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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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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Aug 19. 2019

옛 동네 오래된 골목길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는 모순적인 모습이었다. 동네 입구는 거대한 성처럼 솟은 아파트 단지가 수호신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 수호신 다리 사이를 지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그제야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빌라, 단독주택이 어지럽게 섞여 있어 그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우리 집은 그 중간 어디쯤 위치한 주택이었다. 현대식 건물과 오래된 건물이 부조화를 이루며 같은 삶을 살아갔다. 나중엔 안 사실이지만 아파트 살던 친구들이 주택가에 살던 우리를 은근히 무시했었다고 한다. 내가 무딘 건지 곧잘 아파트에 살던 친구들 만나 그곳에서 놀았었는데, 그 친구들이 속으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슬퍼진다.

 길은 또 어떠한가. 가운데 그나마 큰길을 필두로 5~6개의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어느 길로 가든지 그 시작과 끝은 모두 만났다. 초등학교 때 집에 도둑이 들었었는데, 채 30분도 안 돼서 경찰이 그 도둑을 잡았다. 아버지께서 어떻게 잡았는지 경찰에게 물어보았더니 “이 동네 길이 뻔해요. 결국 다 만나거든요. 길목만 잘 지키면 됩니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아파트 단지 내 길처럼 매끄럽게 포장되지 못했던 동네 길은 두꺼비 등처럼 울퉁불퉁했다. 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지켜보면 꼭 신나게 춤추는 듯 보였다. 그래도 나는 그 길을 참 사랑했다. 내가 옆집 민수와 딱지치기를 해서 모두 땄던 곳이었고 첫사랑이 언제 지나갈지 두근거리며 지켜보았던 곳이었다. 때론 그 길은 내가 슬픔을 한가득 지고 걸어갈 때 나에게 ‘힘내’라고 친구가 되어주었고 기뻐서 뛰어갈 때 솜털처럼 푹신한 바닥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 집 위로 계속 올라가면 두 갈래의 길을 만났다. 왼쪽으로 가면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곳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길이 점점 좁아지면서 이제 골목 끝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사람들 흔적이 듬뿍 담긴 돌계단이 놓여 있었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자그마한 꼬마는 가늠할 수 없는 황토색 평야가 동산 앞으로 펼쳐졌다. 평야에는 계절별로 다양한 식물과 곤충들이 득실댔다. 여름에는 먼저 아카시아 꽃 속에 숨어있는 달콤한 꿀을 빨고 누가 더 잠자리와 매미를 많이 잡는지 경쟁을 펼쳤다. 친구들과 실컷 놀다 보면 어느새 해가 어둑해졌고 땀에 젖어 집에 가기 일쑤였다. 평야는 특히 가을이 되면 돋보였다. 동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해바라기가 햇살을 받아 노란빛이 황금빛으로 둔갑했다. 연신 흐르는 땀을 훔치며 그 영롱한 빛에 물들었다. 도시에 살던 내가 어릴 때 곤충학자가 되는 꿈을 꾸고 시골 감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 골목길 끝에 있었던 평야 덕분이었다.

 한 번은 동네를 벗어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옆집 민수가 좋은 것 보여주겠다고 꼬셔서 길을 나섰다. 늘 산처럼 자리 잡은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생전 처음 보는 큰 건물, 큰 길이 나를 스쳐 갔다. 나와 민수는 연신 낯선 공간이 주는 묘한 쾌감을 즐겼다. 그 시절 보았던 영화 ‘구니스’의 아이들처럼 ‘애꾸눈 윌리’가 숨겨둔 보석을 찾아 모험을 떠났다. 그리고 역시나 모험에는 악당이 필요했다. ‘저기 보이는 큰 아저씨가 우리를 쫓는 악당이 아닐까? 혹시나 보석은 저 건물 속에 숨겨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결국 우리의 일탈은 그리스 신화 속 미노스 왕을 분노케 했고, 그의 반인반우 아들을 가둔 라비 토스(미궁)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 길을 넘으면 다른 낯선 길이 우리를 기다렸다. 그 길을 지나가면 이제는 더 이상 알 수 없는 길을 펼쳐졌다. 나는 연신 민수에게 “이 길을 맞아? 알긴 아는 거야?”라며 민수를 사각의 링 한쪽 끝으로 몰아세웠다. 결국 민수는 울음을 터트렸고, 지나가던 마음 좋은 아주머니 손에 구조되어 간신히 미궁 속을 탈출했다. 평소보다 늦은 귀가에 어머니께 핵 꿀밤을 연신 맞았다. 우리의 모험은 민수와 나만의 비밀이 되었다. 한 참 뒤에 알았다. 우리가 만난 미지의 공간은 겨우 길 하나 건너 옆 동네였다. 그 뒤로 나는 낯선 길을 떠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얼마 전 주말에 아이들과 부모님 댁을 방문했다. 부모님은 내가 살던 집을 떠나 옆 동네로 이사를 하셨다. 몇 년 전부터 옛 동네가 재건축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부모님 댁과는 이제 반대편에 있어서 갈 일이 없었다. 점심을 마친 후 문득 옛 동네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길을 나섰다. 동네 입구는 전보다 더 큰 수호신이 지키고 있었다. 언덕길을 올라 익숙한 풍경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곳은 또 다른 수호신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내가 옆집 민수와 딱지를 쳤던 그 길, 첫사랑에 설렜던 그 길은 잘 정돈된 아파트 단지 내 길이 되어 있었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이닥쳤다. 길가에 잃어버린 지갑처럼 추억을 도둑맞았다. 서둘러 그 길을 지나 평야를 찾아갔다. 두 갈래의 길은 여전했다. 휴. 다행이었다. 오른쪽 길로 계속 걸어갔다. 그러나 길 끝에 있어야 할 돌계단 온데간데없었고 거대한 십자가가 나를 가로막았다. 오. 주여. 나의 평야와 동산은 하나님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아카시아 꽃 속 꿀 따던 추억, 동산에 올라 해바라기 구경하던 추억도 영원히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돌아오던 길에 얼마 전 TV에서 보았던 실향민이 떠올랐다. 그들이 자고, 먹고, 웃었던 공간이 강물이 되어 있었다. 허탈한 모습으로 집터를 찾는 그들의 눈빛 속에 내가 비쳤다. 그때는 몰랐던 그들의 감정이 나에게 쏟아졌다.

 나는 이제 아파트에 살고 있다. 단지 내 길을 오간 지도 10년이 다 되어간다. 길도 잘 정비되어 울퉁불퉁했던 옛 동네 길보다 훨씬 편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 길은 나에게 타인 같다. 여름 때면 돗자리 깔고 연신 부채를 흔들어대던 동네 할머니들도 없고, 빛이 사라진 어두운 골목 한 편에서 건하니 취해 큰 소리로 노래 부르던 아저씨도 보이지 않는다. 시끌벅적하고 투박한 동네였지만 그 길이 주었던 정겨움은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나를 찾는다.

 내 추억이 온통 서려 있는 그리운 옛 동네여. 다시 못 볼 정든 골목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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