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이 넘어 아싸가 되었네.
진정한 나 다운 나와 마주하기
웃음소리가 넓게 퍼져 방 안 가득 채웠다. 다들 뭐가 그리 좋을까. 좁은 공간, 낯선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열심히 구석을 찾아보지만 여의치 않았다. 표정을 어떻게 지을까. 혹여나 어색한 내 모습이 분위기를 깰까 걱정되었다. 억지로 웃음을 짓느라 안면 근육은 파르르 떨렸다. 머릿속에는 이대로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오랜만에 참석한 동문 모임이었다. 얼굴 아는 동기나 선배보다 처음 보는 후배들이 많았다. 그들 눈에는 빛이 초롱초롱했다. 조금이라도 눈이 마주칠라치면 전투적으로 다가왔다. 간신히 몇 마디를 이어가지만, 이내 대화는 국수 자락처럼 툭 하고 끊어졌다. 몇몇 인연을 떠나보내 뒤 한쪽 구석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중년의 무리를 발견했다. 나는 사바나의 사자처럼 그 먹잇감을 향해 돌진했다. 도착하니 역시나 친숙한 얼굴이었다. 동기와 선배 몇 명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들과 동화되었다. 20년이 넘은 낡은 이야기를 안주 삼아 점점 취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는 망망대해 속 조그만 구명보트에 의존한 조난자들 같았다. 시곗바늘이 10시를 가리키는 순간 거짓 웃음을 내려놓고 얼른 밖으로 빠져나왔다. 휴. 하는 한숨이 까만 공기로 흩어졌다.
젊을 땐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주말엔 어떻게 서든 약속을 만들어 밖으로 나갔다. 집에 가만히 혼자 있을 때는 기분이 한 칸 내려앉은 내가 보였다. 익숙한 지인은 편안함으로, 새로운 사람은 설렘으로 다가왔다. 한때는 술자리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자처했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옮겨 다니며 열심히 기름칠했다. 가는 곳마다 불이 활활 타올랐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싸’였다.
그런 내가 변했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마흔 쯤인 것 같다. 주말에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결혼, 육아를 둘째치고 시간이 있어도 집에 있는 것이 더 편했다. 만나는 사람도 늘 보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는 꺼렸다. 심지어 예전에 친했지만, 교류가 뜸한 지인이라면 만남이 고민되었다. 왜 이럴까. 점점 ‘아싸’가 되어가는 내 모습이 못내 아쉽기도 했다.
한편 지금의 ‘나’가 진정한 ‘나’가 아니었을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데, 그간 맞지도 않은 옷을 입으며 낑낑댔다. 수줍고 부끄러운 모습이 싫어 꽁꽁 감추며 밝은 척, 사교적 인척 하며 살았다. 그 짐을 벗어던지고 나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지인과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맺고 남은 시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글 쓰는 시간이 행복하다. 굳이 애쓰지 않고 물 흐르듯 흘러가는 삶을 이제야 만났다. 이 길이 내 길이다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갈 생각이다.
‘아싸’ 면 좀 어때. 세상 이리 편한 걸. 이 좋은 걸 왜 진작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