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를 보면 절로 미소가 돈다. 어쩜 사람 마음을 잘 알고 챙길까. 마음속에 커다란 온풍기가 들어있다.
며칠 전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했다. 아들과 이게 맞니, 저게 맞니 옥신각신하다 넘어져 얼굴을 살짝 벽에 부딪혔다. 다시 게임에 열중하느라 넘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서 손 하나가 쓱 나타나더니 내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 아닌가. 딸아이였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물었다.
"아빠. 괜찮아?"
아이고 이쁜 것. 나와 아들은 게임을 하느라 정신없었는데. 딸아이가 넘어졌어도 내가 그렇게 행동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게임을 하면서도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대견했다. 말도 얼마나 이쁘게 하는지. 상대방이 말하고 있으면 천천히 듣고 있다, 적절한 말을 건넨다. 중간에 무 토막 내 듯 끊는 일도 없다. 무엇보다 사람의 좋은 점을 관찰하여 칭찬한다. 관심의 초점이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 한마디로 '공감 능력'이 무척 뛰어나다. 그 능력은 정말 부러웠다.
한동안 아내가 나와 이야기를 피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오빠는 오빠 말만 하잖아."
그 말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긴 만나면 내 이야기하기 바빴다. 주로 회사 이야기였다. 아내 입장에서는 하나도 모르는 이야기인데 얼마나 짜증 났을까. 그리곤 아내의 말은 건성으로 들었다. 나에게 관심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상대방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어느순간부터 나와 거리 두는 모습이 보였다. 나보다 나은 딸을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부모가 되어 자식만도 못하다니. 능력이 부족하면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요즘 손톱만큼 노력을 시작했다.
첫째. 내 말 줄이기. 둘째. 상대방 말 끝나기 전까지 절대 끊지 않기. 셋째. 상대방 말에 적절한 반응 보이기. 넷째. 내가 먼저 상대방 이야기 물어보기.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아내가 본인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바라보는 표정도 한결 따듯해졌다. 진작 이럴 걸. 돌이켜보면 연애 시절에 나도 참 잘 듣는 사람이었는데. 왜 이리되었을까. 세월에 핑계 대기엔 치졸하다. 관심의 문제였다.
지금도 방심하면 중간에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어느 순간 내 이야기만 또다시 하고 있다. 그럴 땐 머릿속 빨간 스위치를 재빨리 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