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부터 기분 나쁠 정도의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왼쪽 발등과 복숭아뼈 뒤쪽이 달리는 동안 버텨줄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파워젤은 7km 간격으로 먹기로 한 것을 급수대가 5km 간격으로 있어서 9, 19, 25, 30, 35km 먹기로 마음을 바꾸고 파워젤을 챙겼다. 발목 테이핑도 하고 러닝복을 입고 그 위에 또 옷을 입었다.
경기장에 도착해서 짐을 맡기고 몸을 풀고 출발선에서 출발했다.
절대 오버페이스 하지 말라는 경험자들의 말을 듣고 6:20 페이스에 맞춰 달리려고 노력했다. 빨라지면 늦추고. 급수대가 나오면 물과 이온음료도 꼭 챙겨 먹고 물 스펀지도 나오면 입술을 적셨다. 9km 지점에서 첫 파워젤을 천천히 먹고 달렸다. 21km 지점에서 하프 주자들이 들어가고 풀 주자들만의 코스로 진입했을 때 그 적막함을 잊을 수 없다. 이제 풀 주자만 남은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풀코스의 반을 달렸다가 아니라 다시 하프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페이스를 늦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중간에 같은 러닝 크루랑 같이 달리다가 헤어지고 그렇게 계속 달렸다.
35km가 지나는 지점부터 걷는 사람도 많아지고 쥐가 나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눈에 보였다.
35km까지 달려 본 나는 35km가 지나니 몸이 아는지 다리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페이스도 떨어졌다. 힘들면 호흡하면서 마음속으로 ‘나는 달린다’를 되뇄다. 오르막에서는 ‘빨리 걷는다’를.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37km 지점에서는 달리는 나를 보는 또 다른 나를 상상했다. ‘달리는 너는 좀 괜찮은 것 같다고. 잘하고 있다고.’ 나를 다독이는 나를 만들고 만났다.
39km 지점에서 아는 동생을 만났고 남은 거리를 같이 달려 주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3km, 페이스가 많이 떨어져도 4시간 30분 안에는 완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내 첫 풀 마라톤도 끝날 것이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5km도 뛰지 못하는 나를 의심했다. 머릿속에 의심으로 꽉 차 버리면 불안이 엄습했다. 내가 안 되는 것에 또 시간과 노력을 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번 풀 마라톤을 달릴 때도 왼쪽 발등과 복숭아뼈 뒤쪽이 아프기 시작하면 어떻게 할지. 포기할 때를 모르고 또 미련하게 달릴까 봐. 완주보다도 포기의 순간에 포기를 못할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하프 지점을 지났을 때 그때까지 괜찮은 발과 호흡에 달리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마라톤 풀 달리고자 연습을 하면서 달리고 난 뒤의 내가 상상이 안 되었다. 달리고 나서 변한 것이 없으면서도 나는 변했다. 경험이란 것이 이런 것이리라. 미묘하게 나를 변하게 하는 무언가.
달리는 나를 긍정할 수 있듯 달리면서 나를 긍정하는 법을 배운다.
혼자 책을 읽고 과거를 복기하다 보면 동굴 속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나를 꺼내기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 중에도 동일한 동작을 반복하고,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없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자유로워 보이는 달리기를 하고 싶었다.
10km를 달려야지 마음먹으면 편한 마음으로 달릴 수 있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 판단하기 이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하프마라톤도 도전하고 풀 마라톤도 달렸다. 처음 생각한 것보다 거리도, 마음도 멀리 왔다.
몸을 믿게 되는 경험들이, 나를 믿게 되는 인식으로 발전했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움직인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몸이 느끼는 느낌에 집중한다.
처음 경험하는 모든 것은 미지다.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을 알게 되는 경험.
몸으로 하는 모든 것에 무능하다고 나를 인식하던 나는, 몸이 보내는 신호에 당연히 무지했고 그럼으로써 다른 감각에도 무지했다. 달리기는 책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집중하게 했다.
풀마라톤을 달린 내가 좀 마음에 든다. 앞으로 달리는 사람으로 남은 생애를 살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