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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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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ug 15. 2019

어머니의 비지찌개

어머니가 떠오르는 음식

 나는 일단 입맛이 까다롭지 않다. 개고기 외에는 특별히 가리는 음식도 없다. 최근에는 향료인 고수까지 극복해서 음식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반면에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다. 최근에 그나마 자주 먹는 음식이 순대, 카레 정도였다. 내가 생각해도 참 소박하다. 하긴 이렇게 삼시 세끼 챙겨 먹은 것도 어른이 되어서부터였다.   

  

 어릴 땐 음식 먹는 것을 지독히 싫어했다. 무슨 맛으로 먹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엄청 말랐었다. 반이 바뀌어도 나의 별명은 늘 멸치, 젓가락, 성냥개비를 벗어나지 못했다. 밥시간이 되면 어머니는 한 숟갈 더 먹으려고 숟가락에 밥을 퍼서 나를 쫓아다녔고 나는 조금이라도 안 먹으려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밥 먹는 순간 벌어지는 어머니와 나의 실랑이는 우리 집의 흔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도 떠오르는 음식 하나가 있다. 내가 유독 안 먹을 때 어머니께서 쓰는 최후의 비책. 바로 ‘비지찌개’였다. 다른 음식은 맛이 없었는데 비지찌개만은 예외였다. 그 당시 매일 비지찌개만 먹으라고 했어도 그랬을 것이다.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어머니는 먼저 뚝배기에 뽀얀 비지에다 신 김치와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넣고 팔팔 끓였다. 거기다 파까지 넣으면 금상첨화였다. 보글보글 끓으며 구수한 냄새가 부엌 넘어 내 코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배고픈 강아지처럼 낑낑대며 연신 부엌을 얼쩡거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매정하게도 음식이 다 완성될 때까지는 얼씬도 못 하게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애달프게 만들려는 어머니의 작전 같기도 하다.     

 

 기다리면 복이 오듯이. 드디어 밥상이 차려지고 정 중앙에 떡하니 비지찌개가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다른 반찬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오롯이 비지찌개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었다. 그리곤 흰쌀밥 위에 비지를 푹 퍼서 연신 비벼댔다. 그러면 어느새 밥그릇은 선 분홍빛으로 곱게 물든다. 뜨거운 비지를 호호 불며 한입 속 입안에 집어넣으면 행복이 내 안 가득 퍼졌다. 비지만 먹으면 약간 텁텁할 수 있는데, 신 김치와 어우러져 칼칼하니 맛의 조화를 이룬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밥 한 공기를 뚝 딱 해치우고 어머니께 한 공기를 더 먹겠다고 밥그릇을 건넸다. 그러면 어머니는 뿌듯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면서 슬그머니 밥을 푸러 부엌으로 향하셨다. 나는 그때 마음속으로 ‘그래요. 어머니. 오늘 전쟁은 어머니가 이겼어요.’라고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고, 당연히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 먹을 기회가 전보다 줄었다. 시간이 지나면 입맛이 변하듯이 이제는 아내가 해주는 음식이 더 입맛에 맞을 때가 많다. 얼마 전에도 어머니께서 김치를 주셨는데 예전에 좋아했던 그 맛이 아니었다.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어머니 손맛이 변한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 표 비지찌개이다. 이상하게 삶이 힘들거나, 마음이 정리가 안 될 때는 꼭 어머니가 해주시는 비지찌개가 생각난다. 아마도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음식이라서 일까.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음식을 떠올리면 그 안에 지나간 삶이 담겨있음을 발견한다.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부모님 댁에 가기로 하였다. 전날 어머니께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 먹고 싶은 것 있니?”

없어요. . 번거롭게 음식을 하세요. 힘들게. 그냥 밖에 나가서 먹어요.”

아니다. 애들 먹이려고 새우튀김도 준비하고 LA갈비도 다 재어났다. 근데 너는 뭐 해줄까?”

정 그러면 비지찌개나 해 주신 던 가요.”

너는 맨날 비지찌개냐. 알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곧 어머니가 해주시는 비지찌개를 맛본다는 생각에 마음이 세차게 뛰었다.     


 삶이 아무리 변해도 한 가지쯤 변하지 않는 것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나에게 비지찌개는 그런 존재다. 내가 앞으로 마주칠 삶의 긴 여정 속에서. 힘들 때 생각나고 먹으면 기운 얻는 그런 음식이 있다는 것. 평생 나의 따듯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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