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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n 03. 2020

비로 인한 하루

점심때 동료와 산에 가기로 했다. 시간이 다 되어 나가려는 순간, 날씨가 흐려지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아쉬움에 취소하고 사무실 의자에 앉았다. 다들 점심을 먹으러 떠난 텅 빈 공간에 무얼 할까 고민하다 책을 꺼내 들었다. 멜론 DJ 추천 음악에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보사노바 보컬'이 있었다. 해시 태크 '센치'가 마음을 움직였다

불을 반쯤 끄고 책을 읽었다. 요즘 읽고 있는 홍승은 작가의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였다. 제목부터 끌렸다. 작가의 솔직한 글에 놀랐다. 일간 이슬아에서도 작가의 가감 없는 글을 만나고 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역시 글은 진솔해야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글은 내내 이 점을 강조했다. 작가도 처음 글을 쓸 때 추상적인 표현을 자주 썼다고 한다. 하지만,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글이 훨씬 좋음을 예까지 들어주며 보여주었다. 초창기 쓴 글을  글쓰기 수업에서 사람들에게 공개하여 반민 교사로 삼는다는 말에 대단함을 느꼈다.


설명적인 글과 보여주는 글의 차이도 알 수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실제 글을 쓸 때 설명하려는 욕구를 참을 수 없다. 보여주자. 마음속으로 다짐을 해보았다.

하나둘 사람들이 점심을 마치고 나의 휴식에 균열을 냈다. 앞자리 계장님이 내 자리에 와서 택배 하나를 주었다. 뜯어보니 책이었다. 애나 번스의 '밀크맨'이었다. 이번에 회사에서 진행하는 독서 증진 프로그램에서 신청한 책이 왔다. 책도 주고 상시학습도 인정해주어 일거양득이다. 다만 독후감을 써서 제출해야하는 것은 함정이지만. '내 인생 최고의 책' 독서 모임 도서이기도 해서 다음 책으로 읽어야 한다.

어수선한 사무실에서 동기에게 반가운 톡이 왔다. 비가 그쳤으니 잠시 산책하자는 제안이었다. 나야 물론 콜이었다. 이번에는 회사 주변을 크게 돌았다. 역시 유쾌하고 재밌는 친구라 이것저것을 들려주었다. 성경에서 인상적인 구절에 대해 한바탕 강의를 들은 후, 갑자기 나에게 MBTI 유형을 물었다. ISFJ라고 말해주니 핸드폰을 꺼내서 해줄 말을 들려주었다.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라.' 헉...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본인은 ESTJ라며 과거 일화로 이야기가 번졌다. 어쩌면 그리 말을 재밌게 하는지. 동기와 걸으며 유쾌함에 젖었다.

걷기 좋은 날이었다. 비로 인해 사무실에서 책 읽는 기쁨을 누렸고, 비가 그쳐 동기와 걸을 수 있는 행복을 느꼈다.

비가 내 일상에 찾아와 여러 가지를 남기곤 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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