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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나 Nov 10. 2019

나도 맘충이었을까?

- [82년생 김지영]과 [말이 칼이 될 때]를 읽고, 2018년 여름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맘충이란 용어를 처음 접했다. 25살에 첫아이를 낳아 일찍 육아를 시작했고 이제 아이들이 고등학생, 중학생이라서 맘충이라든지, 노 키즈존에 대한 별생각도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말이 칼이 될 때>를 읽으면서 맘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맘충이란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맘충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의미와 파급력을 무엇일까?

 

  내 아이가 어렸을 때, 나 또한 지금 사회가 말하는 맘충이었을까? 나 또한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가면 잠깐 아이에게 눈을 떼는 사이 아이가 뛰어다니기도 하고, 컵을 쓰러뜨려 물을 쏟기도 했다. 분명히 의도하지 않았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랑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도 답답하고 힘들어 또래 엄마들이랑 만나 밥이라도 먹으려고 하면 이 또한 전쟁이었다.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이랑 우린 언제 우아하게 밥 한 번 먹어 보냐면서 서로 자조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키우는 내가 사회에 벌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아이를 공공장소에 데려가서 일어나는 사소한 불편이나 남에게 주는 피해를 다 겪고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보아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현재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보는 시각은 좀 달라진 것 같다. 육아를 가치 있는 일로 여기기보다는 집에서 아이만 키우는 여자를 개념 없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맘충으로 보는 시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처음부터 맘충인 엄마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한국이라는 사회가 맘충( 이 용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글을 이해를 위해 쓰겠습니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이라는 곳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은 나에게 항상 불안감을 주는 것이었다. 규칙을 지키면 영원이 내 아이의 차례는 오지 않을 것 같고 큰소리를 치고 화를 내야만 내 아이 앞으로 몫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아이들에게 백화점에서 무료로 하는 유아 대상 연극을 보여주러 간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 잘 보이는 자리에 앉기 위해 일찍 줄을 써서 앞자리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뒷자리까지 다 차게 되자 백화점 관계자들이 늦게 온 관객을 첫 좌석 앞쪽 바닥에 앉게 하기 시작했다. 결국 일찍 줄을 써서 앞자리에서 공연을 보려고 한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없는 분노가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 우리나라는 이런 곳이구나, 적당히 시간 맞춰 오면 무대 앞에서 연극을 더 잘 볼 수 있구나. 그렇다면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오고 줄을 쓸려고 일찍 일어나고 아이들을 준비시켜 나온 나는 바보인가? 그때 목소리 높여 백화점에 항의했다면 난 맘충이 되었을까? 그때부터 난 알 수 없는 불안감속에서 아이를 키웠다. 한국은 매뉴얼이라는 것이 없는 나라이구나. 내가 질서를 지키고 정도를 지키고 예의를 지키면 내 아이의 자리를 다른 아이가 차지해 버릴 수도 있구나. 부모가 되니 내 자리를 빼기는 것 보다 내 아이의 자리가 뺏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불안감과 분노는 배가 되었다.

  '한국은 소리치고 악다구니를 써야만 되는 나라이구나.' 그때부터 줄을 써야 되는 상황이 되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는 이런 상황들의 원인과 나의 불안감의 정확한 정체를 몰랐고 더욱이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이제는 불확실하게나마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만큼 한국의 시민의식이 따라가지 못했고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돈만 많으면 대접하는 한국의 물질만능주의가 큰소리를 내지 않으면, 남을 배려하면 내 자리를 빼앗기고 말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심어 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맘충이란 용어는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 특히 엄마들에게 문제의 원인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나라에서는 출산장려 정책을 많이 내놓고 있지만 아이들 키우는 엄마들은 맘충이 되는 곳이 한국이다. 그리고 음식을 먹고 바닥에 흘리고 쓰레기를 카페에 두고 가는 사람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지 아이를 키우는 전체 엄마들의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끼리 맘충이라는 말을 써가면서 다른 엄마를 흉보는 현실이 안타깝다. 맘충이라는 용어를 비판 없이 쓸 것이 아니라 이 용어의 의미와 파급력을 고려하고 엄마들부터 쓰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은근히 노 키즈존을 찬성하고 카페나 식당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엄마들을 못 마땅하게 보았던 적이 있는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려면 한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나부터 카페에서 아이를 보면 밝게 웃어 주고, 식당에서 아이 때문에 당황하고 있는 엄마가 있다면 먼저 손길을 내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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