장르는 취향이라는 명목 아래 받아들이는 사람의 부족함에 대해 어느 정도의 관용을 베풀어 주리라 믿기 때문이고, 다음은 나의 식견을 더 넓히고 싶다는 욕구가 크게 자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쪼록 ≪위플래쉬≫ 는 이러한 나의 얄팍한 계산과 생각을 충족시켜 주고도 남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