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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Nov 06. 2019

불쑥 찾아온 어떤 감정

벌써 11월이 며칠 하고도 더 지났다. 사실 11월을 기다렸다. 마지막 달은 아니면서 끝에 가까운 느낌이 좋았다. 그달을 맞이하고도 제대로 즐길 여유가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주말만 바라보는 삶의 연속이다. 때론 주말이 안 왔으면 하는 마음도 크다. 주말을 기다리며 평일을 버티고 바라던 주말을 보내면 이내 다가온 평일이 힘들다. 지나면 별일 아닌 삶이 그 안에 있으면 어렵기만 하다. 특히 안 좋은 소식을 들려올 땐 더욱더 그렇다.

회사 선배의 위암 소식을 들었다. 처음 본부에 근무했을 때 그분은 인사 담당자였다. 같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언뜻 복도에서 마주치면 힘든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내가 먼저 본부에서 내려온 후 얼마 뒤 선배의 승진 소식을 들었다. 몇 년 뒤 나는 다시 본부에 근무하고 있고 어제 선배가 병으로 인해 휴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곳에서의 근무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슬픔, 안타까움,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이 나를 스쳐 갔다.

정신없이 일 처리를 하던 오후였다. 메신저에 불이 들어왔다.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후배였다.

[띵동. 선배님 살아 있어요?]
[간당간당 숨만 쉬고 있지.]

이어지는 쓸데없는 말 잔치가 펼쳐졌고 그제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으레 하는 조만간 보자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할 찰나에 나도 모르게 건강 잘 챙기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처음 본부 생활을 하는 그 후배가 오버페이스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이었다.

밤 11시가 이제 막 넘어가려는 순간 메신저의 불이 다시 켜졌다. 바로 옆 부서 친한 후배였다. "차나 한잔 하시죠."라는 말에 후배의 사무실로 향했다. 나를 보자마자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내와 김치찌개에 삼겹살을 먹기로 했는데 퇴근하지 못해 애간장이 탄다는 것이었다. 새벽을 향해가는 시간에 아직 저녁 먹을 걱정을 하다니 웃픈 현실이었다. 저녁 식사를 아직 못했다는 후배의 말에 마음이 쓰렸다. 잠시 아픈 선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본부의 험난한 삶과 승진을 바꾼 것 같다는 후배의 말에 일정 부분 공감이 갔다. 우리가 선택한 길이기에 어디다 탓도 못 하지만 말 한마디가 주는 의미를 서로 알기에 위로가 된다. 집에 가서 꼭 김치찌개와 삼겹살을 먹겠다는 후배의 결연한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건강 잘 챙겨. 건강 잃으면 다 소용없다. 김치찌개와 삼겹살은 그냥 내일 먹지. 그러다 속 버려."란 농담 비슷한 진심이 튀어나왔다.

하루가 내일로 가기 전에 간신히 회사를 나섰다. 다음 날은 새벽부터 출장이 있다. 마음이 바빠졌다. 차 안에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들이었다.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무엇을 하는지.

"아빠 언제 와?"
"이제 가는 중이야. 다 왔어. 안 자고 뭐해?"
"응. 이제 자려고 누웠어. 아빠 빨리 와. 기다릴게."

평소에 시크한 녀석이 이럴 땐 곰살맞다. 서둘러 집에 가보니 대자로 뻗어 콜콜 자고 있었다. 이불 덮어주고 옆에 누웠다. 대면 잘 것 같았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가끔 어떤 감정이 다가와 머무를 때가 있다. 그 감정이 스물 다가왔다.

얼마 전 갈대 축제 전망대에 올라 넓게 펼쳐진 갈대숲을 보며 마음 어딘가에서 벅차올랐다. 바로 '감사함'이었다. 그 순간에 맥락도 없이 그 감정이 왜 왔는지는 설명할 순 없으나 분명 느껴졌다. 내가 살아 숨 쉬는 것에 대해 감사함, 가족이 있다는 감사함, 다닐 직장이 있다는 감사함, 글을 쓸 수 있다는 감사함, 언제든 불러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감사함, 등등. 하나씩 감사한 일이 지나갔다.

잠자리에 누워 그날 일을 떠올리니 하루의 고단함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감사해야 감사할 일이 따라온다는 말이 진실이었다. 지금 겪는 현실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함은 감사 함대로 함께 간다면 조금은 내 삶에 빛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함 1일 차. 새벽에 일어나 이렇게 글을 쓰고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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