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책을 읽는다. 사씨 남정기부터 페스트, 동물 농장을 지나 지금은 창가의 토토를 읽고 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읽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문제는 아내가 평소에 독서에 큰 취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능을 무척 좋아해서 틈나면 주로 '런닝맨' 류의 프로그램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손에서 책을 놓고 있지 않다. 나야 책을 좋아하는 모습이 그저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최근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 학부형 몇 명과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그리 탐탁지 않아하던 아내가 웬일인가 싶었다. 더 큰 반전은 뒤에 있었다. 독서 모임에서 아들이 읽어야 할 책을 미리 읽고 이야깃거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런 맹모삼천지교보다 더 대단한 엄마들 같으니라고.
아들은 꼼작 없이 책을 읽고 있다. 하긴 아내와 책에 대해 토론도 해야 하고, 독후감도 써야 하니 읽을 수밖에. 집 안 분위기도 바뀌었다. 시간 나면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 아내는 좋아하는 예능 끊고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아이들과 보기 시작했다. 제목이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이었다.
제목처럼 매주 한 권씩 선정해서 책을 읽고 요약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진행은 유명한 국사 선생님 '설민석'이었다. 나도 어깨너머로 보기 시작하다 푹 빠지고 말았다. 최근에 본 책은'동물 농장'이었다. 얼마나 맛깔나게 읽어주는 줄 모르겠다. 마치 1인극을하듯이 실감 나는 연기까지 선보였다. 중간중간 패널들과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면서 이해가 더 잘 되었다. 다 보고 나면 당장이라도 그 책을 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흥미와 교육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이 안에도 아내의 치밀한 전략이 숨어있었다. 프로그램에 맞추어 책을 선정한 후 아들이 흥미를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아들은 그것도 모른 체 책에 빠져들었다. 책을 읽다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내용을 반가워하며 아내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아내 입가엔 미소가 돌았다.
마흔 너머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한 아내는 그 참 맛을 알기 시작했다. 나에게 감동적인 구절도 이야기해주고, 책을 읽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한다. 그 시작이 어떻든 지금은 스스로가 재미를 느끼고 있다. 덕분에 아이들도 함께 책을 읽으니 나는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도 출근길에 문 앞에 택배를 발견했다. 만져보니 책인 듯싶다. 수시로 책이 배달된다. 포장지를 뜯으며 아이처럼 기뻐할 아내를 떠올리며 서서히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