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의 [ 남자의 자리 ]와 [ 한 여자 ] 그리고 존 윌리엄스의 [ 스토너 ], 필립 로스의 [ 에브리맨 ] 주말 내내 4권의 책을 읽었다. 모두 누군가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 특히 [남자의 자리]는 작가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다른 이의 아버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난 중얼거렸다. 내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제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이제 작은아버지만 남았는데, 작은 아버지께 물어볼 수밖에 없는 내 아버지의 이야기
1943년 7월 20일에 태어나 2013년 1월 19일에 돌아가신 내 아버지, 아빠
5남매의 셋째, 누나 둘에 이어 낳은 첫 번째 아들, 종손이었던 그의 출생의 가족의 기쁨이었겠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중학교만 나온 채, 생업에 뛰어 들어서 동생을 돌보아야 했던 내 아버지.
그는 언제 행복했으며 언제 가장 슬펐을까? 살아서는 내 어깨에 올라타서 나를 누르는 커다란 짐 같았던 내 아버지, 자살로 70살, 생애를 마무리하면서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 버린 내 아버지.
나는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에 대한 첫 기억은 무엇이었던가?
“아빠에게 뽀뽀해주면 100원 줄게” 하던 그,
눈 속에 나에 대한 사랑이 넘치던 그,
엄마와 싸우고 앉아서 화를 내던 그,
3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다 돌아와서 어색하게 나와 오빠와 시간을 보내던 그,
캔 안에 든 커다란 햄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던 그,
큰 맘먹고 나에게 바나나를 사주던 그,
술을 먹고 온 밤이면 ‘정아, 정아 하고 부르던 그의 목소리’,
중학교 때 내가 말대꾸를 하면서 반항을 하자 나의 뺨을 때리던 그,
다음 날 아침에 전기밥솥 위에 있던 미안하다던 그의 편지,
내 성적표를 보고 부모 확인란에 무엇이라고 적어야 하는지 항상 난감해하던 그,
잘 사는 친구와 같이 학원에 가고 싶다고 때를 쓰는 나를 위해, 회사에서 가불을 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점심때 학원비를 주던 그,
IMF가 그의 직장을 쓰러뜨리고 졸지에 사장의 빚보증을 써서 채무자가 되어 괴로워하던 그,
돈이 없어 빠진 앞니를 하지 못해서 어디 나갈 때마다 조심스럽게 빠진 앞니를 다시 넣던 그,
대학을 갈 때도, 휴학할 때도, 결혼할 때도, 아이를 낳을 때도, 내게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만 못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할 뿐이다.
나는 존재감 없는 그가 미웠다.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던, 말년에는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의지하던 그가 미웠다.
하지만 나에게서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에게서 연유되었음을 안다.
나도 그 같은 부모밖에 되지 못함을 이제는 안다.
그가 견디었을 외로움 밤들에 대해서도 이제는 안다.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 그의 나이 43세. 지금의 나와 같다.
아직도 요동치는 마음을 가진 나를 보면, 그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었을까?
그가 말하던 부모교육과 모태신앙이 그를 그렇게 희생하게 했을까?
그는 자기 것을 주장하지 못했고 그래서 항상 자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무시당했다. 나도 항상 시어른이 먼저, 아이들이 먼저, 남편이 먼저였다.
그가 살아있다면 그랑 해외여행도 가고 싶고 그에게 귀여운 애완견도 선물하고 싶다.
그가 살아있다면 내가 그에게서 나왔음을 이제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행이라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그에게 말하고 싶다.
그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이 너무도 빈약하다.
그는 엄마가 집을 나간 후에 다시 사랑이라는 것을 했을까?
성적 욕구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난 왜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수수께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