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

by 실배

나는 엄마도 아니고, 워킹맘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이자 더도 덜도 아닌 남편이다. 책을 읽으며 몹시 목이 탔다. 결국, 냉장고 안에 있는 맥주를 꺼내 홀짝거렸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로 구석구석 청소했다. 체 했다며 아까 전부터 방에 누워있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했다.

작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온라인 매일 글쓰기 리더인 이틀 님의 신간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가 세상에 나왔다. 19년 대기업 경력의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온라인 매일 글쓰기 리더, 오마이 뉴스 기자, 브런치 작가란 다양한 이력이 있다.


처음 글쓰기에 참여했을 때 이틀님께 연락했다. 대부분이 엄마인 공간에서 내가 글을 써도 될지 걱정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서로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며 흔쾌히 허락했다. 근 2년간 글쓰기에 참여하며 내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일하며 아이 키우고, 부족한 시간을 쪼개서 글쓰기와 독서를 이어가는 엄마들은 대단함을 넘어 위대했다. 그중에서도 이틀님 글은 특별했다. 그리 긴 글이 아님에도 일하는 엄마의 행복, 슬픔, 안타까움,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글에 공감을 누르고 댓글을 달았다. 이제 그 글이 모여 하나의 책이 되었다.

책은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하루를 이틀처럼 사는 엄마’, ‘엄마는 오늘도 뛰어갑니다.’, ‘적당히 좋은 엄마’, ‘적당히 좋은 내 인생’, ‘워킹맘이 워킹맘에게’ 각 장의 마지막에는 Q&A도 있어 워킹맘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평범한 여성이 결혼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겪는 일은 우리 집 이야기였다. 비 오는 날 회사 일이 늦어져 어린이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 아이와의 일화, 둘째가 생긴 후 복직에 대한 고민, 일하면서 아이에게 소홀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걱정은 우리도 지나왔고, 지금도 진행 중인 일이다. 둘째가 덜컥 생기면서 아내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이에게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아내 마음속에는 지금도 아쉬움이 가득하다. 계속 공부도 하고 싶었는데, 현실적인 여건상 포기했다.

그 당시 바쁜 회사 일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나를 향해 아내는 수시로 분노를 표출했다. 나는 나대로 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내 서운해하기만 했다. 책 속의 ‘남편이 아빠가 되기까지’는 나의 이야기 같았다.


남편과 나는 신혼 때부터 부부싸움을 많이 했다. 대부분 집안일 때문이었다. 남편은 밥을 차려달라고 한 적도 없지만 요리를 한 적도 없었고, 싱크대에 설거지가 쌓여 있어도 손만 씻고 돌아섰다. 설거지는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 빨래도 내가 하지 않으면 늘 넘쳐났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비슷했다. 그는 뭐든지 알려줘야 했다. 아이 기저귀 가는 것, 목욕시키는 것 등등, 일일이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말을 해줘야 겨우 도와주었다.

-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 중 -


내가 그랬다. 아내가 조목조목 알려줘야 겨우 집안일을 도왔다. 아이 기저귀 갈고, 목욕시키고 재우는 것도 시켜야 했다. 결혼 전까지 밥 한번, 설거지 한번 제대로 하지 않은 바보였다. 아내가 주말에 일하느라 토요일 육아를 담당하게 되었다. 처음에 우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서 오히려 내가 울 지경이었다. 겨우 라면 정도 끓이는 수준이라 밥해 먹이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갑자기 출근이라도 해야 하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갔다. 그 시간이 8년이 지났다. 이제는 밥도 척척하고, 집 안 청소며 빨래도 알아서 한다. 가끔 아내에게 이제야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농담을 한다. 남편이 아빠가 되는 시간은 강산이 거의 변할 정도로 오래 걸렸다.

책 안에는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아슬한 줄타기 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워킹맘으로 살면서 끊임없이 반복하는 질문이다.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출근하는 발걸음은 늘 무겁다. 아이가 아프다는 연락이 오면 회사 복도에서 전화기를 들고 발만 동동 구르기를 여러 날이다. 아이가 아파도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을 한다.

-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 중 -


이전 근무지의 A 계장님이 생각났다.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부터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학교도 나가지 않고, 계속 사고를 쳐서 늘 전화기를 들고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쉴 수도 없고, 육아시간을 쓰려 해도 이해 못 하는 소장님 때문에 애간장만 태웠다. 가끔 화장실을 다녀오면 벌건 눈이 마음을 대변했다. 이렇듯 내 주변의 워킹맘들은 어쩔 수 없는 전화 육아를 한다. 아이가 학원을 잘 갔는지, 숙제는 잘하고 있는지,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등등 일하랴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책에서처럼 ‘내가 잘살고 있는 걸까?’를 자신에게 묻는 선배를 여럿 보았다. 나는 그저 그 옆에서 방관자처럼 서 있었다.

글을 읽으며 이 책은 워킹맘뿐 아니라 남자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결혼을 하였다면 아내를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결혼을 앞둔 남성이라면 바보 같은 잘못을 피할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문장을 보는 순간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그리고 필사 노트에 옮겨 적었다.


지금도 나는 ‘미안해’라는 말을 달고 살고, 아이들은 ‘괜찮아’를 달고 산다. 예전엔 미안한 일은 많았어도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은 없었는데, 엄마가 되고 나서는 내 삶이 이렇게나 달라졌다.’

‘아이들이 발라준 ‘괜찮아’ 연고로 내 어릴 적 상처는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 아이들은 나를 위로했고, 그로 인해 치유되었다. 작은 천사들로부터 ‘괜찮다’라는 말을 듣다 보니 내가 조금은 괜찮은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이제는 나 또한 아이들에게 ‘괜찮다’는 말을 돌려주고 있다. 아이들이 실수로 그릇을 깨뜨려도 “다치지 않았으니 괜찮아”라고 말할 줄 알게 되었고, 실수로 넘어져도 “괜찮아, 약 바르면 돼”라고 말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에게 큰 풍랑이 올 때 “괜찮아. 다시 일어설 수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게, 조금씩 마음의 깊이를 더해간다.

-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 중 -


책을 읽고, 아내에게도 오프 스위치를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일하랴 가정을 돌보느라 늘 지쳐있는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내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내가 더 많은 시간을 가정을 위해 써야 한다.

가을이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는 때, 한 권의 책이 내 마음을 마구 흔들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남편이 되고 싶다. 책을 읽고 꼭 그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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