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서랍을 열었다. 찾던 부동산 계약서는 보이지 않고 체크무늬 다이어리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뭐지 하며 열어보았더니 오색빛깔 스티커에 한자 건너 ‘사랑’이란 글자가 눈에 띄었다. 그대로 나무처럼 서서 글에 빠져들었다. 문밖에서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세무사와 약속한 시각이 다 되었다. 부동산 계약서 찾아 집어 들고 문밖으로 급히 나갔다. 상담을 받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다이어리 생각이 맴돌았다. 분명 익숙한 글씨체인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상담을 마치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으로 다이어리의 문을 열었다. ‘SJH ♡ JM’ 분명 아내와 나의 이니셜이었다. 해마 속 신경세포가 열심히 기억을 찾아 바삐 움직였다. 그러기를 얼마 후, 마음속으로 ‘찾았다.’를 외쳤다. 이 다이어리의 정체는 바로 아내와 나의 교환일기였다. 맙소사.
연애시절 아내의 제안으로 쓰기 시작했었다. 내가 글을 써서 아내에게 주면 아내도 그에 대한 답을 써서 나에게 돌려주는 식이었다. 첫 문장의 ‘Dear. 00 오라버니’란 말이 왜 이리 설레는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아내의 애정표현이 글 안에 가득했다. 맞다. 생각해보니 20대의 아내는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감성도 풍부하고, 밝게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첫눈에 반했다. 못난 남편 만나 애 둘 낳고, 팍팍한 삶을 사느라 지치고 지금은 피곤한 모습만 덕지덕지 남았다. 글을 읽으며 그때의 아내와 지금이 자꾸 겹치며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교환일기는 콘텐츠도 다채로웠다. ‘상대방에 대한 결심 10가지 적기’, ‘300일 Plan’(이곳에 여행 계획을 문답식으로 글로 주고받음), ‘1주년 Best things, worst things’, ‘시로 마음 표현하기’ 등등 읽으면서 우리가 그때 참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해 서운한 점도 솔직하게 기록해서 놀랐다. 지금도 이렇게만 한다면 크게 싸울 일이 없지 않을까. 지금까지 아내와 누가 먼저 고백했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갔었다. 그날 술집에서 워낙 취했던 터라 정확지가 않았다. 다이어리 안에서 아내가 쓴 글에서 그 진실이 밝혀졌다. 아내를 불러 그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진실은 다이어리 속에 간직하는 것으로.
다이어리 속 20대 아내를 만났다. 더불어 잊고 있었던 2006년의 뜨겁게 사랑했던 순간도 마주했다. 잠깐이었지만, 그때로 돌아가서 행복했다. 일기가 끝난 날과 정확히 1년 뒤 우리는 결혼했다. 그리고 13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다. 지금 옆에는 듬직한 아들, 귀여운 딸이 함께 있다.
20대의 우리가 그러했듯이, 지금 내가 기록하는 일상도 시간이 흐른 뒤 꺼내 보면 가슴 뛰는 하루하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