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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ul 01. 2020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대면 자는 나에게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귓가의  쏴쏴 하는 빗소리는 괴로웠다. 내내 뒤척이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아들이 들어왔다. 나에게 저만치 떨어져 누워 연신 핸드폰 불빛을 비추었다. 슬쩍 쳐다보니 축구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축구 게임에 빠진 아들은 세상의 반이 축구로 가득 차 있다. 보질 말았어야 했다.

"아빠. 아빠에게 레전드 축구선수는 누구야?"
"손흥민이지."
"손흥민은 지금 뛰고 있잖아. 빼고, 다른 사람"
"그럼, 차범근"
"외국에서 뛰었던 사람 말고."
"음...... 그럼, 홍명보."
"이번에는 외국 선수 중에 말해봐."

헉. 나는 자야 하는데. 아들의 질문 세례에 오히려 정신은 말똥 해졌다. 두렵게도 질문의 방향은 점차 확산하였다.

"아빠. 여태까지 본 영화 중에 가장 무서운 영화는?
"음...... 생각이 안 나. 아빠 자야 해."
"뭐야! 있으면서. 치사하게 이러기야."

처절한 옆구리 공격이 시작되었다. 내 약점 중의 약점인 간질이기였다. 힘은 또 얼마나 세졌는지.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하하하. 하하하. 알았어. 그만해. 얘기할게."
"진작 그럴 것이지. 말해봐."
"음...... 쏘우."
"영화 줄거리 좀 이야기해줘."

'아니야. 아니야. 아빤. 자야 해. 벌써 자정이 다 되었잖아.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한단 말이야. 아들아 제발.'


아들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끝도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축구, 영화, 여행, 무서운 이야기, 어릴 적 어머니께 혼난 이야기(이건 왜 물어본 건지)까지 가서야 간신히 끝이 났다. 눈 밑 다크서클은 이미 땅끝까지 내려갔다. 잠은 홀라당 다 깨버렸다. 나는 억울한 마음에 한 가지를 물었다.

"아빠 얼마큼 사랑해?"
"......(5초간 침묵). 상상 이상"

헉. 심쿵이다. 잠 못 드는 밤, 비는 추적 내리고. 눈은 멀뚱히 뜬 체,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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