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슬기로운 아빠 생활

초등학생 아들이 아빠가 된 웃픈 사연

by 실배

아들은 목요일마다 아빠로 변신한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이 아빠가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초등학교 고학년 아들은 월요일, 초등학교 저학년 딸은 목요일 하루만 학교에 간다. 프리랜서 놀이치료사인 아내는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한다. 딸이 학교에 가는 목요일에 공백이 생겼다. 아내와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아들에게 딸의 돌봄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아들로 말할 것 같으면 놓은 자리가 제 자리요, 시키지 않으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귀차니즘의 대명사이다. 게임과 유튜브가 인생의 전부인 요즘 열세 살 남자아이이다. 그런 아들이 동생을 잘 챙길 수 있을까 내심 걱정되었다. 일단 아들이 해야 할 역할을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첫째, 오전 9시 반까지 학교에 데려다 주기
둘째, 오전 11시 40분에 학교에서 데리고 오기
셋째, 점심 챙겨주기
넷째, 오후 2시까지 영어 학원에 데려다 주기
다섯째, 오후 3시에 학원에서 데리고 오기
여섯째, 엄마 올 때까지 공부 도와주기

만만치 않았다. 잘할 수 있으려나. 아들은 웬일인지 쿨하게 하겠다고 했다.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니 아들아.


드디어 딸이 학교 가는 전 날, 나는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11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왔다. 아내와 딸은 자고 있었다. 아들 방에서 희미한 불빛을 흘러나오길래 열어보니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가 헛것을 보았나. 연신 눈을 비벼보았는데, 현실이었다. . 주여.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입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쉿 하는 행동을 취했다. 일단 방에서 나와 씻고 다시 가보았다. 아들은 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빠. 내가 내일 동생 챙겨야 해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영어 숙제를 오늘 미리 끝내 놓아야 하니깐 아빠 먼저 자. 알았지. 나 좀 이해해줘."


그리곤 방 불을 끄고 스탠드를 켰다. 나는 이부자리에 누워 아들 등이 들썩거리는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시 잠겼다. 가슴속에 짠한 감정 하나가 차올랐다. 맞벌이 부부로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마냥 어리게만 보았는데, 언제 저리 컸을까. 아들이 언제 잠든지도 모른 체 꿈나라로 먼저 향했다.


다음 날 출근해서 내내 신경이 쓰였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했더니 딸을 학교에서 데리고 와서 밥을 챙겨주고 있었다. 힘들지 않냐는 내 말에 쿨하게 괜찮다고 답했다. 이후에도 딸이 학원 오는 시간에 맞추어 아들에게 전화했더니 잘 데리고 왔다. 딸을 바꿔달라고 해서 오빠가 잘 데려다주냐고 물었더니 늦을까 봐 서둘러 가는 것이 조금 힘들지만, 잘 챙겨준다고 했다. 이렇게 아들 덕분에 아내와 나는 목요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아들의 목요일 아빠 생활이 두 달이 다 되었다. 그간 아들은 빈틈없이 아빠 역할을 잘하고 있다. 여전히 수요일 저녁은 늦게까지 공부도 하고 있다.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서인지 사이도 부쩍 좋아졌다. 며칠 전에는 딸과 함께 인형놀이를 하는 아들을 보고 식겁했다. 인형만 만져도 두드러기 난다고 멀리하던 녀석이 웬일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그것도 아들이 딸과 보내는 방법 중 하나였다. 시크한 줄만 알았지 그 안에 저런 다정함이 숨어 있었다니. 요즘 아들을 보며 놀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치 러시아 인형 '마크로시카'를 보는 듯하다.


아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운 것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잘 표현하지는 않지만, 가끔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저 아내와 나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밖에 해줄 것이 없다. 그래도 불평 없이 해내는 모습이 대견할 따름이다. 한편 아들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뭔가 책임감을 갖는다는 것은 그 나이에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불쑥 성장한 모습이 보인다.


최근에 아내는 목요일에 쉬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아들에게 계속 짐을 지우는 것이 못할 짓 같다며 한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들의 아빠 역할도 끝이 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들의 노고는 우리 가족의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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