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3년 만에 아내와 한방을 쓰게 되었다.

아내와 한방 쓰는 것이 어떨지 몹시 궁금하다.

by 실배

신혼 6개월 만에 덜컥 첫째 아이가 생겼다. 널따란 퀸사이즈 침대에서 둘 만의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이던 시절은 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첫째 출산 후, 아내는 당직근무로 일주일에 한 번은 집을 비워야 하는 나의 상황으로 몹시 불안해했다. 나 역시도 갓 태어난 아이와 집에 둘 만 있는 아내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당직 근무가 있는 날에는 근처에 사는 처가댁으로 보냈다.


어느샌가부터 집에 있던 아이 욕조, 기저귀, 장난감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내와 아이는 당직 근무가 아닌 날에도 처갓댁에서 머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어느 날 장모님께서 이럴 바에는 합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그렇게 처가살이가 시작되었다.


처가댁은 방이 4개인 아파트였다. 안방은 장인, 장모님이 쓰셨고, 중간방은 우리 세 식구, 작은 방은 처남, 나머지 한 방은 옷방이었다. 방은 우리 셋이 살기에는 충분했다. 다행히 무던한 어르신들 덕분에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잘 지냈다.


조금씩 삶이 안정되어갈 때쯤 둘째가 생겼다. 그것도 4년 만이었다.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기에는 비좁았다. 마침 장모님께서 다니던 회사에 사택이 비었다. 우리에게 안방을 내어주시고, 처남을 남겨 둔 채 그곳으로 떠나셨다.


처음에는 안방에서 함께 생활하다가 첫째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아내와 둘째가 안방, 나와 첫째가 중간방으로 이동했다. 남매 사이라 한 방에 두기가 그랬다. 결정적으로 둘째가 아내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아내와 각방 생활이 길어지면서 왠지 모를 거리감이 생겼다. 가뜩이나 늦은 퇴근시간에 잠도 따로 자니 평일에는 얼굴 볼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 사이 둘째는 아예 아내 껌딱지가 되어버렸다. 어느덧 10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늘 화두처럼 '이사'를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양자물리학의 법칙처럼 올해 드디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장모님께서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사택에서 나오게 되셨고, 지금 우리가 사는 집도 처분할 계획이라고 하셨다. 갑작스레 이사 갈 집을 찾게 되었다. 몇 달을 고심 끝에 갈 집이 정해졌다. 10월 말로 시기도 결정되었다.


이사를 가게 되면 아내와 한방을 쓰기로 약속했다. 둘째의 강한 저항이 있었지만 끝내 설득했다. 막상 정해지고 나니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신혼초의 아름다운 기억이 떠올라 설레기도 하면서 불편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찾아왔다.


사실 나는 지독한 아침형 인간이고, 아내는 무지막지한 저녁형 인간이다. 밤 10시만 되면 눈꺼풀이 한없이 내려앉는 나와 달리 아내는 그때부터 삶이 시작된다. 나는 배게에 대면 자는 반면, 예민한 아내는 잠을 쉽게 들지 못한다. 벌써부터 아내는 나의 코골이 소리를 걱정하고 있다. 안되면 귀마개라도 사주어야겠다.


그런 고민과 별개로 하고 싶은 것도 한가득 하다. 저녁에 함께 침대에 누워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빔을 천장에 쏘아 영화를 보아도 낭만적일 것 같다. 상상만으로 이미 마음은 신혼초로 돌아갔다.


결혼 13년 만에 다시 아내와 한 방을 쓰게 되었다. 결과는 해피 엔딩일지 새드 엔딩일지 닥쳐보아야 알 것 같다.


회사 책상에 놓인 달력에 숫자를 하나씩 지우며 그 날을 찬찬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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