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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나 Nov 14. 2019

82년생 김지영(2)

-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경험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남자로 태어났다면 한 번도 고민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  것들에 대해.      


1. 생리의 기억

 책에서 김지영은 언니가 나누는 생리에 대한 대화와 자고 일어났을 때 김지영 옷에 묻은 생리혈을 보고 엄마가 놀라면서 빨리 갈아입으라고 다그치는 장면이 있다. 거기에서 내 생리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보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첫 생리를 했고 지금도 생리를 하고 있다. 생리 때마다 진통제를 한 번은 먹어야 했고 일을 하면서 생리가 옷에 묻었을까 봐 항상 신경을 쓰면서 살고 있다.

 초경을 빨리할수록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생리는 감추어야 할 어떤 것이었다. 첫 생리 후,  생리대를 사러 가면 신문지로 생리대를 싸 주거나 검은 봉지에 넣어 주었다. 여자는 생리대를 감추고 화장실에 가야 하고 생리혈이 옷에 묻기라도 한다면 칠칠치 못한 여자가 된다. 자신의 생리기간을 남에게 특히, 남자에게 노출하면 부끄러운 일이었다. 생리에 대한 모든 것은 감추어야 할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여자는 생리 기간 동안 활동에 제약도 받고 생리통에 고통도 받는다. 생리대도 챙겨야 하고 사용한 생리대를 잘 처리해야 한다. 


  이제 나는 생리 컵을 쓴다. 생리 컵은 쓰려면 여성이 자신의 질의 길이도 알아야 하고 생리 컵을 넣고 빼기 위해 질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야 한다. 여성의 질은 남성 성기의 삽입만 허락된 듯한, 남성 중심의 성문화에선 참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생리 컵 쓰는 것을 주저한다. 김보람 감독의 영화 [피의 연대기]를 보고 페미니즘 책모임을 같이 하는 멤버들의 생리 컵 사용기를 듣고서, 생리 컵을 사놓고도, 6개월 만에 생리 컵을 처음 사용했다. 시행착오를 겪고 지금은 잘 사용하고 있다. 생리 컵을 넣기 위해 내 몸을 만지면서 나는 의문을 가졌다. 왜 내 몸을 알아가는 것에 거부감과 죄책감을 가지는지?

 생리 컵을 쓰면서 나의 생리혈, 생리 패드에 응고된 생리혈이 아닌 생리혈 자체를 보았다. 30년 동안 생리를 하면서 생리혈을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본 생리혈은 냄새도 없고 맑은 빨간색이었다. 그동안 생리 패드에 응고되어 냄새나고 검붉은 생리혈은 진짜 나의 것이 아니었다. 생리 패드에 응고된 생리혈처럼 여성들은 자신을 왜곡된 이미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2. 여성이 입는 옷과 그에 대한 책임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나의 옷차림은 자유로워졌다. 올해 여름에는 어깨를 드러내는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여름 원피스 안에 입던 속바지도 입지 않았고 비치지 않는 옷이면 브라도 착용하지 않았다. 예전에 타인, 특히 남자들이 내 옷차림을 야하게 느끼지 않을까 신경 쓰여 입지 않던 옷들을 편하게 입고 다녔다. 어깨를 드러내는 옷은, 어깨의 부딪치는 바람은, 내가 쓸어내리는 내 어깨의 감촉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책과 영화에서 김지영이 버스에서 동급생이 따라와서 위협을 느끼고 아빠를 버스정류장에 불렸을 때, 아빠는 김지영의 옷차림과 태도를 나무란다. 교복 치마를 짧게 입지 말고 아무한테나 웃지 말라고 야단친다. 교복 치마를 짧게 입고 아무한테나 웃어서 남자의 위협에 노출된 것이 김지영의 책임인 것처럼. 학교에서 교복 단속의 여학생들에게 더 엄격하다. 여자는 그렇게 단속의 대상이었다. 남자의 노출은 건강함과 강함의 표현이고 여자의 노출은 남성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라는 인식. 남성의 욕망은 남성 스스로 자제할 수 없으니 여성이 조심해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인식이 아직 이 사회에 남아있다. 이제 남성도 자신의 욕망이 사회적으로 너무 쉽게 용인되고 있었음을 인지하고 자신의 욕망은 스스로 조절해야 되지 않을까?      



 3. 모성 신화

 여자는 엄마가 되는 순간 사회적 욕구보다 아이의 욕구, 아니 기존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이라는 플레임 안에 갇히고 거기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강요받는다. 여자가 모성보다 자기의 출세 욕구나 자기 표출의 욕구를 더 나타나게 되면 그때부터 여자는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남자의 사회적 욕구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정당하고, 더 강조되는 반면, 여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 욕구를 포기해야 된다. 


 인바디를 측정하기 위해 보건소에 갔다가 우연히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행사를 보게 되었다. 큰아이 때 모유를 먹이지 못해 죄책감이 많았고 둘째는 생후 8주까지 혼합수유를 하면서 산후조리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모유수유에 성공했다. 그때는 더 나은 엄마가 된 것이, 아이가 나를 더욱더 필요로 하는 것이, 아들과 더욱더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 자랑스러웠다. 분유를 먹이는 엄마보다 더 나은 엄마라는 착각에 빠졌다. 그렇게 사회가 주입하는 사고에 순응하면서 살았다. 이젠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캠페인에서 모순을 느낀다. 모유수유는 꼭 해야 할 것이 아니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 죄책감이나 자부심이 덧붙여지면 안 된다.     



  [82년생 김지영] 영화와 책은 무심코, 당연하다고 흘러 보낸 많은 과거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고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불편하고 부당하지만,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야 했던 여성에 관한 많은 편견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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