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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Sep 24. 2020

글쓰기 어디까지 공개하세요?

글쓰기로 이중생활 중

“책 나올 예정이라면서요?”     


일선 기관 담당자와 전화통화 중 뜬금포를 맞았다. 미처 방어하기도 전에,

     

“일도 바쁜데 대단하시네요.”     


대단하다는 말보다, 앞의 일도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더듬더듬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며 에둘러 전화를 끊었다. 정작 중요한 일 이야기는 하지도 못했다.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알았지? 회사에서 아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다. 설마 A 계장? 아닐 거야. 입이 무겁잖아. 그럼 B 주임? 에잇. 아니겠지. 일선 기관 담당자랑 알지도 못하는 사이니깐 패스. 그럼 누굴까. 저 아래서부터 찝찝함이 차올랐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겠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철저하게 on-off 중이다. 주중에는 000이란 이름으로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이다. 금요일 회사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실배로 변신한다. 주말에는 오롯이 실배란 이름으로 글 쓰고 책 읽은 시간을 향유한다. 통상 오전 8시까지 출근해서 저녁 9시쯤 퇴근하니 대략 12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팀원들에게 여태껏 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주로 ‘업무’, ‘승진’, ‘회사 가십’, ‘주식’, ‘정치’이다. 겉으론 손뼉 치며 박자를 맞춘다. 그 순간에도 ‘어떤 글을 쓸까?’, ‘무슨 책을 읽지?’란 생각이 부유한 채.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왜 하지 못할까. 차분히 돌아보니 두 가지 이유였다.

     

먼저 월급 루팡으로 비칠까 두렵다. 물론 글쓰기는 회사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 근 2년째 이어오는 온라인 매일 글쓰기는 출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 이루어진다. 글 벗의 글을 읽거나, 댓글을 다는 것도 점심시간이나 퇴근 이후이다. 오히려 글을 쓰면서 회사에서 기획서를 쓰거나, 보도자료 작성 등에 도움이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니 상상력도 풍부해졌다. 그런데도 혹여나 ‘딴짓이나 하니깐 그렇지’라는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다.      


이해받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도 크다. 사회적 성공이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별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내 심장은 그쪽보다는 이쪽에서 마구 뛰는데 어찌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 가치만 옳다는 것은 아니다. 각자마다 삶에 부여하는 의미는 다른 거니깐.   

   

한편, 지금이 좋은 것 같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일과 글쓰기를 양립할 수 있다. 초등학교때 신라면이란 별명 이후로 실배라는 부캐도 생겼다. 신기하게 실배로 글을 써야 술술 풀린다. 주말에 가족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어색하다면 오버겠지. 그래도 최대한 지금 삶에 충실히 하려고 노력 중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다들 글쓰기를 어디까지 공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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