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나는, 평화로웠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안정감 있는 날들이었을 것이다.
미약하지만 직업적인 안정을 가지게 되었고,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던 로스쿨로, 아들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과로 진학하게 되었다.
남들 보기에 나쁘지 않은 인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만족스럽지 않았다.
예전에 읽었던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속의 루시가 내 속에서 되살아났다.
이 책에서 나는 어떤 답을 얻고자 했을까?
내가 겪은 어린 시절의 결핍과 상처는 여전히 나를 부여잡고 있다.
그리고 내 아이들 또한 그러한 결핍과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받았던 상처와 주었던 상처 사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속성.
<오, 윌리엄!>의 번역가 정연희는 옮긴이의 말에서
p301 어린 시절 경험한 가난은 결코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어린 시절 경험한 추위도 결코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으며, 평생의 배경이 된다.
p303 루시는 자의식적이고 자기 고백적이며, 윌리엄에게서 자기 몰두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의식이 강하고 자기 고백적인 경향이 있다면 자기 몰두적 일 수밖에 없다. 자기 몰두적이라는 건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자기중심적인 것과는 조금 다르다. 자기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하려고 하면 자기에게 몰두하게 되는데, 그렇게 해본 경험이 있다면 알겠지만, 자기는 성찰하면 할수록 작게 느껴진다.
나이가 늘어나도 여전히 새로운 것은 두렵다.
사람들은 만나 너무 많은 말은 한 날은 혀가 쓰고, 말은 내뱉지 않은 날에는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불행한 사람인가?
과거에 불행한 사람이었다면 여전히 불행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나에게 여전히 삶이 고통스러운지.
대답을 꼭 해야 한다면
답은 "NO"
나는 좀 가벼워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