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내 글의 비평가이다

by 실배

"아빠. 왜 이리 제목이 밋밋해. 다른 글 좀 봐봐. 그러니 보는 사람이 없지. 쯧쯧"


얼마 전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전, 아들에게 글을 보여주었더니 여지없이 비판이 날아왔다. 그 말은 내 폐부를 찔렀다. 마이 아프네.


아들은 당최 내 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준 적이 없다. 특히 본인이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더욱 인색하다.


"에이. 뭐야. 과장이 심하네. 구라야."


뭐시라. 내 글이 구라라고? 아빠는 진실만 기록했거든.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에게도 인정 못 받는 신세라니. 이제 그만 글을 접어야 되나 심각하게 고민되었다.


그래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누구보다 기뻐했던 아들이었는데 어찌 이리되었을고. 그래. 누구를 탓하랴. 내가 부족한 탓이지.


한 편으로 마음 한 구석에 무언가 끓어올랐다. 뭔가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찬찬히 내 글을 곱씹어 보았다. 아들 말처럼 제목이 평이했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은 제목부터 매력적이었다. 제목부터 고민해보았다. 그때 마침 온라인 글쓰기 주제가 '인터뷰'였다. 전에 아들을 인터뷰하다 망했던 흑역사가 떠올랐다. 일단 글을 후루룩 다 쓴 후 제목을 고민했다. '아들 인터뷰는 어렵다.' 아니야. 평이해. 뭔가 임팩트 있는 것이 필요했다. 그때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다. '함부로 아들 인터뷰하는 것 아니야.' 나쁘지 않을 걸. 아니 입에 착 붙는데.


글을 발행한 후 바로 반응이 왔다. 조회수가 다는 아니지만, 힘이 났다. 커피와 직장 생활을 연관 지어 쓴 '나이 마흔이 넘어도 사천 원 커피는 부담된다.'와 아내와 갈등의 터널을 벗어난 이야기 '마흔이 넘으면 아내의 친절도 두렵다.' 수 만 명이 넘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제목도 짓다 보니 재미가 쏠쏠했다.


모든 것이 아들의 날카로운 비판 덕분이었다. 최근에는 아들이 식탁에서 이야기를 듣고 '엄마, 또 짜파게티야!'란 글을 썼다. 이 글도 반응이 괜찮았다. 기쁜 마음에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들은 나에게 고마운 존재이다. 내 글의 많은 부분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에게 좋은 글감을 제공해왔다.


어떨 땐 아들에게 글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보여주는 것은 직장 생활하는 평범한 직장인 말고 다른 모습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아직 부족하지만, 아들이 나중에 커서 나를 떠올릴 때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빠로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욕심이다.


'아들, 앞으로도 아빠 글에 가감 없는 비평 부탁한다~! 대신 조금만 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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