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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Oct 02. 2020

서울대 간 조카 얼굴에서 어른이 비칠 때.

언제 이리 대견하게 컸을까

조카는 머쓱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잔을 내 잔에 부딪혔다. 옆에 있던 아버지는 갑자기 건배사를 해보라고 했다. 조카는 귀까지 빨개지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건강을,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건배합시다!” 

    

커다란 웃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졌다. 아버지는 자식. 많이 해본 솜씨네.”라며 대견한 듯 어깨를 두드렸다.     


대견함이란 말로도 부족한 우리 집안의 귀한 첫 조카였다. 아버지, 어머니의 평생 숙원인 서울대를 작년 떡 하고 붙었다. 유일하게 집안에서 서울대를 나온 큰아버지의 자랑에 제사 때마다 냉가슴을 앓았던 어머니는 드디어 한을 풀었다. 큰아버지에게 조카의 서울대 합격 소식을 알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 살짝 기가 꺾인 큰아버지의 모습에 나도 묘한 쾌감을 느꼈다. 서울대가 뭐라고 참나.      


큰 누나는 제주도가 고향인 매형과 결혼했다. 신혼집을 제주에서 얻었다. 1년여 만에 임신 소식을 알렸고, 아이를 낳기 6개월 전부터 서울로 올라와 우리 집에서 지냈다. 누나는 입덧이 무척 심했다. 구역질이 난다며 검을 한가득 씹고, 내내 방에 누워있었다.      


드디어 출산일. 병원에서 누나는 너무 무섭다며 제왕 절개하겠다고 엉엉 울기까지 했는데, 어머니는 끝까지 안된다고 했다. 결국, 자연 분만으로 첫 조카가 태어났다. 여태껏 그렇게 조그마한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주먹보다 작은 얼굴에 눈, 코, 입이 다 들어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가 집으로 왔을 때, 학교 가는 줄도 모르고 푹 빠졌다. 우는 모습, 심지어 똥 싸는 모습까지 참 예뻤다.     


누나는 친정 가까이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매형을 설득해서 서울 본사로 발령 났다. 우리 집 근처에 살 집을 구했다. 조카는 우리 집안 모두의 귀염을 독차지했다. 더구나 총명했다. 몸소 그 순간을 체험했다. 조카가 집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학교에서 집으로 달려왔다. 현관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니 저 멀리서 돌아앉은 조카 모습이 보였다. 나는 몇 번이고 큰소리로 조카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해서 가보니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책에 열중하느라 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이다. 과제 집착력이었다. 총명함은 점점 빛을 발했다. 5살 때쯤인가 바둑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조카를 바둑학원에 보냈다. 그리곤 한두 달쯤 지난 뒤 1단이었던 아버지와 대등하게 바둑을 두었다. 그 뒤로도 숱한 신화를 우리 가족에게 선사했다.   

  

조카가 여섯 살이 될 무렵 매형은 심한 향수병을 앓았다. 둘째 조카까지 태어난 누나는 계속 서울에 있고 싶었으나, 매형 고집을 꺾지 못했다. 결국, 제주도로 돌아갔다. 조카가 떠난 빈자리는 매우 컸다. 귀여운 조카의 얼굴을 떠나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겨울 방학에 홀로 제주도로 떠났다. 조카는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이제는 소년티가 났다. 나를 보고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밤이 되자 같이 자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좁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조카를 꼭 안고 잤던 제주도의 푸른 밤은 간간이 떠오르는 추억 중 하나이다. 아쉬운 작별을 하는 순간, 조카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몇 년 뒤 희소식이 들렸다. 매형이 서울 본사로 다시 발령이 났다는 것이다. 이제는 계속 서울에서 살 예정이라고 했다. 조카는 벌써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한동안 못 본 조카는 어느덧 청소년이 되었다. 뺨에는 여드름이 났고, 목소리도 제법 굵어졌다. 어릴 땐 조잘조잘 말도 많더니, 말없이 어색한 표정만 계속 지었다. 조카의 성장에 놀란 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조카는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더니, 학원에서 영재반에 들어갔다. 특히 물리 쪽에 영재성이 두드러졌다. 중학교를 마치고 떡하니 부산에 있는 과학영재고등학교에 수석 입학을 했다. 집안의 경사였다. 3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작년에 서울대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계속 물리 쪽으로 나가서 유학까지 고려했었는데, 중간에 진로를 바꾸었다. 조카 말로는 공부하면서 순수과학의 현실적 어려움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리곤, 졸업 후에 로스쿨에 진학해서 판사나 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움 마음이 컸지만, 표현하지는 않았다. 조카의 선택이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연극 동아리에도 들어가고, 여러 모임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보통 영재라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이 걱정인데 다행이었다. 군말 없이 아버지, 어머니의 여러 모임에도 특별 내빈으로 참여했다. 심지어 아버지의 ROTC 송별 모임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다녀온 뒤 아버지 기분이 무척 좋았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안 보고도 상황이 그려졌다. 그래도 좀.     


맥주를 모두 마신 뒤, 아버지는 금이야 옥이야 여겼던 양주까지 꺼냈다. 조카 얼굴은 어느새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릴 때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제는 제법 어른 얼굴이 보였다. 누날 말로는 벌써 과외도 몇 개나 하면서 이제 곧 대학 입시를 앞둔 동생 학원비까지 지원한다고 했다.    

 

아까 전부터 아들은 구석에 앉아 말도 없이 몸만 배배 꼬았다. 오래간만에 본 형들이 뻘쭘했나 본다. 그때 조카가,     


핸드폰 줘봐. 000-000-000이 형 번호야. 뭐 먹고 싶은 것 있을 때, 연락하면 맛있는 것 사줄게.”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내 입가에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어릴 때 제주도에서 내 곁에 콕 붙어서 자던 어린 꼬마가 벌써 자라 이제는 내 아이에게 든든한 형이 되어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형 번호를 저장했다며 자랑하듯 보여주는 아들을 바라보며 조카와 나누었던 그 많은 추억을 하나씩 꺼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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